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

흐뭇함과 즐거움이 차오르던 날들

by 눈부신햇살* 2023. 11. 27.

 

또다시 오랜만에 친구들과 뭉쳐서 인사동에 갔다.
평일의 인사동도 붐볐다.
주말이면 차가 통제되어 걷기에 수월했지만 평일이라 이따금 차도 지나다녔다.
 
11월 하순, 인사동의 회화나무들은 아직도 잎을 달고 있었다.
 
 

이제는 경인미술관 앞의 개성만두집 `궁'을 잘 찾을 수 있다.
수도약국 옆길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나타난다.
 
주말에 오면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어서 평일이라 줄 서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찾아왔음에도
우리의 생각을 비웃듯이 열두 시 막 지난 시간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11시 반에 오픈하는 것 같은데 벌써 긴 줄이라니 일부는 오픈런을 하였을까?
 
 

개성만두집 `궁'은 이제 보니 미슐랭도 인정한 맛집이다.
대를 이어서 운영하는 가게인가 보다.
담백한 것 좋아하는 나지만 그렇게까지 맛있다 못 느끼는데
조리사 자격증이 11개이고 현직 영양사인 친구가 무척 좋아하는 집이다.
 
친구가 특히 좋아하는 조랭이떡만둣국(1인분 15,000원)과 파전(22,000원)을 시켰다.
보기엔 커 보이지 않지만 움푹한 그릇인지라 생각보다 양이 많은 만둣국은 조금 남기게 되었다.
파전을 추가로 시키지 않았다면 깨끗하게 비워냈을 것이다.
 
 

한 친구는 집안에 일이 있다고 밥만 먹고 가고, 나머지 셋이서 경인미술관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감나무와 목련, 이름 헷갈리는 나무들까지 늘어서 있는 참 운치 있는 곳.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바람도 잠잠하여
진하게 끓인 대추차(1잔 8,000원)는 그런 운치를 더 돋우었다.
 
 

이렇게 각 장마다 귀여운 빨강머리 앤이 질문을 던지는 귀여운 5년짜리 일기장을 선물 받았다. 앗싸~!
 

한참을 수다 떨다가 모임에 오기 전 친구가 다녀왔다는 교보문고에 가보기로 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인왕산이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우물도 신기하다며 들여다본다(핑계 같지만 급하게 찍느라고 사진이 더 형편없다.)
 
 
조선시대의 종로를 만나다
 
우리가 서있는 종로, 이곳은 조선 건국 이래 도성의 중심지로 현재까지 발전해 왔다. 조선시대 종로에는 중앙관청과 관련된 관리들이나 시전행랑의 상인 등 중인의 거주지가 있었다. 당시, 시전(市廛)은 국가가 설치한 상설시장으로 주민들의 일상생활용품과 정부에서 쓰는 물건을 공급하였다. 조선시대 상업의 중심지인 종로는, 서울 600년의 모습이 지하(현 지표아래) 4~6m 깊이에 문화층별로 켜켜이 쌓인 채 보존되어 있는 `조선의 폼페이'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149번지 일대의 `서울 종로 청진8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을 위한 2011년의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시전행랑을 비롯하여 조선 전 시기에 걸친 건물지, 도로 등 유구(遺構, 옛 건축물의 흔적)가 확인되었고, 그중 피맛길에 자리했던 우물을 복원하였다. 우리가 발 디디고 서있는 서울, 그 땅 아래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조선시대 600년 역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무슨 무슨 건축상을 수상한 멋있는 건물도 있고,
그 밖의 개성 있는 멋진 빌딩들과 커다란 나무들이 군데군데 서있는 서울의 거리는 아름다웠다.
그날따라 새삼스럽게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모조리 다 아름다워 보이는 날이었다.
우리를 이끄는 친구에게 
"너는 서울아이구나! 왜 이렇게 지리를 잘 아니? 나는 시골쥐, 서울 구경에 눈 돌아간다!"
한바탕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고......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염상섭 동상의 무릎과 손이 반질거린다.
우리도 반갑게 염상섭 동상의 손과 악수하고 무릎을 쓰다듬어 본다.
 

 
 

 
교보문고에 들른 김에 나는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과 `불편한 편의점'을 샀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내 염주선물을 받은 친구가 선물해 줬다.
 
먼저 `불편한 편의점'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흥미롭고 술술 잘 읽히는지 
친정에서 엄마와의 쉬지 않는 수다 속에서도 꿋꿋이 이틀 만에 한 권을 다 읽었다.
지금은 2권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데 1권이 조금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엄마와 시장에 걸어가 시장 한켠에 있는 흑염소 집에서 수육(1인분 35,000원)을 먹었는데
그곳의 사장인 듯한 분이 우리를 엄청 부러워하며 찰밥을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의 벨트도 사드리고 만 원에 다섯 개 하는 대봉도 사고, 빵도 사 왔다.
오후엔 오후대로 근처 대형마트에 식탁의자 소음방지용 패드를 사러 갔더니 가뿐히 1만 보가 찍혔다.
너무 여위어서 골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엄마지만 잘 걸으시는 것이 무척 흐뭇했다.
 
 

또 다른 날엔 바로 밑 동생과 셋이서 친정 동네 산에 올랐다.
동생이 코다리조림을 점심으로 사줬는데 맛집인지 웨이팅을 했고, 역시나 여자들로 넘쳐났다.
여자들은 코다리를 참 좋아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울엄마 빼고...... 시큰둥한 울엄마.
 

 

 

 
사람들의 먹이에 길들여진 청설모는 애완동물처럼 사람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지만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곧바로 도망가는지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나흘째 저녁엔 셋째 동생네 부부가 와서 맛난 저녁을 사줬다.
나는 인사동에서 내가 입으니 엄청 귀엽게 잘 어울린다며 나더러 입으라던
엄마의 실내용 꽃무늬 누빔조끼를 하나 사 왔다가 엄마가 거부하는 바람에 동생에게 줬다.
 
닷새째 되던 날, 바리바리 챙겨준 짐을 싣고 엄마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서울로 갈 때는 차가 막히지 않아 1시간 40분 만에 갔던 걸
내려올 때는 어찌나 정체되든지 3시간 10분 걸려 내려왔다.
내려와 생각하니 지난 닷새 동안이 참 즐겁고 흐뭇한 날들이었다는 생각에
연신 참 좋았다고 남편에게 얘기하게 되며 벌써 그날들이 그리운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지 뭔가.
 

'하루 또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에서의 아홉 날  (0) 2024.01.02
보통의 날들  (36) 2023.12.12
첫눈 오던 날  (32) 2023.11.20
잠시 길을 잃다  (30) 2023.11.12
가버린 시월 하순 어느 날엔  (0) 2023.11.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