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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내게 반하셨나?

by 눈부신햇살* 2007. 6. 18.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는 내게 반하신 게 분명하다.

일전에도 내게 그리 말씀하셨다. 오늘도 시내에 나가려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내게 맞은편에서 오시던 할머니께서

엇갈려 갈 때쯤 발걸음을 멈추고 굽은 허리를 살짝 펴시더니 감탄한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참 이삐다. 그렇게 입으니까 참 이뻐! 아이고, 참, 너무 이삐다!"

순간, 내 입이 귀에 가 걸리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유쾌한 기분이 순식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호호호........."

할머니도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마주 웃으셨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어서.

웃음으로만 답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송구스러워서 한마디 덧붙였다. 고개를 꾸벅하면서.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그냥 가시지 않고 기쁘게 답을 하셨다.

"이잉~!"

가던 길을 가면서 얼마 동안을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렇게 기분이 째지게 좋을 수가.

지난번 그때도 그러셨다. 시내에 나가는 나를 먼발치에서부터 쭉 바라보면서 걸어오셨다. 할머니가 유심히 쳐다보며

걸어오시길래 나도 계속 한 번씩 쳐다보며 걸어갔다. 나와 얼굴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을만치 가까워졌을 때 할머니를 잘 아는 아이인지

한 아이가 연신 인사를 하는데도 할머니는 나만 쳐다보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하시다가 세 번째쯤에야 인사에 답했다.

그러고는 내게 말씀하셨다.

"이삐다. 참 이뻐! 그렇게 입으니까 참 이뻐!"

그때도 얼핏 생각한 거지만 이번에 생각이 더욱 굳혀졌다. 할머니는 고운 색깔과 꽃무늬를 좋아하시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연둣빛에 갈색 꽃무늬가 들어간 남방을 입었고, 이번엔 진분홍에 회색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멋을 내고 지나가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지나가버린 젊음을 그리워하시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풋풋한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맵시 있게 걸어가면

"아참, 이쁘다! 정말 이쁘다!"

하고 감탄하듯이. 내 나이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탱탱한 피부의 탄력과 나긋나긋한 옷맵시와 풋풋한 싱그러움이 이뻐 보이듯이,

할머니 역시 지나가버린 젊은 날의 어느 한때를 떠올리시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할머니로 인하여 가는 내내, 아니 종일토록 기분이 째진다. 이쁘다질 않는가.

그것도 그냥 이쁜 것이 아니라, 참! 너무! 이쁘다질 않는가.

할머니, 지금처럼 고운 미소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요!

 

 

이 사진은 <풀꽃나라>의 바라바바 님이 찍어오신 거다. '개개비'라는 이름의 새란다. 새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나는 이름도 모습도 처음 보았다. 보는 순간에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이 모습에 반했다.

마치 뽐내는 듯이 부리를 쩌억 벌리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나만큼 노래 잘 부르는 새 있으면 나와 봐봐아아아~~~~~ 하는 것 같아서.

귀엽고 이삐다. 그것도 그냥 이쁜 것이 아니라 참! 너무! 이삐다!

 

 

*****

 

2007 년 8 월의 마지막 날.

 

 

동네에 왕팬이 하나 생겼다.

어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 지름길인 좁은 골목으로 꺾어지는데 어느 집 앞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는 짧은 순간에 그 할머니가 또 그러신다.

"치마가 참 이뻐!"

"흐히힝......"

고맙고 쑥스럽게 웃었다. 이어진다.

"얼굴도 이쁘고......

"흐이잉....... 감사합니다...... 흐이잉......"

지나쳐 걸어오는 내 뒤통수에 연거푸 칭찬이 날아온다.

"아이고, 치마 색깔이 참 곱다."

아무래도 내가 할머니 맘에 쏙 들게 옷을 입나 보다. 어제는 연두색과 흰색의 빗살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흰색 볼레로를 걸쳤다. 원피스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든지 위에 걸쳐 입은 볼레로 때문에 치마로 보였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돌아서 오는 길, 웃음이 쿡쿡 난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 할머니가 실은 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라보는 눈빛 하며 감탄하는 추임새가 어째 여자의 것이 아니라 남자의 것처럼 들린다... 큭큭.

이제까지 세 번째 들은 감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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