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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이상한 사람들

by 눈부신햇살* 2007. 3. 22.

 

 

며칠 전, 저녁 반찬거리로 정육점에 들러서 돼지고기를 사고 이어 슈퍼마켓에 들러 다른 찬거리를 사려고 가는 중이었다. 조금 넓은 골목에서 한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남자가 하나 걸어왔다. 방향이 이상한 것도 같아서 오른쪽으로 갈까말까, 아니 그냥 가도 피해 갈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쳐 가는데 막 스치는 순간에 남자의 손이 쑥 뻗어나오더니 나의 오른쪽 허리와 엉덩이쯤을 쓰윽 만지는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너무 기가 막혀서 뒤를 돌아다보며 한마디 했다.

"어머, 미쳤나봐!"

그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나는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라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한마디 더 보탰다.

"미친 XX!"

 

집에 와서도 씩씩 화가 끓어 올랐다. 얼마 전에는 날궂이를 하는지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데 왠 남자 하나가 중얼거리며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는데 느낌이 좀 이상해서 앞을 봤더니 그 어슬렁거리던 남자가 차마 내 입에는 담지 못할 이상한 상소리를 막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무서워서 얼른 집을 향해 뛰었다. 그러자 뛰어간다고 또 뭐라뭐라 상소리를 해댔다. 집안으로 뛰어들면서 보니 맞은 편에서 젊은 아기 엄마가 아기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냉큼 뛰어들어 현관문을 닫고 한숨 쉬고 나자 조금 용기가 생겼다. 다시 문을 열고 밖을 보니 골목을 벗어나고 있는 이상한 남자의 뒷통수를 향해서 별로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 미친 XX야!"

 

상소리를 중얼대고 다니던 남자는 마누라가 집을 나갔나보다. 그것도 매일 산에 간다고 하다가 그리됐나보다. 그 화풀이를 다른 여자들을 보면서 상소리를 해대는 것으로 푸는가, 남자가 중얼대던 말들이 듣고 싶지 않았지만 고스란히 내 귀에 다 들렸다. 상심이 커서 그렇게 살짝 돌게 됐을까, 살짝 그런 증세를 보이니까 마누라가 그리 했을까. 아무튼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이다.

 

아가씨 적에 간혹 그런 일들이 생기곤 했지만 사십을 넘어선 아줌마의 나이에도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 참 어이없기도 하고 여자라서 겪는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남자의 멱살이라도 틀어잡고 뺨을 이쪽저쪽 왕복으로 몇 대 갈겨줘야 분이 조금 풀릴 것 같지만 그보다 무서운 생각이 더 컸고, 미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내가 더 미친 짓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의 일들도 그런 일은 좀체 잘 잊혀지지 않는다. 아침 출근길에 느닷없이 다가와서 가슴을 한번 쓰윽 만지고 도망가던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던 앳된 모습의 남자 아이, 퇴근길에 자전거 타고 계속 쫒아오며 성추행 비슷한 말들을 쏟아 놓아서 기겁을 하게 만들던 아저씨와 싫다고 싫다고 해도 한번만 차를 마시자고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던 전혀 차 마시고 싶지 않게 생겼던 남자들......

 

나이 들고 아줌마가 되어서 좋은 것은 그런 것들로부터 놓여난 것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이런 일을 겪으니 여자라서 불리한 것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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