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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아홉 날 올해는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든 애동지라 팥시루떡을 해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며칠 일찍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팥죽을 끓였다. 하지만 아무리 팥죽을 좋아하는 나여도 팥죽으로 대여섯 끼를 먹으면 이제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새알도 너무 많다. 나는 팥국물이 좋은데 새알 가득히 떠줘서 먹느라 고생했다.ㅠㅠ 해줘도 말 많고 탈 많은 딸 같으니라고...... 그래도 함께 새알 만들어 팥죽 끓이는 시간이 재미있고 좋았다. 흰 눈이 살짝 내렸던 날에는 행여 엄마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혼자서 산에 올랐다. 나이 드시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상사라고 하니까. 친정에 머무는 아홉 날을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산에 올랐다. 도심에,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야산이 있는 것은,.. 2024. 1. 2.
설경을 보며 호수 한 바퀴 눈이 내렸다.함박눈이 펑펑 고요하게 내린다면 집안에 들어앉은 나는 편안하고 아늑한 감성을 느꼈을 텐데아주 오래전 유행가 가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를 한 번씩 떠올리게끔이따금 천둥도 쿠쿠쿠쿵 배탈 난 뱃속처럼 울려대 신경 쓰이게 했고,세찬 바람은 눈을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휘몰고 다니고 있어서창밖을 내다볼 때면 내리는 눈들이 마치 갈피를 못 잡고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며 심란스럽게 했다.  바람을 동반하고 내리는 눈은 나뭇가지에 쌓이지 못했다.쌓일라치면 바람이 톡 건들어 털어내는 꼴이었다. 그래도 베란다 난간엔 눈이 조금 쌓이고 신기하게도 고드름이 달렸다. 눈 온 다음날 설경을 보러 가자고 긴 다운 외투에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어머나! 보도블록은 이렇게 예.. 2023. 12. 18.
보통의 날들 어느 날은 길 위에서 서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보게 되었다. 넘어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네. 또 다른 어떤 날은 서쪽으로 난 창을 열다가 아직 아침 하늘에 머물고 있는 달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엔 헬리콥터가 무언가를 나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고 향 노 천 명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늘타리 따는 길 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등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집중화 상아 뻐국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채 기룩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 2023. 12. 12.
호기심이 발동하여 지난여름 7월, 한창 더울 때 다녀왔던 신정호 주변에 있는 카페 웜사이트 온양에 다시 가보게 되었다. 더가까이 님께서 `크렘 뷔렐레'를 올리셨길래 먹어보지 않아 맛을 모른다고 하였더니 내 사는 곳 주변에서 팔고 있는 곳을 검색하여 알려 주셨다. 미국에 거주하고 계시면서 말이다. 모두들 햇살을 피해 내부 안쪽으로 앉아 있길래, 예전처럼 다시 창가에 앉았다. 그리하여 지난번과 똑같지만 계절에 따라 달라진 풍경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마늘바게트와 크림 뷔렐레, 저 쪼그만 크림 뷔렐레 한 개에 5,800원. 을매나 맛있길래? 하긴 엄청 맛있다는 평을 남기게 된 저 마늘바게트도 6천 얼마였다. 그새 가격 까먹음. 크림 뷔렐레에 대한 소감 한 마디. 나는 미맹인가 봐. 에그타르트 비슷한 맛이 나. 크기도 딱 에그타.. 2023. 12. 9.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라는 생소한 나라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건 2008년도에 친구의 출판사에서 펴냈다 하여 구매했던 신미식 사진작가의 책에서였다. `어린 왕자'에서 읽으며 낯설었던 이름의 꺽다리 바오밥나무가 늘어서 있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붉디붉은 황톳빛 흙길이 있고,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는 별이 반짝이는 듯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마다가스카르에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팀이 간다고 하여 무척 반가웠다. 저번에 동생과 얘기를 나누다 무슨 말끝엔가 "언니는 그냥 기안84를 좋아하는 것이네."라고 했고, 나는 아무 거부감 없이 "맞아. 기안84를 좋아하는 편이야."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그런 기안이가 나오는 프로이고, 게다가 촬영지가 마다가스카르라고 해서 그렇잖아도 좋아하는 프로인데 .. 2023. 12. 5.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중의 하루 한 끼는 외식을 하게 되는 날이 많은데 그때는 주로 점심으로 먹게 된다. 신정호 주변의 카페와 식당을 모두 가보자는 계획에 따라 이번엔 황산 앞으로 새로 지은 쌍둥이 건물 중의 하나에 들어선 중식당으로 가보자고 했다. 건물 외관을 찍으려다가 별 걸 다 찍는다는 핀잔에 움찔해서 사진이 엉망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찍으면서 멋쩍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왜 찍는 걸까? 중식당 안에서 바라보는 겨울 빈 논 너머의 신정호수공원. 모내기 끝난 5월 말 초록논부터 추수하기 전 11월 초 황금논까지 논뷰가 참 멋질 것 같다고 했더니 빈논이 주는 운치도 참 좋다고 해서 겨울에 흰 눈이 하얗게 쌓일 때도 멋지겠다고 생각 들었다. 쌍둥이 같은 옆 건물은 이름이 .. 2023. 12. 4.
11월, 늦가을의 신정호 코로나 감염 후유증으로 자주 급피로감을 느끼게 되어 올가을엔 신정호에 매우 드물게 가게 된다. 오랜만에 집에서 주말을 맞게 된 날, 피자로 점심을 먹고난 후 신정호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루꼴라 피자와 크림 파스타, 탄산수를 주문했다. 맛은 그럭저럭. 비용은 52,000원 발생(굳이 기록하는 이유는 이때의 물가가 어땠나 궁금할 것 같아서.....ㅎㅎ). 크림 파스타에서 들깨수제비 맛이 나는 걸 보니 들깻가루를 넣었나? 그리고 화덕피자라서 오른편 창문 밖으로 장작이 잔뜩 쌓여 있는데 보기만 하여도 따뜻해지는 것은 그것이 불타오를 때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일까? 억새들의 하얀 단발머리가 멋졌다. 억새의 필체 신 형 식 손 흔들고 있는 것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한발 늦게 눈물이 난다고 편지를 씁니다 이미 마음.. 2023. 11. 29.
흐뭇함과 즐거움이 차오르던 날들 또다시 오랜만에 친구들과 뭉쳐서 인사동에 갔다. 평일의 인사동도 붐볐다. 주말이면 차가 통제되어 걷기에 수월했지만 평일이라 이따금 차도 지나다녔다. 11월 하순, 인사동의 회화나무들은 아직도 잎을 달고 있었다. 이제는 경인미술관 앞의 개성만두집 `궁'을 잘 찾을 수 있다. 수도약국 옆길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나타난다. 주말에 오면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어서 평일이라 줄 서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찾아왔음에도 우리의 생각을 비웃듯이 열두 시 막 지난 시간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11시 반에 오픈하는 것 같은데 벌써 긴 줄이라니 일부는 오픈런을 하였을까? 개성만두집 `궁'은 이제 보니 미슐랭도 인정한 맛집이다. 대를 이어서 운영하는 가게인가 보다. 담백한 것 좋아하는 나지만 그렇게까지 맛있다 못 느끼는.. 2023. 11. 27.
첫눈 오던 날 11월 17일 오전 10시 무렵 주차장 지붕과 바닥이 젖어 있어 비가 오나 보다 생각했는데 헬스장 유리창 너머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렸다. "눈 온다!." 나도 모르게 나온 외마디 감탄사. 그러나 다시 비로 바뀌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차 더러워지겠다는 생각. 그러다 다시 오후엔 한 차례 희끗희끗 날리더니 마트에 장 보러 갔다 올 때쯤엔 이렇게 개었다. 마트 주차장이 만차여서 아래위로 빈 곳 찾아 돌아다니다 간신히 주차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쓱데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신정호에 가보았다.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고 얇은 옷차림이었던 나는 얼마 못 걷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오리들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커튼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네. 11.. 202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