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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323

구름이 멋지던 날 풍경(Landscape)이란 그 풍경을 바라보고 누리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Mindscape)이라고 하지 않던가. - 김장훈 중에서 어제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발견하고 심히 공감했다. 저녁 무렵, 식사 준비를 하다가 또는 설거지를 하다가 주방창을 자주 내다보게 된다. 오늘은 또 하늘이 어떤 풍경을 내게 선물해 주려나. 오늘 하루 선물 받은 풍경에 감탄하지만 늘 그 감탄만큼 사진에 담기지 않는 함정이 있다. 3월 중순 어느 날, 신정호 둘레를 걷다가 등나무 터널 밑에 수두룩하게 깔려 있는 바둑알 같은 것을 보았다. 이게 뭐람? 콩꼬투리 같은 껍질에서 빠져나온 이 단단한 열매들은 등나무의 씨앗들이었다. 매끈매끈 예뻐서 세 알 주워왔다. 마당도 없는데 뭐 어쩌겠다고? 그냥 관상용이다. 식탁 위에.. 2024. 3. 26.
헛된 소비 이곳 행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을 이용하려면 행정복지센터 2층 한편에 있는 주민자치 사무실에 가서 등록하면 되던 것을 올해부터 시스템을 바꿔 온라인으로 아산 평생학습관 홈페이지에서 등록하게끔 했다. 그동안은 운동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사무실에 가서 등록하고 당장 그날부터 운동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3개월 단위로 나누어 분기별로 이용 신청을 해야 한다. 등록한 마지막 달 중순쯤에 다음 분기 이용 신청을 미리 하라고 알림 문자가 온다. 그 주어진 신청 기간 내에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당첨되었다는 문자가 오면 돈을 계좌이체 하는 방식이다. 헬스장 이용 신청을 하려고 아산 평생학습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다른 여러 강좌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산 평생학습관에 솔깃한 여러 강좌들이 있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 2024. 3. 19.
산수유 매화 피는 봄 드디어 산수유가 활짝 피어났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항상 봄을 맨 먼저 알리는 꽃은 매화로만 알았는데 이 호숫가에서는 항상 산수유가 먼저 피어난다. 지난가을 무지막지하게 가지를 쳐낸 모과나무에도 연둣빛 물이 올랐다. 겨울은 갈색으로 보내다가 봄이 되면 모과나무 수피의 얼룩무늬가 도드라지며 연둣빛을 띄기 시작한다는 것도 이 호숫가에서 알게 되었다. 호수를 돌다가 이 부분을 지날 때면 이제 유심히 보게 되는 장소가 되었다. 저기 멀리 타워크레인이 보이네. 왼편으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역시나 지난가을 반듯하게 칼각으로 싹 쳐냈던 회양목에도 연둣빛 꽃이 피어난다. 자세히 보아야 꽃이 핀 줄 알게 된다. 시골집에 갔더니 광대나물이 분홍분홍하게 피어 조금은 센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광대 복.. 2024. 3. 19.
2월이 가네 저 청사초롱 찻집엔 하루에 손님이 몇이나 들까? 어머, 봄까치꽃이 피었네 같은 자리, 방죽 너머 단독주택들의 풍경이 좋아 보여 그때도 사진에 담았었네. 그때는 타워크레인만 보이고, 2년 지난 지금은 왼편으로 하얀 단독주택이 들어섰고, 뒤쪽으론 얼마 전에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가 보인다. 다가가면서 찍고, 돌아서서 찍고. 3년 전 늦봄이라고 해야 하나, 초여름이라고 해야 하나(21년 5월 말). 모내기 막 끝난 후. 그해 4월 12일. 나물 캐러 갔다가 저 나무에게 반했던 날. 배꽃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었던 날. 같은 나무, 다른 해 다른 계절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기. 어제의 신정호 풍경. 오전에 헬스장 가지 않았던 날, 오후에 크게 멀리까지 걸어 13,000보가량 찍었는데, 그날따라 퇴근해 온 남편 역시.. 2024. 2. 29.
바쁜 하루 관악산이 보일 때쯤이면 항상 드는 생각. 우리 작은아들이 저 어드메쯤 살고 있는데...... 그렇지만 내 서울 왔다고 불쑥 연락하고 그러진 않는다. 모처럼 쉬는 휴일, 편안하게 잘 쉬라는 어미의 배려이다. 개포동 달터근린공원이 있는 어디쯤에서 점심으로 불고기김밥과 멸추김밥을 사 먹었다. 잔멸치를 싫어하는 남편이 멸추김밥을 한 개 먹어보고선 이 비린 김밥을 왜 먹느냐고 한다. 나는 맛있는 걸. 예식장이 있다는 테헤란로의 키 큰 건물들은 외국의 어느 도시를 보는 것만 같아 볼 때마다 나이 들어 눈꺼풀 처져 작아진 내 눈을 커지게 만드네. 선릉역과 역삼역 사이에 직장이 있다는 작은아들의 말도 떠올라 더 유심히 보게 되고. 예산에서 태어나 용인외고 나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남편 지인의 아들은 인상 훤한 미남이었다.. 2024. 2. 28.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1. 방전 올겨울엔 눈이 자주 온다. 계속 봄날씨처럼 따뜻해서 이대로 그냥 봄이 되는 건가 싶었지만 어림없다는 듯이 요 며칠 강추위가 몰아쳤다. 이렇게 눈 쌓이고 꽁꽁 얼어붙은 추운 날 운동하러 갔다. 실내엔 온풍기도 켜져 있고, 운동으로 몸에 열이 올라 땀 흘리다 나오니 땀 흘린 위에다 외투 걸치기 찜찜한 마음에 운동 끝낸 후에 외투는 항상 그냥 들고 나오게 된다. 그러다 얇은 옷차림 속으로 확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감기에 걸렸었는지 한 열흘 가량 기침도 나고 몸살기가 도졌었다. 밤이면 심해지는 기침으로 병원에서 3일 치 약도 처방받고, 약국에서 따로 기침감기 약을 사다 먹기도 했지만 완전히 확 아픈 것도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감기 기운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아 몸이 개.. 2024. 1. 29.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내리는 눈 속에 집을 나서는 나를 엄마는 신기해하였지만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 기대를 잔뜩 안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혹시 모를 추위에 대비해 내 숏패딩 대신에 엄마의 롱패딩을 빌려 입고. 하지만 결코 장갑은 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경을 담아야 하므로. 하! 내가 서울에 와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다니. 축복처럼 하얀 눈이 온 세상에 내리는 날이라니. 사박사박 눈 밟고 오르는 기분이란. 이런 풍경을 보자니 벌써 30여 년이 지난 결혼 전 친구들과 함께 올랐던 유명산의 설경이 떠오른다. 그 시절 패딩 점퍼 같은 것은 없었다. 얇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위에 청카바를 걸쳤다. 그날 함박눈이 펑펑 하염없이 내려 잎새 떨군 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었고, 때론 그 가지들이 하얀 터널을.. 2024. 1. 2.
서울에서의 아홉 날 올해는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든 애동지라 팥시루떡을 해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며칠 일찍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팥죽을 끓였다. 하지만 아무리 팥죽을 좋아하는 나여도 팥죽으로 대여섯 끼를 먹으면 이제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새알도 너무 많다. 나는 팥국물이 좋은데 새알 가득히 떠줘서 먹느라 고생했다.ㅠㅠ 해줘도 말 많고 탈 많은 딸 같으니라고...... 그래도 함께 새알 만들어 팥죽 끓이는 시간이 재미있고 좋았다. 흰 눈이 살짝 내렸던 날에는 행여 엄마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혼자서 산에 올랐다. 나이 드시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상사라고 하니까. 친정에 머무는 아홉 날을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산에 올랐다. 도심에,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야산이 있는 것은,.. 2024. 1. 2.
보통의 날들 어느 날은 길 위에서 서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보게 되었다. 넘어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네. 또 다른 어떤 날은 서쪽으로 난 창을 열다가 아직 아침 하늘에 머물고 있는 달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엔 헬리콥터가 무언가를 나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고 향 노 천 명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늘타리 따는 길 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등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집중화 상아 뻐국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채 기룩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 2023.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