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325

서울에서의 아홉 날 올해는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든 애동지라 팥시루떡을 해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며칠 일찍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팥죽을 끓였다. 하지만 아무리 팥죽을 좋아하는 나여도 팥죽으로 대여섯 끼를 먹으면 이제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새알도 너무 많다. 나는 팥국물이 좋은데 새알 가득히 떠줘서 먹느라 고생했다.ㅠㅠ 해줘도 말 많고 탈 많은 딸 같으니라고...... 그래도 함께 새알 만들어 팥죽 끓이는 시간이 재미있고 좋았다. 흰 눈이 살짝 내렸던 날에는 행여 엄마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혼자서 산에 올랐다. 나이 드시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상사라고 하니까. 친정에 머무는 아홉 날을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산에 올랐다. 도심에,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야산이 있는 것은,.. 2024. 1. 2.
보통의 날들 어느 날은 길 위에서 서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보게 되었다. 넘어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네. 또 다른 어떤 날은 서쪽으로 난 창을 열다가 아직 아침 하늘에 머물고 있는 달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엔 헬리콥터가 무언가를 나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고 향 노 천 명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늘타리 따는 길 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등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집중화 상아 뻐국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채 기룩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 2023. 12. 12.
흐뭇함과 즐거움이 차오르던 날들 또다시 오랜만에 친구들과 뭉쳐서 인사동에 갔다. 평일의 인사동도 붐볐다. 주말이면 차가 통제되어 걷기에 수월했지만 평일이라 이따금 차도 지나다녔다. 11월 하순, 인사동의 회화나무들은 아직도 잎을 달고 있었다. 이제는 경인미술관 앞의 개성만두집 `궁'을 잘 찾을 수 있다. 수도약국 옆길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나타난다. 주말에 오면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어서 평일이라 줄 서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찾아왔음에도 우리의 생각을 비웃듯이 열두 시 막 지난 시간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11시 반에 오픈하는 것 같은데 벌써 긴 줄이라니 일부는 오픈런을 하였을까? 개성만두집 `궁'은 이제 보니 미슐랭도 인정한 맛집이다. 대를 이어서 운영하는 가게인가 보다. 담백한 것 좋아하는 나지만 그렇게까지 맛있다 못 느끼는.. 2023. 11. 27.
첫눈 오던 날 11월 17일 오전 10시 무렵 주차장 지붕과 바닥이 젖어 있어 비가 오나 보다 생각했는데 헬스장 유리창 너머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렸다. "눈 온다!." 나도 모르게 나온 외마디 감탄사. 그러나 다시 비로 바뀌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차 더러워지겠다는 생각. 그러다 다시 오후엔 한 차례 희끗희끗 날리더니 마트에 장 보러 갔다 올 때쯤엔 이렇게 개었다. 마트 주차장이 만차여서 아래위로 빈 곳 찾아 돌아다니다 간신히 주차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쓱데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신정호에 가보았다.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고 얇은 옷차림이었던 나는 얼마 못 걷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오리들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커튼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네. 11.. 2023. 11. 20.
잠시 길을 잃다 짧아서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가을이 눈 깜짝하면 지나가버리고 말 것 같은 조바심이 들던 날, 헬스장을 가지 않고 산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그 전날 저녁에 내일은 운동 가지 말고 산에나 가야겠다고 하니 당신처럼 나이보다 젊고 이쁜 사람은 인적 드문 산길은 위험하니 그냥 운동이나 가란다. 평소에 퉁명스러운 편이고, 공감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내게 점수 따고 사랑받는 방법인 립서비스를 날리는 것이었다. 아닌 줄 백 번 천 번 알아도 저절로 미소 짓다 못해 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말. 서로가 다소 낯간지러워져 마주 보며 웃게 되는 말...... 신정호 주변 주차장 중에서 산과 가장 가까운 잔디공원 야외음악당 한켠에 주차를 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잔디공원엔 주황색이 들어간 복장의 어림잡아.. 2023. 11. 12.
가버린 시월 하순 어느 날엔 분리배출하러 가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꽃향기가 솔솔 풍겨왔다. 어디서 날아오는 걸까? 무슨 꽃향기일까? 두리번두리번. 노란 산국무리가 분리배출장 너머 야산 주변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산국의 향기가 이리 진하고 향기로웠나. 그 많은 꽃송이 중에서 몇 송이쯤 꺾어도 표 안 날 것 같아 조금 꺾어왔다. 지나칠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감탄하게 만드는 산국 향기. 햇살 좋은 날, 해바라기도 하고 운동도 할 겸 슬렁슬렁 산책을 나갔더니 하천가엔 고마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물을 정화시키는 데엔 고만이어서 `고마운 이'가 줄어들어 `고만이' 고마리가 되었다는 유래도 있고, 꽃의 크기가 작아 고만고만하다는 `고만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언제 이렇게 잎을 다 떨구어버렸을까. 인디언 달력에서 수.. 2023. 11. 10.
밤 🌰 내 일기장 같은 블로그를 뒤져보니 작년엔 9월 25일에 이렇게 밤을 털었다고 기록돼 있다. 시동생이 장대를 휘두르고 남편과 나는 밤송이를 벌리고 밤을 꺼내고 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퍽 재미있었다. 게다가 운동엔 젬병이라 늘 몸치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산 운동 신경 제로인 나는 헬스를 10년 정도 하고 나니 이제 몸 쓰는 일들이 모두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형제들과의 단톡방에 올린다고 찍은 일하는 증명 사진 속에서 이 상황이 재밌어 크게 웃었더니 내 카톡 프사를 본 친구와 동생이 놀렸다. "너는 밤 까는 것이 그리 재밌디?" "언니, 엄청 재밌어하는 표정이던데?" 올해는 추석에 모인 식구들이 모두 달려들어 밤을 털어 다섯 집으로 나누어 가졌다. 1차로 밤을 한 번 삶아 먹는데 어찌나.. 2023. 10. 11.
초록색 배 그린시스 추석에 배 두 상자가 선물로 들어왔다. 그중 한 상자는 익히 알고 있는 황금색 배이고, 다른 한 상자는 생전 처음 보는 초록색 배다. 정말 배야? 오, 초록 사과 같은 걸. 처음엔 더 진한 초록색으로 보이더니 집안에서 후숙 되며 점점 색깔이 노랑으로 변해가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배와 비교하면 색깔이 확 다르다. 크기도 더 작고, 껍질도 엄청 얇아 사과보다도 더 잘 깎인다.(실은 사과와 감은 거의 껍질채 먹고 있지만...) 과즙도 풍부하고 아삭아삭 식감도 좋을뿐더러 배 특유의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아 과일 조직이 더 고운 느낌이다. 사과와 비슷한 식감에 사과와 배의 중간쯤 되는 맛? 동양배 황금배와 서양배 바틀렛을 교배한 국산 품종이라고 한다. 궁금하여 상자를 살펴보았더니 아산시 음봉면이 생산지다. 수.. 2023. 10. 6.
하필이면······ 추석 쇠러 시골 시댁에 가기 전, 먼저 선산이 아니고 추모공원에 홀로 따로 모셔진 아버님 산소에 들렀다. 웬 꽃이 피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버섯이었다. 사진을 찍는 내게 "이젠 버섯에도 관심 있으세요?" 나를 웃게 만드는 작은아들의 농담 한 마디. 시골집에 당도하니 마당가에 참취 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그 옆엔 여뀌도 피었고, 담장 위엔 생전 처음 보는 `인디언 감자꽃'도 넝쿨로 피어 있다. 하필이면 많은 다른 날 다 놔두고 추석 무렵에 코로나에 걸릴 건 무언지. 감기인 줄 알았다가 혹시나 하고 해 본 남편의 코로나 자가검진 키트에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벌써 나흘째이고 시어머님은 이미 세 번이나 감염되셨었고, 나머지 다른 식구들도 다 걸렸었으므로 마스크 쓰고 활동하면 치명적이지.. 2023.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