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70

누렇게 익은 벼를 따라 행정복지센터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시간을 오전으로 바꿨다. 한 시간 가량 운동하고 11시 반이 되기 십 분 전에 나오다 보는 들판이 누렇게 참 예쁘다. 아니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수시로 내다볼 때부터 들판은 이곳도 누렇고 저곳도 누래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참 예쁜 가을이다! 어느 날엔가는 운동하러 차 끌고 가다가 말고 내려서 노란 논을 한 장 찍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논은 누렇지 않고 노랬다. 어제 보니 한 논은 벌써 추수를 마쳤더라. 조만간 사라질 풍경들...... 이 논은 피 반 벼 반. 지난해 사진에도 그러하더니. 주인장님께서 많이 연로하신가...... 올해는 쓰러진 벼가 적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친김에 갱티고개를 넘어서까지 멀리 다른 동네로 누런 논을 구경하러 갔네. 송악저수지 밑의 .. 2022. 10. 14.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밀밭이란다. 보리밭에 대한 기억은 많지만 밀밭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언젠가 이렇게 말했더니 보리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묘한 뉘앙스를 띤 질문을 하던데 그 사람이 넘겨짚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에 관한 기억이니 숨바꼭질할 때 밭고랑에 누워 숨었을 뿐이다. 개미란 놈이 목덜미를 따끔하게 물어서 아얏!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어서서 들키기도 했지만. 보리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보리밭에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갈대밭이라면 또 몰라도,였다. 강화도 초지진에는 갈대밭이 없다고 어느 블로거가 답해 주시던데, 내 기억 속에는 왜 강화도 초지진의 갈대밭으로 입력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남편과 강화도를 드라이브하다가 초지진 근처를 지나가면서 .. 2007. 6. 24.
내게 반하셨나?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는 내게 반하신 게 분명하다. 일전에도 내게 그리 말씀하셨다. 오늘도 시내에 나가려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내게 맞은편에서 오시던 할머니께서 엇갈려 갈 때쯤 발걸음을 멈추고 굽은 허리를 살짝 펴시더니 감탄한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참 이삐다. 그렇게 입으니까 참 이뻐! 아이고, 참, 너무 이삐다!" 순간, 내 입이 귀에 가 걸리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유쾌한 기분이 순식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호호호........." 할머니도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마주 웃으셨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어서. 웃음으로만 답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송구스러워서 한마디 덧붙였다. 고개를 꾸벅하면서.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그냥 가시지 않고 기쁘게 답.. 2007. 6. 18.
카레라이스 어제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남편은 군대에서 질리게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해 남편이 출장 간 날 저녁의 주메뉴이다. 카레라이스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 출장 갔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어제 오후에 카레라이스 재료를 사 오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녀석이 그 끝에 물어봤다. "아빠 출장 갔어요?" 이어 재료 속에 섞여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보고서는 "어, 내일은 골뱅이 요리할 거예요?" "응." "앗싸!"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환하게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해 시험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어릴 적에는 그저 노느라고 바빴는데 초등학생이 시험공부를 한다며 여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웃기는 녀석, 제 용돈.. 2007. 6. 13.
초여름의 나들이 유월이 오면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그땐 종일토록 향긋한 건초 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으리. 그리곤 미풍 나부끼는 하늘에 흰구름이 세우는 태양 향해 높이 솟은 궁전을 바라보리. 그가 노래 부르면 난 그의 노래 지어주고 감미로운 시 읽으리. 종일토록...... 아무도 모르게 우리 초가에 누워 있노라면,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저런 시나 읊조리며 망상에 빠지면 딱일 것 같은 6월, 초여름의 날씨에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동반이었는데, 어느새 머리가 굵어졌다고 요 핑계 조 핑계 대면서 따라나서지 않는 녀석들에게 부모 없는 사이에 알아서 끼니 해결하라며 천 원짜리 두 장 찔러주고 집을 나섰다. 더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안 따라다닐 것.. 2007. 6. 2.
엄마 노릇하기 어제도 오전에 학교에 가고, 오늘도 오전에 학교에 갔다. 녀석이 초등학생일 때도 안 해 본 노릇이다. 어제는 공개 수업 시간에 쓸려고 촬영해서 학교 홈피에 올렸던 것이 학교 컴퓨터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최대한 빨리 학교로 디카 좀 갖다 달라고 해서 "별걸 다 시키네." 투덜거리며 그제야 부리나케 머리 감고 트윈 케이크 바르고 섀도 바르고 립스틱 바르고 머리는 항상 자연 건조시키고 손가락으로 몇 번 빗는 걸 원체 늦게 마르는 머리인지라 드라이기 김 몇 번 쐬고 나갔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도로가에서 발이 삐끗하며 넘어지려다가 중심을 잡고 서서 막 다가오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를 타며 행선지를 말하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앉아 있으려니 운전사가 말을 건넨다. "아까 넘어질 뻔 했죠?" "예? 아,.. 2007. 5. 23.
뜻밖이네! 작년, 5학년 내내 반에서 2등만 하던 녀석, 설마, 하는 마음에 "올해 너 1등 하면 내가 중학생 되어야 사주는 휴대전화를 사준다." 물론, 이 말은 그럴 리가 없다는 가정 하에 한 말이었다. 그 혹하는 말을 들은 녀석,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무서워?" "응." 시험 보던 날, 풀 죽은 시무룩한 모습으로 뭔 시험이 그리 어렵냐고 투덜거렸다. "야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이틀만에 안도의 한숨은 걱정의 한숨으로 뒤바뀌었다. 세상에, 세상에 1등이란다. 초등학교 다닌 지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외출했다가 들어서는 내게 녀석이 그런다. "엄마, 안 되셨어요. 저, 1등이에요." "정말? 그럴 리가?.. 2007. 4. 25.
이렇게 황당할 수가! 어제가 큰형님 생일이었다. 나하고는 네 살 차이가 난다. 안 챙기고 그냥 지나가면 명절에 시골집에서 만나면 꼭 한 마디씩 하더라. "니만 전화 안했다. 왜 그냐?" 그렇다고 형님이 내 생일을 챙겨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뿐인가, 한 살 많은 바로 손아래 시누이도 나를 보면 한 마디씩 한다. "전화 좀 해라. 내 생일에 전화 안 한 사람은 언니뿐이다." 지지 않고 나도 한마디 한다. "아이고, 그러는 사람은? 그런 사람도 내 생일에 전화 안 했는데?" "아이고, 먼저 챙겨야지. 내 생일이 먼저 있잖아." 어쩌고 저쩌고 옥신각신...... 아무튼 말을 별로 살갑게 하지 않는 큰 형님의 생일이라 조금 거북해서 문자를 날렸다. 한두 시간쯤 지났나. 문자의 답이 왔다. 순간, 아니 이 형님이 셋째 동서의 .. 2007. 4. 5.
이상한 사람들 며칠 전, 저녁 반찬거리로 정육점에 들러서 돼지고기를 사고 이어 슈퍼마켓에 들러 다른 찬거리를 사려고 가는 중이었다. 조금 넓은 골목에서 한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남자가 하나 걸어왔다. 방향이 이상한 것도 같아서 오른쪽으로 갈까말까, 아니 그냥 가도 피해 갈 수 있겠다,하는 생.. 2007.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