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

엄마 노릇하기

by 눈부신햇살* 2007. 5. 23.

 

 

 

어제도 오전에 학교에 가고, 오늘도 오전에 학교에 갔다. 녀석이 초등학생일 때도 안 해 본 노릇이다.

 

어제는 공개 수업 시간에 쓸려고 촬영해서 학교 홈피에 올렸던 것이 학교 컴퓨터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최대한 빨리 학교로 디카 좀 갖다 달라고 해서 "별걸 다 시키네." 투덜거리며 그제야 부리나케 머리 감고 트윈 케이크 바르고 섀도 바르고 립스틱 바르고 머리는 항상 자연 건조시키고 손가락으로 몇 번 빗는 걸 원체 늦게 마르는 머리인지라 드라이기 김 몇 번 쐬고 나갔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도로가에서 발이 삐끗하며 넘어지려다가 중심을 잡고 서서 막 다가오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를 타며 행선지를 말하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앉아 있으려니 운전사가 말을 건넨다.

"아까 넘어질 뻔 했죠?"

"예? 아, 예. 정신이 없어서..."

대답하고 나니 그 상황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운전사도 웃는다. 다 큰 여자가, 아니 중년의 아줌마가 허둥지둥거리며 넘어지려던 꼴이 우스웠나 보다.

 

그제 오후에 집에 들어서던 녀석이 내일 학교에 와야 된다고 했다.

"왜, 또?"

마치 언제 학교에 간 적이 있었던 듯 짜증 비슷하게 물었다.

"내가 엄마가 이럴 줄 알고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선생님께 엄마는 안 오실 거라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하신대."

학교에서 부모님들이 참석하는 무슨 행사가 있는데 녀석이 또 짐작으로 엄마가 싫어하니까 제 선에서 해결을 했나 보다. 담임선생님은 그 부분에 또 좀 그래서 직접 전화를 하실 요량이셨나 보다.

 

두 번인가 담임선생님과 통화해 본 결과 선생님과의 통화는 괜스레 좀 어려웠다. 별 내용이 없음에도 어쩐지 담임이라는 내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는 점에서 이상하게도 조심스러움이 들어가다 보니 편안하지 않았다. 편안하지 않는 것은 피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그 저녁에 통화하지는 않았으나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디카 갖다 달라는 전화에 아무 생각 없이 학교로 달려갔다. 입학하기 전, 가족 모두 학교 위치를 알려고 가 본 후로는 처음 학교에 가는지라 위치를 잘 몰라서 그저 학교 앞에서 내려달라고만 하니 운전기사 양반이 알아서 학교를 찾아 내려줬다. 내려서 보니 엄마들이 하나 둘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제야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아, 오늘 학교에 행사 있지......

 

녀석의 반을 찾는데 학교를 뱅뱅 두세 바퀴 돌아야 했다. 다른 엄마들에게 묻자 엉뚱한 곳을, 학교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묻자 다시 엉뚱한 곳을 알려줘서 결국엔 학부모 대기실 교실에 붙여둔 반 배치도를 보고 반을 찾았다.

 

창문 너머로 교실을 들여다보다가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수업 중이라 어찌할 수 없어서 쉬는 시간에 건네주려고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중간에 마주친 수업이 없는 듯한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까지는 15분 정도 남았다고 해서 까치발을 하고서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이왕 내친 걸음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는데 참관하고 가자,하며 일층의 입구에 가서 학부모 방명록에 왔다는 흔적으로 싸인을 하고 다시 시간 맞춰 교실로 올라오는데 녀석과 선생님이 나를 찾고 있었다.

어디 갔었냐고 물어본다. 조금 전에 마주 친 선생님이 수업 방해된다고 해서 일부러 피한 건데......

 

학부모 대기실에 갔더니 아버지인지 남자 분도 두엇 있었다. 맞벌이인가? 아님 싱글인 아버지인가? 공연히 관심이 생긴다. 할머니가 오신 집도 있고.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간단히 몇 말씀하시고 각자 교실로 이동하란다. 녀석이 중 2가 될 때까지 학교에 한 번도 오지 않았으므로 학교 방침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옆에 서 있는 다른 엄마에게 물었다. 각자 교실에 가서 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는 그냥 교실로 가서 보면 됐는데, 이곳 중학교는 일단 대기실에 모였다가 각자의 교실로 가거나 운동장으로 나가거나 과학실이나 컴퓨터실로 가는가 보았다. 그날 수업에  따라서.

 

녀석 반의 수업은 국어였다. 들어갔더니 아까 인사를 나눴던 분이다. 긴 머리의 자그마한 체구의 여선생님이었다. 그러니까 아까는 공개 수업할 것을 연습하고 있었던가보다. 그러니 아까 디카를 건네줬어야 하는데, 수업에 방해될까 봐 피한 것이 피해를 준 꼴이다.

 

학부모 라야 기껏 서너 명이 왔고, 장학사인 듯한 분이 두 분인지 세 분인지 잘 모르겠다. 열심히 뭘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장학사님인가 보다, 미뤄 짐작했다. 중학생인데 그 나이쯤 되면 제 할이야 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마음이 커 굳이 학교를 쫓아다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나는 아마도 다른 경우였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수업은 <발표하는 방법>에 관한 것으로 오디션이나, 학교 소개나, 친구에 대한 소개 등을 배우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요즘 많이 피곤하다고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지 않던 녀석이 교회에 가서 수업 시간에 쓸 것을 찍어온다고 해서 쟤는 참 염치도 좋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목사님께서 안된다고 해서 다른 반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찍어온 것을 녀석의 조가 첫 번째로 발표했다. 녀석의 조는 연예인 오디션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 주제였다. 먼저 네 명이 차례대로 신화처럼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ㅇㅇㅇ몽키예요(아마도 그룹명이 몽키인가 보다), 하며 자기의 닉네임을 말했다. 그리고 몇 장면 자기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이어서 동영상이 돌아갔다. 녀석은 전자기타를 치고 한 친구는 노래를 하고, 다른 반의 친구가 베이스 기타를 그 교회의 형이 드럼을 쳤다. 화질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럴 듯한데 아쉬움이 있다면 노랫소리가 기타와 드럼 소리에 묻혀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끝으로 장기를 짧게 보여준다며 지난번 수학여행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음에 틀림없는 녀석이 춤을 추고, 우리 큰 녀석이 비트박스를 했다. 진짜, 저 녀석은 별의별 것을 다한다 싶었다. 시종일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며. 어제저녁에 제 아빠로부터 검도용 목검으로 있는 힘껏 엉덩이를 세 대나 맞았으니 엉덩이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을 게 뻔한데...... 저렇게 저런 것에 빠져 있으니 사람 앞에 나서는 게 너무 즐겁고 좋아서 장차 연예인이 꿈이니 공부가 머리에 잘 들어올 리가 없다. 녀석의 공부 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공부 잘하는 동생이 미워지려고 한단다. 자신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므로. 남편과 나는 많이 실망했다. 그리고 서서히 체념하고 있다.

 

그래, 네 갈 길로 가거라. 그것에 빠져서 대학 갈 실력 안되면 할 수 없지, 뭐. 초등학교 나와도 다 살 길 살더라.

 

오늘은 체육대회 날. 임원 엄마가 간식으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넣어줘야 한다고 해서 학교에 갔다. 노란색의 반 티를 입고 있는 녀석에게 슈퍼에 음료수 주문하고 갈 테니(다른 임원 엄마가 고맙게도 그 방법을 알려줬다.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가나, 고민했는데...... 연약한 척이 나의 주특기다. 흐흐...) 배달 오면 나누어 먹으라고 일렀다. 슈퍼에서 주문하고 녀석에게 확인 문자 받고서 터덜터덜 먼 길을 걸어 시내에 들러서 아이들 양말 몇 켤레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 사이 부반장 엄마(나의 임원 엄마 활동의 조언자)로부터 전화 와서 통화하고, 마치 큰 일 하나 치른 듯이 홀가분하고 조금은 맥 빠지는 기분으로.

 

집으로 오면서 보니 동네의 어느 집 담 밑에 고들빼기 꽃(사실은 '노랑선 씀바귀'인지 '고들빼기'인지 헷갈린다. 씀바귀류는 수술이 갈색 빛을 띠던데, 조 녀석은 수술도 노랗고 이파리도 고들빼기 같아서...... 어려워......)이 예쁘게 피어 있다. 참 곱다! 하며 얼른 디카를 꺼내 한 장 찍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과 친구들을 담을 생각은 하지도 못 했네......

 

 

 

 

 

'하루 또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레라이스  (0) 2007.06.13
초여름의 나들이  (0) 2007.06.02
뜻밖이네!  (0) 2007.04.25
이렇게 황당할 수가!  (0) 2007.04.05
아들의 수학여행  (0) 2007.03.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