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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벼가 익어가는 풍경

by 눈부신햇살* 2021. 10. 4.

 

소도시 외곽에서의 생활은 눈만 뜨면 자연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렇게 말하지만 도시의 잘 가꿔진 정갈한 풍경을 보면 그건 그것대로 또 보는 맛이 있다.

결론은 항상 내 마음은 갈팡질팡이어서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나름대로 다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곳에 내려와서 처음 얼마 동안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쏘다녔더니 나더러 딱 시골 체질이라고 평했다.

그 이면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운동하러 가기도 걸려서

운동도 할 겸 마음 세수도 할 겸 땀 흘리며 자연을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며 개운해지는 것이 좋아서였다.

걷다가 돌아오면 마음에 걸리고 문제 되는 것들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곤 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이 좋아서

어떤 날엔 하루 3만 보를 걷기도 했고, 2만 보쯤은 매일 걷다시피 했다.

나는 내가 무척 잘 걷는 사람이고,

또 얼마든지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종아리 근육통이 나를 붙잡았다.

사실, 3만 보를 걸으려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2만 보를 걸으려도 세 시간이 걸리는 긴 시간이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다 수면 중에 종아리 통증이 심해 자다 깨는 경우가 생겨났다.

종아리 혈액순환제도 사 먹어 보고, 다리 마사지기를 사서

매일 저녁 두 차례씩 마사지를 받아보기도 했으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상한 것은 내가 이곳으로 오기 바로 직전까지 바쁜 중에도 빠뜨리지 않고

헬스장에서 8년 동안 꾸준히 일주일에 4~5일을 다른 근력운동과

더불어 러닝머신에서 한 시간 정도는 늘 걸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헬스장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산책로 걷기 운동을 4년 동안 주 6일을 한 시간 반씩 했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내 몸을 찬찬히 다시 훑어보고선 말 대신 눈과 표정으로 대답한다.

`전혀 그런 몸 같지 않은데요?'

`네. 몸짱 근처에도 못 가고 그다지 날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족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만 약 먹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니 헬스를 할 때에도 하체 근력운동을 무리하게 하면 종아리 근육통이 있었는데 

이내 사라지곤 해서 내가 무심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지난번 오십견 치료받으러 가서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이 걷는다고

이유가 뭐냐고 묻고선 하루 한 시간씩만 걸으라고 처방을 내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그리 강한 체력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남편은 똑같이 걸어도 생전 종아리 아프다고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며칠 푹 쉬어주면 종아리 통증이 사라지니 말이다.

그리고 또 남편이 평한 것과 달리 내가 그렇게 시골 체질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들길 걷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이런 농로를 걸어가다 보면 내 마음까지 풍성해지고 넉넉해진다.

 

 

 

             고개 숙이고 아직은 뜨거운 한낮의 햇살을 받으며 알알이 영글어 가는 벼이삭을 보는 것도 즐겁다.

 

노부부가 트럭 몰고 와서 햇볕 강하지 않은 오전에만 잠깐 일하고 가는

작은 밭 경계 울타리엔 강낭콩이 주렁주렁 달리고, 사진엔 보이지 않는 옆의 들깨들은 내 키 가까이 쭉쭉 자랐다.

 

`내 나무'를 보러 간다.

 

거의 매일 이 근처 도로를 차 타고 지나가며 먼발치에서 인사를 건네곤 한다.

"안녕, 내 나무! 잘 있구나!"

때로는 깜빡 잊고 휙 지나치고선 앗차, 하는 순간도 있다.

어두워지는 저녁이면 멀리서 잘 뵈지 않아 더하다.

 

멋진 수형의 `내 나무'.

 

 

 

위 두 개는 개망초, 밑 두 개는  미국쑥부쟁이.

자세히 보면 잎도 다르고 꽃잎 모양도 달라요.

 

날이 청명하면 더 좋은 풍경이 펼쳐졌으련만 미세먼지가 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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