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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카레라이스

by 눈부신햇살* 2007. 6. 13.

 

 

 

어제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남편은 군대에서 질리게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해

남편이 출장 간 날 저녁의 주메뉴이다. 카레라이스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 출장 갔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어제 오후에 카레라이스 재료를 사 오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녀석이

그 끝에 물어봤다.

"아빠 출장 갔어요?"

이어 재료 속에 섞여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보고서는

"어, 내일은 골뱅이 요리할 거예요?"

"응."

"앗싸!"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환하게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해 시험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어릴 적에는 그저 노느라고 바빴는데

초등학생이 시험공부를 한다며 여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웃기는 녀석, 제 용돈은 수전노처럼 아끼면서 내게 갖은 생색을 다 내며

공부 잘하려면 초콜릿이 많이 도움이 되니 진한 걸로 한 통 사내라고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저한테 좋은 것이지 마치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 것 마냥.

그래도 어쩌겠는가. 먹어서 공부가 잘 된다면 사주는 수밖에.

카카오 함유량이 너무 많은 것은 써서 싫다며 56% 짜리로 사다 놓고

한 알씩 한 알씩 꺼내 먹으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방에서 나와 내게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곤 하는 말.

"엄마, 매일매일 맛있는 것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푸하하...... 너는 맛있는 거 먹는 것이 그렇게 좋으니?"

"네~~~~~~~~~!!!"

큰 소리로 대답하고 들어갔다. 잠시 후에 빼꼼히 들여다보니 방바닥에 퍽 엎드려

mp3 이어폰까지 귀에다 꽂고서 아주 불량한 자세로 공부를 하고 있다.

 

 

 

 

한창 감자며 당근, 양파 껍질을 까며 칼질을 하고 있는데, 벨렐레레레~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봐라."

아이가 통화하더니 엄마는 지금 요리 중이시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바꾸라고 했는지

전화받으란다.

"여보세요."

"오늘 메뉴는 뭐야?"

이 집 식구들은 학교 파하고 오기가 무섭게, 남편이란 사람은 직장에서 가끔 전화로 저녁 메뉴에 대해서

묻는데 이렇게 출장까지 가서 메뉴는 왜 묻는담.

"카레라이스. 당신은 뭐 맛난 것 묵을 건데?"

"나도 카레라이스 먹을 줄 아는데."

"어! 당신이 싫어해서 당신 없는 날 저녁에 만들어 먹는데..."

"어쩌다 한 번씩 먹는 것은 나도 괜찮은데."

이렇게 투정을 부린다.

 

오늘 아침엔 또 전화해서 뭐하느냐고 어젯밤에 또 술 마셨느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하게 남편이 출장 간 날

저녁에는 일찍 잠이 오지 않아서 늦게까지 혼자서 논다. 십자수도 놓다가, 책도 펼쳐 보다가,

묵은 편지들 꺼내서 읽어보다가, 이 옷 저 옷 꺼내서 갈아입어보다가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담가논 과실주를 반 컵 정도 갖다가 홀짝홀짝 마시면서 컴퓨터를 들여다 보기도 한다.

지난번 출장 갔을 때는 탱자주를 반 컵 갖다 놓고 홀짝홀짝 마시며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묘하게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취기가 올라오면 드러누워서 꿈나라로 갈 요량이었는데.

다시 반의 반 컵을 갖다가 마셨다. 그래도 몽롱해지지가 않았다. 에잇, 한번 더.

그날 밤에 나는 영영 이 세상과 하직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한꺼번에 취기가 오르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고,

팔다리가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전혀 말을 듣질 않고, 숨쉬기도 곤란하며, 속이 뒤집어지며 구역질이 났다.

그때 혼쭐이 나서 어제는 3분의 1 컵을 마시고 취기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이 딱 기분 좋게 풀어지던 것을

전에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그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그걸 떠올리고 묻는 것이다.

 

지금 남해는 비가 흩뿌리고 있단다. 이곳은 쾌청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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