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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초여름의 나들이

by 눈부신햇살* 2007. 6. 2.

 

<사진 출처 = 네이버 >

 

 

 

 

 

 

 

유월이 오면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그땐 종일토록

 

향긋한 건초 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으리.

 

그리곤 미풍 나부끼는 하늘에 흰구름이 세우는

 

태양 향해 높이 솟은 궁전을 바라보리.

 

그가 노래 부르면 난 그의 노래 지어주고

 

감미로운 시 읽으리. 종일토록......

 

아무도 모르게 우리 초가에 누워 있노라면,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저런 시나 읊조리며 망상에 빠지면 딱일 것 같은 6월, 초여름의 날씨에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동반이었는데, 어느새 머리가 굵어졌다고 요 핑계 조 핑계 대면서 따라나서지 않는 녀석들에게 부모 없는 사이에 알아서 끼니 해결하라며 천 원짜리 두 장 찔러주고 집을 나섰다. 더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안 따라다닐 것 같아서 이천 원만 줬다.

 

전날 담근 김치 겉절이와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참외만 조금 사 가지고 갔다.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말라고 했지만, 점심은 그냥 간단하게 김밥 몇 줄로 해결하자고 했지만 빈 손으로 가기에는 어쩐지 너무 성의없이 가는 것 같고, 마침 김치를 담갔으니 김밥 먹으면 목도 메일 것 같고 겸사겸사 갖고 갔다.

 

오래된 고정 멤버 중에서 한 집만 사정상 빠지고 네 집이 모이는 줄 알고서 벚꽃철에 비해 한산하기 그지없는 길을 달려 대공원에 들어서서 입장료는 받지 않지만 여전히 주차료는 받는지라 주차료 내고 주차장에는 제법 많은 차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왔나 보구나, 생각하며 주차를 하고 모임 장소인 매점 앞으로 갔다. 멀리서도 자칭 윤수일 비슷 생겼다고 하는 남편의 친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우리 여자들이 퉁퉁 불은 윤수일이라고 놀려먹기도 했지만, 윤수일 보다는 심슨을 더 많이 닮은 것 같은데 본인은 한사코 윤수일과 닮았다고 힘차게 힘차게 주장했다.

 

새로운 분과 그 가족이 있었다. 새 멤버라고 한다. 그 집은 작은아이가 따라왔고, 다른 집은 두 아이들이 다 따라왔다. 나중에 온 집의 한 집도 두 녀석이 다 따라왔다. 그 중 머리 굵은 축에 끼는 녀석은 입이 댓발 나와 있고 별 말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이란다. "아니, 고 2도 따라오는데, 이제 겨우 중 2가 왜 안 따라온겨?" 라며 난리 법석이다. 다른 나머지 한집이 우리 집처럼 부부끼리만 달랑 왔다. 절대로 절대로 따라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의 대학 동창들 모임이고, 아주 오래 된 모임이어서 연말 모임이나 집들이, 돌잔치 때, 또 지금처럼 여름에 두세 번 모인 적이 있지만 띄엄띄엄 봐서인지 아니면 새로 온 분이 있고, 그중 몇 번 참석해서 잠깐 얼굴 비추고 말 몇 마디 없다가 가버린 윤수일 닮은 분의 처가 있어서인지 처음엔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독 내게 친밀감 있어하는 같은 전라도 쪽(사실, 전라도에는 몇 년 살지도 않았는데, 태어난 곳이 전라도인지라 고향이 전라도라고 하면 그쪽 사람들은 내게 굉장히 친밀감 있어한다.)의 부인이 오자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졌다. 그 부인이 말을 구수하게 잘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도 부인들이 한결같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서 가장 많이 놀랐다. 윤수일 닮은 분, 아니 심슨 씨와 판박이인 분의 부인은 아직도 55 사이즈를 입을 것처럼 군살이 하나도 없고, 피부도 뽀얗고, 그 집 딸내미조차도 자기 엄마는 미인이라고 한다. 어디 모임에 가면 여자는 여자를 주의 깊게 보고, 남자는 여자와 달리 동성의 옷차림이라든가 행동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다.

 

다른 한 친구네는 캠퍼스 커플이어서 남자들과 같은 동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조금 더 스스럼없이 대한다. 학교 다닐 때도 얼굴을 보았다는 것은 친밀감에 한몫 단단히 할 터이다. 남자가 주식으로 많은 돈을 날려서 한때는 이혼 말도 오갔던 것으로 아는데, 그때만 잠시 그랬는지 부부 사이는 대체로 좋아 보인다. 맞벌이다.

 

다른 한 친구네(부인이 전라도 쪽)는 얼마전에 남편이 간수치가 많이 올라가서 쓰러졌다. 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봤더니 눈동자가 너무 노래서 많이 놀랐다. 아직도 많이 조심해야 하고 절대적으로 스트레스는 받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자기 남편은 이쁜 여자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오빠라고 불러주면 간이 녹는다고 기쁨조 차원으로 한 번씩 오빠라고 불러달래서 모두 배를 잡았다.

 

새로운 멤버네 역시 맞벌이다. 새로운 멤버라서 아는 것이라곤 그 부인이 모 은행의 차장급이라는 것과 연봉이 꽤 높다는 것이다. 묘하게 기가 죽는 이유다. 게다가 피부도 뽀얗고 바쁘게 살아서인지 자기 관리를 잘 하는지 날씬하고 살짝 세련된 맛이 있다. 멋쟁이가 멋쟁이를 한눈에 알아본다는데 그럼 이렇게 평하는 나는 세련됐는가? 하하, 세련되게 입지는 못 하지만 그걸 보는 눈은 있다.

 

그리고 우리. 나는 이 모임의 여자들 중에 가장 통통하다. 어디 가서 내가 가장 통통해 본 적은 처음 겪는 경험이다. 특히나 시댁에 가면 일반 옷 매장에 가서 옷을 구매하기 힘들 정도로 몸피들이 있어서 사촌 시동생들이 농담으로 "형수, 형수는 너무 말랐어요."하고 내게 농담을 건넬 정도다. 형님이나 동서가 엎드려서 방을 닦고 있을 때 남편과 내 눈이 마주치면 괜히 웃게 된다. 너무 넓은 평수의 힙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꼭 그것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친정엘 가도, 다른 친구들과의 모임엘 가도, 또 다른 어떤 자리에 가도 나보다 퉁퉁한 사람이 한두 명쯤은 꼭 있게 마련이어서 내가 많이 나간다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았는데, 이 모임에서는 도드라지게 나만 통통했다. 뭐, 나중에 남편은 그래도 내가 제일 적당하니 제일 예쁘다고 해서 내 사기를 돋우어줬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어디 가서 금실 좋은 부부 취급을 잘 받는데, 이 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른 집의 부인들이 우리 부부가 가장 금실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이해할 수 없어서 "아닌데, 우리 사이 별로 안 좋은데...... 싸우기도 잘하는데......"로 말을 받았다. 거기에 덧붙여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가면을 벗어. 선비의 가면을 벗고 평소대로 행동하란 말이야."

 

남자들은 패를 나누어 족구를 몇 게임하고 여자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무척 더울 거라는 일기 예보였는데 나무 그늘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카디건이나 긴소매 남방을 하나 가져올 걸 후회 막급이었다.

 

점심은 간단하게 김밥과 과일과 떡을 먹었다. 김치 겉절이로 인해 칭찬 좀 들었다. 비법을 전수받아오라느니, 예전부터 맛있게 잘 담갔다느니. 오래전에 남자들만 놀러 갈 때 음식을 준비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얘길 두고두고 하면서 이따금 그때 잘 먹었다는 얘기가 꼭 나온다. 잘 놀고 와서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는가......

 

식사 후에 남자들은 다시 족구를 하고 여자들은 나무 그늘이 추워서 따뜻한 햇살 아래로 산책에 나섰다. 후문 쪽으로 서서히 걸어가며 키가 쭉쭉 잘 뻗은 메타세쿼이아와 꽃잎이 떨어져 길에 나뒹구는 아까시나무와 저번에 벚꽃놀이 왔더니 느티나무 보고서 왜 이 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가, 물었던 남편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한다. 같은 전라도 출신의 엄마는 내게만 어깨동무를 하다가 팔짱을 끼다가 한다. 그 엄마네 아들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모두 배를 잡는다. 그것도 재주다. 말을 맛깔스럽게 하는 것.

 

후문 쪽의 작은 동물원에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작은 화면으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팔뚝이며 몸피가 다른 여자들의 두 배다. 으악! 내가 이래서 사진 안 찍는다니까........... 투덜투덜.......... 구시렁구시렁.......

 

원래는 점심 먹고 놀다가 해산할 계획이었는데 여자들이 밥 해 먹기 싫다고 해서 2차는 식당으로 옮겼다. 송도유원지에 식당이 밀집해 있다고 그중에서 골라보자고 해서 차 네 대가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이동했다. 윤수일 닮은, 아니 심슨 판박이 친구 분은 장롱면허이다. 최근에 부인이 면허증을 따서 그 집만 부인이 운전했다. 그 집은 우리가 놀고 있는 사이에 딸내미가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그쪽에서 합류했다. 그 근처에 사는 그 집이 우리를 인솔하는데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뱅뱅 도는 참에 덩달아 네 집의 차가 그 일대를 뱅뱅 돌았다. 나중에 엇갈려 가면서 다른 집의 차를 들여다보면 그러고 있는 것이 우스운지 모두 마구 웃는다. 우리도 치솟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마구 웃었다.

 

간신히 한 곳을 정해 들어갔다. 내부를 제법 잘 꾸며 놓은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반주로 와인을 곁들였다. 와인을 잘 골랐는지 와인이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전라도 쪽의 부인과 나는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서 쿵작이 맞아서 마시고 또 마셨다. 나중에 다른 친구분이 나를 부르더니 와인 더 시킬까 물었다. 네에~~~ 하고 대답했더니 모두들 박수를 치며 웃는다. 네 잔을 마셨나. 마실 때는 별 느낌 없더니 나중에 취기가 올라와서 헤어져 집에 돌아와 한숨 잤다. 술 취하면 졸리는 것이 나의 주사다. 그래서 다른 모임에 가면 주량을 조절해 가면서 마시는데 좀 과하게 마셨다. 자신의 모임에 따라와서 잘 어울리는 것이 보기에 좋았던지 남편은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그랬던 남편은 어젯밤 술에 만취돼서 들어와 평소보다 더 자신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말하고 또 말했다. 이제 그만 알았으니 그만 좀 하고 자자, 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했나 보다.

오늘 아침,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말짱한 얼굴로 다시 선비의 점잖은 자세로 돌아가 말끔한 모습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인사로 한마디 했다.

"아, 너무 사랑받는 것도 고달프고 버거운 일이야!"

그 말에 대한 답례는 남편의 어이없어하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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