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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친정 동네 11월의 풍경

by 눈부신햇살* 2020. 11. 23.

 

 

 

 

 

 

 

 

 

지난 화요일에는 엄마네 집에 갔다.

지금 출발한다고 전화하고 나서서 45분쯤 뒤에 엄마네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섰다.

된장을 만들고 있던 엄마가 이렇게나 빨리 오느냐고 깜짝 놀라신다.

 

맨 처음 엄마네 집에 갈 때 두 시간여를 서울시내를 헤매었다.

그때 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말이 무슨 외국어처럼 들리며 화면을 보아도 이해를 못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이러다 내가 오늘 중에 엄마네 집에 갈 수 있을까?

남편은 한 시간 남짓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 갔다고 파안대소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을 텐데 지금은 때가 때인지라

안전하게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엄마는 통화할 때면 늘 입맛이 없어서 끼니를 거른다던가, 죽을 쑤어 드셨다고 하든가,

모래 씹는 것 같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막상 얼굴 대하고 함께 식사할 때면 그 말이 믿기지 않게 잘 드신다.

오히려 만날 나보고 너무 적게 먹는다고 성화다. 살도 하나도 찌지 않았는데 그렇게 조금 먹는다고.

나는 나대로 엄마가 원하는 만큼 먹었다간 뚱뚱보가 될 것이라며 반박한다.

 

식사 후에 엄마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리 동네 나무들은 잎을 거의 다 떨구었던데

서울이 더 기온이 높긴 높은지 단풍 든 나무들이 아직도 고왔다.

 

엄마 시력이 나쁘냐고, 욕실에 얼룩들이 많다고 지적했다가 잔소리 많다고 한소리 듣고 나서

달려들어 욕실 청소를 하게 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잘 닦으라고 하신다.

 

밤엔 거실에 따로 자리 펴고 자는 것을 서운해하시길래 선심 쓰듯 모처럼 침대에서 함께 잤다.

다음 날 아침 엄마와 살 닿는 게 싫어서 그렇게 떨어져 자냐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효도는 어렵구나!

 

하룻밤만 자고 오려던 것을 비도 오고 엄마가 자꾸 더 있다 가라고 해서 이틀 밤을 묵게 되었다.

사흘째 되던 날, 집에 가겠다고 하자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신다.

"나는 너네 집에 가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있어도 오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안 들던데

너는 오기만 하면 그렇게 집에 가고 싶냐?"

생각해 보니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면 짧으면 일주일, 길면 보름씩이나 있다가 가시던데

왜 나는 엄마네 집에만 가면 그렇게 집에 오고 싶을까...

 

이것저것 챙겨주는 많은 것들을 차에 싣고 한없이 슬픈 표정의 엄마를 뒤로 하고

마치 효도 숙제를 끝낸 듯한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다음에 또 올게요."

하고 돌아서 오다가 그렇게까지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 슬픈 표정이 마음에 걸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더러 눈물 흘리는 날도 있다.

그래도 또 나는 효도 숙제하듯이 엄마네 집에 들렀다가 왜 그렇게 빨리 가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나 이틀 만에 집에 돌아오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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