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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보통의 날들

by 눈부신햇살* 2023. 12. 12.

 
 
 

어느 날은 길 위에서 서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보게 되었다.
 

넘어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네.
 

또 다른 어떤 날은 서쪽으로 난 창을 열다가
아직 아침 하늘에 머물고 있는 달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엔 헬리콥터가 무언가를 나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고           향
 
                 노 천 명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늘타리 따는 길 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등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집중화 상아 뻐국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채 기룩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까며 소녀들은
금방뱅이 놓고 간
도깨비 이야기를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직이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던 산골이 문득 그리워
아프리카서 온 반마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모밀꽃이 하아얗게 피는 곳
나뭇짐에 함박꽃을 꺾어 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이 원이더니
차를 타 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
 

 
*     *    *    *     *     *     *     *     *     *     *     *     *
 
어떤 날 소도시 변방의 손바닥만 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노라면
동네 사랑방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큰 목소리로 떠드는 남자들의 한담 속의 "~슈"와 "~유"를 듣다 보면
어쩔 땐 노천명의 `고향'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 떠오르곤 한다.
 
<.......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지나간 가을의 어떤 날엔 운동 끝내고 오다가 송악저수지를 보러 갔었다.
가을이 어느 만큼 깊었나 확인하러.
 

지난해 어떤 날에 가을 보러 왔다가 엎어져 내 얼굴 쓸리게 만들었던 풍경.
 

또다시 엎어지진 말아야겠단 굳은 결심으로 멀쩡한 얼굴로 담은 호수 건너 풍경.
 

호수 수면 위를 지나가는 바람이 없어 호수가 물결 없이 잠잠하던 어떤 날,
호수에 비친 화려한 불빛들에 매료되었다.
늘어나는 건물 수에 비례해 호수 둘레 야경이 점점 더 화려하고 멋져지고 있다.
호수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건물까지 호수는 곧잘 받아내어 보여주곤 하더라.
호수의 마음은 호수만큼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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