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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 한옥마을 1 전주는 두 번째 길이고, 한옥마을은 초행길이다. 다녀와서 작은아들과 통화하니 야경도 좋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던 북촌 한옥마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규모도 크고, 더 상업적인 느낌이지만 골목골목 헤집고 다니다 보니 골목 안쪽으로 고즈넉하게 자리한 한옥들에서 전해지는 특유의 감성과 아늑한 느낌 때문에 한옥에서 살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옥은 무지 비싸겠지만...... 여기가 입구인데 우리는 가장 나중에서야 보게 되었다. 청년의 개량한복(?)의 자태가 무척 멋있다. 주차장에서 반대편으로 빠졌기에 가장 먼저 보았던 가게다. 시대를 거슬러가서 어릴 적 지방 도시에서 살 때의 풍경과 비슷하다. 나처럼 옛날을 회상하라고 조성했나 보다. 왠지 곧 .. 2021. 4. 5.
올해 우리 동네 벚꽃 2 이 구간은 십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벚꽃의 명소가 되었는지 벚꽃놀이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북적인다. 얼마 전에 지인이 말했다. 자기네는 굳이 다른 곳으로 벚꽃놀이 가지 않는다고. 거실 소파나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내려다보면 벚꽃이 하얗게 피어서 기분을 몽글몽글하게 부풀려준다. 통째로 꽃송이가 낙화하지 않고 낱낱이 한 장 한 장 떨어져서 꽃비 내리듯이 바람에 떨어져 쌓인 자리도 예쁘다. 사람들은 또 떨어진 그 꽃잎들을 한 움큼씩 허공에다 뿌리며 웃음을 까르르 날리며 즐거워하거나 사진을 찍는다. 이제 2주 후에나 집으로 돌아오면 이 장면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기에 부지런히 담아 보았다. 2021. 4. 5.
올해 우리 동네 벚꽃 1 올해 우리 동네 벚꽃. 해마다 보는 꽃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마음. 봄은 너무나 짧고, 또 분분히 져버릴 꽃이기에 이 짧은 개화기간이 더욱 소중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2021. 4. 5.
지금은 벚꽃 필 때 어제, 퇴근한 남편은 휴식을 취하고 그사이 남편 차 끌고 휘리릭 다녀온 신정호. 며칠 사이로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깜빡했으면 이 좋은 때를 놓칠 뻔했다. 호수에 가는 길 내내 이제 심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벚나무 길이 있고, 신정호에는 커다란 벚나무들이 많이 있어 감탄사 연발이다. 커다란 나무에 무수히 꽃들을 달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황홀경에 빠질 듯하다. 호수를 한 바퀴 돌며 꽃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엔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흥얼흥얼...... 꽃길을 차로 달리는 기분도 아주 그만...... 봄은 참 좋구나! 2021. 4. 2.
신정호의 봄날 신정호에 걸어갔다 걸어왔다. 봄꽃은 피고 피어 따스한 봄햇살 아래 빛나고 사람들은 꽃에 홀린 듯 꽃을 찍거나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탄성이 난무하는 봄. 작정하고 갔기에 위치 좋은 곳에 앉아 따스한 봄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느티나무 쉼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희안 마을에서 운영하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요기거리로 작은 소시지 한 개와 초코바 한 개도 샀다. 집에서 가져간 시리얼바 한 개까지가 오늘 나의 점심. 사람 왕래가 뜸한 곳에 앉아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멍 때리기. 좋다. 참 좋다. 봄이 너무 좋아! 스마트폰 앱에 찍힌 걸음수 24,000보. 2021. 3. 30.
괴산 산막이옛길 이 많은 사진을 역순으로 올려 버렸다. 그것도 컴에서 올린 게 아니고 아이패드로 올린 건데...... 그래서 잠시 순서가 헷갈렸나 보다. 괴산의 산막이길에 갔다. 남편의 허리는 조금 차도가 보이긴 하지만 많이 걷는 것은 무리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나를 그곳 산막이길 입구에다 떨궈주며 막 피기 시작한 연분홍의 진달래를 보면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기쁨을 막지는 못했다. 나는 기쁨에 겨워 남편으로부터 총총히 멀어져 갔다. 광양의 매화, 구례의 산수유꽃, 섬진강변의 벚꽃을 올해는 꼭 보러 가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 미안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오게 된 산막이길은 내가 여행한 곳 중에서 몇 순위 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 일단 입구에서 지도를 보고 길에 접어들어 강변을 따라 나있.. 2021. 3. 29.
괴산 문광저수지 괴산의 산막이옛길 다녀오는 길에 괴산의 또 다른 명물이라는 문광저수지에 들렀다. 한가을일 때 은행나무 단풍이 멋진 곳이어서 사진 찍으러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 은행나무를 찍기엔 어중간한 계절. 연갈색 빈 가지의 은행나무들을 보다가 여름이나 가을에 다시 오자 하며 돌아섰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산막이옛길 가기 전에 점심 먹은 식당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남편이 출장길에 지나다니며 맛있어서 몇 번 먹었던 집이라고 데려갔었다.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산골 동네에 맛집이 있었다. 더욱이 방송국에서 다녀갔던 집이다. `맛있는 녀석들'에 나왔었다고 떡하니 사진 간판이 걸려 있다. 남편은 건성으로 보았었는지 내가 그걸 얘기하자 나보다 더 놀란다. 2층 집 2층에 걸려 있어서 못 본 것인지, 정말 .. 2021. 3. 29.
홍성 김좌진장군 생가 충남 홍성에 있는 한용운선생 생가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김좌진장군 생가에도 들렀다. 한용운선생 생가는 초가삼간이어서 놀랐는데 김좌진장군의 생가는 제법 그럴 듯했다. 6시 가까이 되어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문을 닫아서 밖에서만 보았다. 담장에 기대어 생가 사진 한 장 찍고... 2021. 3. 29.
홍성 만해 한용운 생가 일제강점기 불교계에 혁신적인 사상을 전하고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며 유년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으나,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한 뒤 수년간 불교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을 창간하고 계몽적 성격의 글을 발표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 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이후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 다음백과에서 발췌 충남 홍성군에 있는 한용운 생가에 갔다. 만해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사당이다. .. 2021.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