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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아들의 수학여행

by 눈부신햇살* 2007. 3. 31.

어제 큰녀석이 2박 3일의 강원도 쪽으로의 수학여행에서 돌아왔다. 가던 날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그다음 날도 오전에는 반짝 해가 비추다가 점점 흐려져서 쌀쌀한 날씨가 되더니 저녁 무렵에는 다시 비가 내렸다. 돌아오는 어제만 모처럼 햇볕이 따뜻해서 봄날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엄마가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되니까 틈틈이 연락을 취하라고 일렀다. 녀석 첫날 저녁에 <엄마아들 무사함ㅋㅋ> 요렇게 짤막하게 문자가 왔다. 나는 비가 와서 염려도 되었고 구경은 잘했는지 걱정이 되어서 좀 길게 답장을 보냈다. <아우비우산 가져왓자나요ㅋ> 띄어쓰기 철자법 완전 무시한 답장이 왔다.

생각해보니 우비랑 우산이랑 다 알뜰하게 챙겨가지고 갔다.<그랴 아조 잘했다 기특하다 이따 푹 자고> 칭찬을 했다. 보내기가 바쁘게 문자의 답이 왔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네네네>.

 

수학여행 간 지 이틀째인 그제는 친구들과 만나서 점심을 먹는데 아침에 반짝 비추는 햇빛 때문에 따뜻할 줄 알고서 얇은 옷차림으로 나갔다가 제법 쌀쌀한 날씨에 춥길래 아들이 춥겠다, 날도 참 잘 골라서 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에서 돌아온 녀석은 많이 추웠다고 했다.

 

상기된 얼굴로 녀석은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안경을 맞추러 가야 한단다. 친구와 장난치다 안경테를 망가뜨려서 안경알이 빠져버렸는데 하나만 찾고 하나는 못 찾았단다. 아직도 여행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태도로 왔다갔다 하면서 이어지는 얘기가 이번 수학여행에서 제가 얼마나 명성을 날렸는지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로 침을 튀긴다.

 

수학여행 가서 장기자랑 시간에 브레이크 댄스를 추겠다고 하던 녀석은 도저히 안되겠던지 중간에 래퍼를 하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방과 후에 춤 연습하는 아이 옆에서 다른 친구 하나와 둘이서 <에픽하이>의 최신곡을 부르고 또 불렀단다. 한동안 6시쯤에 귀가하는 이유를 묻자 랩 연습을 한다고 하길래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넌 참 꿈도 많고 용감하기도 하다. 랩을 할 수 있겠어? "

"왜요? 제가 못 할 것 같아요?"

정색을 하며 따지는 듯한 되물음에 꼬리를 내리며 말했었다.

"아니...... 그냥 니가 신기해서......"

 

랩 연습을 하는 동안에 기타도 쳐야 했다. 교회의 1부(중고등학생부 예배) 예배 시간에 밴드에 서보라고 부목사님께서 권유했기 때문이다. 주중에 한번 가서 9시 반까지 연습하고, 토요일 오후에 가서 늦게까지 연습하고, 일요일 아침에 9시가 예배 시간인지라 여섯 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교회 가서 또 연습해서 첫 무대에 섰다. 그날 왠지 모르게 설레고 조금 떨리는 마음이 되어서 2부(대예배) 예배드리러 가며 예배 끝나고 나오는 아들에게 "잘했어?" 하고 묻자 어깨를 건들건들하며 입을 한껏 귀까지 벌리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덩달아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잘했다!" 했다.

 

공부, 기타, 랩,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려니 힘에 겨웠던지 피곤하다, 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녀석은 그다음 주에는 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그러는 아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 네 멋대로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기로 했으면 믿음을 져버리지 말아야지, 교회에도 그전에 미리 연락을 취했어야지, 하고 나무랐다. 그런 일들에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는 것이 나의 교육 방침이다.

 

오죽하면 반장이 되어온 녀석에게 나는 학교 활동 안 한다,라고 했더니 학부모 총회 날짜도 알려주지 않아서 불참하게 되었다. 하긴 알았어도 가지 않았을까. 마침 그 날 서울의 한 교회에서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서 참석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해서 소파에 잠시 누워 있는데 부반장 엄마라며 전화가 왔다. 반장 부반장 엄마는 의무적으로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단다. 그중의 하나가 무슨 행사 때에 얼마간의 돈을 내는 것이란다. 부반장 엄마의 전화를 받고 담임 선생님께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전화를 드렸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지난주의 하루는 그 기본적인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장 부반장 엄마들만 모이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 모임에도 회장 부회장 총무가 있어서 돈만 내면 그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돈만 내고 왔다. 학교에서는 그런 모임을 갖지 말고 돈도 걷지 말라고 공문이 왔던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나는 의심이 많은 성격인가. 녀석에게 물어봤다. 먹을 것 들어왔던?

 

내 질문은 귀찮다는 듯이 짤막하게 대답하더니 자기가 장기자랑 시간에 랩을 하는데 지난번 교회에서 기타 연주할 때와는 달리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입안의 침도 마르고 가사도 잠시 까먹었단다. 그런데 녀석의 랩이 시작되자 아이들의 호응이 생각 밖이어서 일순간에 긴장이 사라지면서 흥이 나더란다. 흥에 겨운 몸짓으로 랩을 하며 걸어다니는데 너무 무대 가장자리로 가는 바람에 랩을 하는 자기는 조명에서 벗어나고 서있던 다른 친구에게만 조명이 쏟아져서 실수다, 라는 생각을 했다나 어쨌다나. 다른 반은 장기자랑을 한 가지만 하는데 녀석의 반은 브레이크 댄스에 랩까지 두 가지를 해서 1등을 하고 부상으로 4만 원을 받아서 방마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 넣었다나 어쨌다나. 선생님들께서는 반장의 복장이 날라리 같다고(녀석 귀도 뚫었다... 쩝!) 하시더니 보고 난 후에는 잘했다고 칭찬하시더란다. 담임 선생님께서도 기뻐하시고, 교감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다른 발표회에 너희 셋은 예선 치르지 않고 무조건 통과라고 하셨단다.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을 만끽했나보다. 녀석의 꿈은 연예인이다. 그 허황된 구름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녀석의 미래가 가끔씩 아니, 많이 염려스럽다. 꿈을 이루기도 힘들지만 정말로 어찌어찌하여 화려한 조명을 받는 연예인이 된다 해도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고독감과 어두운 면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공부의 중요성도 새삼스럽게 강조한다.

"너, 김태희가 왜 잘 나가는 줄 아니? 이쁘기도 하지만 서울대생이기 때문이야. 이쁜데 공부까지 잘 하다니하고 말이야. 그리고 에픽하이의 타블로, 그도 미국의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 나온 것 알지? 그런 것 알고 나면 그 사람이 다시 뵈지? 공부도 잘해야 해......"

 

하지만 사람이 두 가지를 잘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쉽냐고 나도 생각하고 주변에서도 염려하고...... 이제 우등생 엄마가 누리는 기쁨은 작은녀석에게나 기대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작은녀석을 살짝 떠봤더니 "왜 부담을 주고 그러세요." 그런다. 네게도 기대하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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