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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고마운 친구들

by 눈부신햇살* 2022. 2. 15.

 

 

어쩌다 한 번씩 잊어버릴만하면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가 있다.

동성이 아니고 이성인 고향 친구인데 한번 전화를 걸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마치 여자들 수다 떠는 것처럼 늘어질 때가 다반사다.

얘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자르기도 그렇고 해서 어쩔 땐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런 점은 친정 엄마가 전화했을 때와 비슷한데

마냥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별 특별하지 않은 얘기로 30 여 분 가까이 통화가 길어지면

내쪽에서 통화를 마무리짓자는 쪽으로 은근히 유도하게 된다.ㅎㅎ

 

일요일 오후,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차에 올라타는데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고 동창 넷이 모여서 한 잔 하고 있다며

한 친구가 같은 동네에 살던 여자 동창들을 떠올리다가 내 얘기도 나왔고

나의 안부가 궁금하다며 이참에 전화 통화해보자고 했단다.

 

그 친구는 이따금 고향집에 내려가면 고향에 터를 잡은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이거나

어쩌다 때를 맞춰 고향에 내려온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에도

곧잘 몇 명이서 모여 술 한 잔 하고 있다며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그러면 거기 모인 친구들과 번갈아가며 통화를 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어찌나 반갑게 나를 대하는지 내가 뭐라도 되는 양 마음에 온기가 채워지는 순간이다.

 

어느 해에도 그런 식으로 고향에 자리 잡은 한 친구와 통화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며칠 전 내가 살던 집을 허물었단다.

그 땅이 자기 소유여서 밭으로 개간하려고 아는 동생 시켜 허물면서

내 생각이 무지하게 나서 맥주 다섯 병(많기도 하지...) 사 가지고 가서 옆에 앉아 마셨더란다.

- 이 자리가 내 친구가 살던 집이다......

하면서 집 허무는 한 켠에서 술을 마셨다는 말을 하는 친구 목소리의 톤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려 울컥하면서 하마터면 눈물 찔끔 흘릴 뻔했었다.

 

이번 자리엔  내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친구가 섞여 있었다.

서울과 인천에 터를 잡고 사는 친구 넷이서 인천 바닷가로 놀러 가서 한 잔 하고 있단다.

내게 자주 전화하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을왕리 바닷가는 자기 구역이다.

을왕리 바닷가에 놀러 왔다고 전화한 것만 해도 몇 번째다.

음, 내 생각은 그렇다. 바닷가에 놀러 갔으면 재밌게 놀일이지 구태여 왜 내게 전화를 할까.

지금 드는 생각은 바다가 고향이라 바다를 보면 고향 마을도 떠오르고

함께 뛰놀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도 떠오르는가 싶다.

 

당연한 일처럼 이번엔 내가 첫사랑이라는 친구를 바꿔준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고, 푸르던 청년일 때도 그 마음이었고,

우리들 보다 한참 늦은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도 저기 저의 첫사랑이 와 있다고 외치는 마음이었고,

어린 시절로부터 45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ㅎㅎ

 

옆에서 가만히 통화 내용을 듣던 남편이 미소 짓는다.

그 마음은 아무나 줄 수 없는 마음이니 

그 친구들의 마음은 참 고마운 것이라고.

우선 시골 출신인 남편부터 어느 누구에게 그렇게 일정하게 전화하는 친구는 없다고.

 

그렇다. 내가 무어라고 그리 꾸준히 연락해주고 챙겨주는가.

그 마음이 참 고맙다. 고맙다, 친구들아.

 

그렇지만 말이야, 있잖아, 나도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따로 있는데

매번 볼 때마다 일찌감치 니가 너무나 공공연하게 내가 너의 첫사랑이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정작 이 자네(그 친구가 나를 부르는 호칭, 이 친구만 독특한 호칭을 쓴다)의

첫사랑 얘기는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을 너는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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