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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잠시 길을 잃다

by 눈부신햇살* 2023. 11. 12.

짧아서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가을이 눈 깜짝하면 지나가버리고 말 것 같은

조바심이 들던 날, 헬스장을 가지 않고 산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그 전날 저녁에 내일은 운동 가지 말고 산에나 가야겠다고 하니

당신처럼 나이보다 젊고 이쁜 사람은 인적 드문 산길은 위험하니 그냥 운동이나 가란다.

평소에 퉁명스러운 편이고, 공감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내게 점수 따고 사랑받는 방법인 립서비스를 날리는 것이었다.

아닌 줄 백 번 천 번 알아도 저절로 미소 짓다 못해 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말.

서로가 다소 낯간지러워져 마주 보며 웃게 되는 말......

 

 

신정호 주변 주차장 중에서 산과 가장 가까운 잔디공원 야외음악당 한켠에 주차를 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잔디공원엔 주황색이 들어간 복장의 어림잡아 한 70여 분 정도의 산불감시원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초입의 야자매트가 깔린 길을 지나니,

 

솔잎이 융단처럼 깔려 있는 길이 나오고,

 

이어 갈잎이 폭신하게 깔려 밟는 기분이 좋은 가을가을한 길이 나온다.

아까 산불감시원들을 보아서인지 혹시 이 많은 마른 잎들에 불이라도 붙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 길 어디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산불감시원이 보이기도 했다.

 

갈림길에서 왼쪽 남산으로 오를까, 오른쪽 안산으로 오를까, 망설이다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층계를 오르다 한번 뒤돌아보고,

 

 

 

갈퀴나무 땔감이 수북이 쌓여 있는 길.

어릴 적엔 갈퀴로 저 솔잎들을 긁어 모아다가 땔감으로 썼기 때문에

저렇게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긴 힘들었는데,라고 회상하는 나는 옛날 사람!

하지만 시골 생활은 어린 날 고작 3년 했다는 함정.

 

 

 

태극기 꽂힌 봉수대에서 봉수대를 뱅뱅 돌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아저씨를 발견하고.,

그 근처 이정표를 보자니 지난번에 천년바위는 보았었지만 갓바위는 보지 못했다는 데에 생각이 머물렀다.

그래. 오늘은 갓바위를 한번 보아보자.

 

산길을 내려오자니 이런 넓은 길이 나오길래

`아, 갓바위는 산이 아닌 동네 한켠에 서있나 보다' 생각하며 계속 내려오게 되었다.

한편으론 일산 집 뒷산의 풍경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과수원이 나타나고,

 

이 풍경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엔 내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감나무 주황색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며 감탄하고.

 

이런 풍경이 나오다니 너무도 뜻밖의 곳으로 내려온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엉뚱한 길로 내려왔으니 생각보다 멀리 크게 한 바퀴 돌게 되었다는 낭패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동네 폐가 한쪽엔 노박덩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고,

 

차로 오갈 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저 오래된 집은 그새 음식점이 되었네.

 

 

 

혹시 지름길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올랐던 길은 막힌 길이라서 또 투덜거리며 다시 되돌아서야만 했다.

그래도 커다란 나무는 퍽 멋지다며 사진에 담고,

 

 

아까 전에 내가 올랐던 산의 반대편으로 도착해 도심을 한 번 내려다보고,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은행알 구린내가 확 끼친다.

 

 

다시 잔디공원으로 내려와

 

 

이순신장군을 다시 한번 뵈옵고,

 

주차장에 도착해 걸음수를 확인하니 고작 만 보 조금 넘었다.

나, 무척 많이 걸은 줄 알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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