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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111

벼가 익어가는 풍경 소도시 외곽에서의 생활은 눈만 뜨면 자연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렇게 말하지만 도시의 잘 가꿔진 정갈한 풍경을 보면 그건 그것대로 또 보는 맛이 있다. 결론은 항상 내 마음은 갈팡질팡이어서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나름대로 다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곳에 내려와서 처음 얼마 동안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쏘다녔더니 나더러 딱 시골 체질이라고 평했다. 그 이면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운동하러 가기도 걸려서 운동도 할 겸 마음 세수도 할 겸 땀 흘리며 자연을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며 개운해지는 것이 좋아서였다. 걷다가 돌아오면 마음에 걸리고 문제 되는 것들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곤 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이 좋아서 어떤 날엔 하.. 2021. 10. 4.
비행기 이따금 지나가버린 어느 한 시절, 한때, 한 순간의 일이 어떤 것을 계기로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우연히 날아가는 비행기(실제로는 더 컸는데 사진엔 이렇게 작게 찍혔다)를 보다가 그 시절 유행했던 거북이의 `비행기'란 노래에 맞춰 단체 율동을 하던 작은 아이의 공개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기억나는데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둠별로 돌아가며 제법 흥겨웠던 리듬에 맞춰 2열 횡대로 서서 춤추던 아이들은 어찌나 귀엽고 천진난만해 보이던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던 시간들. 조금은 쑥스러운듯한 미소가 어리기도 했던 얼굴들. 이제 청년이 된 그 아이들도 나처럼 비행기를 볼 때가 아닌 거북이의 `비행기'를 들을 때면 가끔은 그 노래에 맞춰 춤추던 그때 그 시간을 떠올리.. 2021. 8. 30.
초승달 어제는 우연히 창밖을 보다가 초승달을 발견했다. 초승달 밑에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는 샛별, 금성이라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초승달의 짝꿍은 샛별. (사진을 겨우 이렇게 밖에 못 찍어서 매우 유감스럽다.ㅠㅠ...) 달력을 보니 음력으로 초나흗날이었다. 오늘 초닷새 달을 보려고 밖을 보았으나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날이 살짝 흐리다. 어제 억세게 운이 좋았던 거다. 지나간 게시물을 뒤져 찾아낸 사진 하나. 친구가 초승달을 보니 내가 떠올랐다고 찍어서 보내온 사진이다. 내가 찍은 사진 속의 달보다 더 가느다랗게 날씬한 눈썹 모양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초사흗날의 달인가 보다. 초이틀까지의 달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초사흘 달부터 볼 수 있다고 한다. 초승달을 보면 내 생각을 하게 되.. 2021. 8. 12.
손주의 팬이 된 할머니 오랜 블친이신 애야 님께서 지난번 큰아들의 영상 올렸을 때 다른 것도 여러 편 보셨다며 요리하는 편이 영상미와 자막도 좋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네요. 이거 맞을까요?ㅎㅎ 관심 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이 두 개의 유튜브 채널을 갖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들은 기타 연주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한 개의 채널을 갖고 있고, 메리가 오래전부터 하던 다른 하나의 채널에 둘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조회수도 그리 많지 않다. 먼 나라에 나가 있으니 아들 얼굴 보고 싶을 때면 보라고 어느 날 카톡으로 알려준 주소로 들어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끼리만 보던 것을 집안 행사에서 무슨 말끝엔가 거기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남편의 다른 형제들이 관심을 보이기 .. 2021. 7. 26.
먼길 지난 2월 22일 89세를 일기로 아버님께서 먼길을 떠나셨다. 세 번의 위독한 고비를 넘기고 더 이상의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는 결정으로 투석을 멈추고 인공호흡기를 떼었다. 병원에 입원하신 지 20여 일 동안에 마른 몸은 더욱더 바싹 마르고 인공호흡기를 달고도 호흡은 가빠 뵐 때마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곤 했다. 29년 전 어머니 친척들과의 시댁 마을 저수지 소풍 길에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던 갓 시집 온 새색시인 내 손을 꼭 잡고 걸어가시며 나는 자부나 딸이나 똑같은 마음이다, 라며 말씀하시던 아버님. 오히려 당신의 딸보다도 내게 마음을 더 기울여서 시시때때로 작은 딸의 원성을 들었던 아버님. 심지어 위독한 병실에서조차 " 아버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 왔어." 라고 말해 헛웃음을 짓게 만.. 2021. 3. 2.
내 생일엔 지나간 늦가을의 내 생일엔 남편님께서 몇 해 까마득하게 잊고 사셨던 꽃다발을 사 오셨더랬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예쁜 꽃다발이 퍽 좋았다. 문제는 달랑 꽃다발만 사 왔다. 밥도 사줬지만 왠지 허전한 마음은 왜일까? 작은아들은 와인을 한 병 사 왔더랬다. 아들은 워낙 짠돌이니까 와인 한 병에도 고마웠다. 원래는 작년처럼 유명 빵집에서 케이크도 사 올 예정이었지만 먼 나라로 나간 큰아들이 아버지 생일에는 보내지 않았던 케이크 쿠폰을 보내오는 바람에 와인만 사 오게 돼서 미안했던가 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현금봉투를 내밀었다. 헉, 짠돌님께서 크게 맘 잡수셨네! 그렇지만 역시 짠돌님은 짠돌님이셨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버지 생일에는 없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감동해서 .. 2021. 1. 18.
둥근 달을 보며 어제, 이른 아침 남편을 배웅하며 보게 된 달. 그제 저녁, 신정호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며 본 저녁 하늘에 커다랗고 둥근달이 떠있길래 그 달의 밝고 환함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나 크고 운치 있고 예쁜 달이 사진만 찍으면 별로였다. 역시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제일 좋아, 하고 포기했더랬는데 아침에 아직 지지 않은 달을 보니 또다시 찰칵 본능이 깨어났다. 두어 달 전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며 병원에 진찰받으러 갔던 남편 직장 선배가 뜻밖에 담낭암 3기 판정을 받았고 급속도로 진행되어 한 달여 만에 가족들 곁을 떠났다. 너무 빠르게 병이 진행되어 그렇게 되고 나니 남편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 이제 겨우 65세에 돌아가시다니... .. 2020. 12. 2.
친정 동네 11월의 풍경 지난 화요일에는 엄마네 집에 갔다. 지금 출발한다고 전화하고 나서서 45분쯤 뒤에 엄마네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섰다. 된장을 만들고 있던 엄마가 이렇게나 빨리 오느냐고 깜짝 놀라신다. 맨 처음 엄마네 집에 갈 때 두 시간여를 서울시내를 헤매었다. 그때 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말이 무슨 외국어처럼 들리며 화면을 보아도 이해를 못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이러다 내가 오늘 중에 엄마네 집에 갈 수 있을까? 남편은 한 시간 남짓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 갔다고 파안대소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을 텐데 지금은 때가 때인지라 안전하게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엄마는 통화할 때면 늘 입맛이 없어서 끼니를 거른다던가, 죽을 쑤어 드셨다고 하든가, 모래 .. 2020. 11. 23.
애주가 2 우리 가족은 은근한 애주가다. 맛있는 밥상(주재료가 고기일 때가 대부분)이라도 차릴라치면 꼭 한 잔씩을 당연시한다. 그래서 복분자 철이 되면 고창 농협에서 직접 배달시켜 복분자 주를 담그고 3개월 숙성시킨 후에 거른다. 그 모든 것을 남편이 한다. 아, 담금주(도수 높은 소주)와 설탕을 사 나르는 것은 내가 한다. 담금주엔 발효과정에 설탕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희한한 것은 아직 젊디 젊은 작은 아들이 이 복분자주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젊은이들은 담금주를 선호하지 않던데 말이다. 예로 큰 아들은 이 복분자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복분자 5킬로를 주문해서 담그면 2리터짜리 생수병으로 여섯 개가 나온다. 그중 한 개를 작은 아들에게 주면 아들은 그것을 애지중지 아껴가며 마신다 한다. 한꺼.. 2020.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