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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서울에서의 아홉 날

by 눈부신햇살* 2024. 1. 2.

 

올해는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든 애동지라 팥시루떡을 해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며칠 일찍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팥죽을 끓였다.
하지만 아무리 팥죽을 좋아하는 나여도 팥죽으로 대여섯 끼를 먹으면 이제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새알도 너무 많다. 나는 팥국물이 좋은데
새알 가득히 떠줘서 먹느라 고생했다.ㅠㅠ
해줘도 말 많고 탈 많은 딸 같으니라고...... 
 
그래도 함께 새알 만들어 팥죽 끓이는 시간이 재미있고 좋았다.

 

흰 눈이 살짝 내렸던 날에는 행여 엄마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혼자서 산에 올랐다.
나이 드시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상사라고 하니까.
 
친정에 머무는 아홉 날을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산에 올랐다.
도심에,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야산이 있는 것은, 더군다나 자연훼손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수월하게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데크길을 만들어 놓아
축복 같은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오전의 맑고 따사로운 겨울 햇살 아래 걸어 오르다 보면
노부부가 함께 오르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이 산의 청설모들은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서인지
사람을 보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가까이 다가오곤 하였다.
 

 

 

 

 
 무엇을 기원하는 것인지 탑돌이처럼 봉수대를 빙빙 돌고 있는 분들을 더러 보기도 하였다.

 

 

 멀리 도봉산 봉우리가 보이고,
 

 

뿌연 풍경 속에서도 저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고 신나 하고,

 

까마귀는 예서제서 까악까악거리고,

 

 

 

저 멀리 구리타워가 보이길래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신기해하였다.

 

어떤 날은 산에 오르다 보니 한낮에 뜬 반달도 보이고,

 

남산타워도 성냥개비처럼 보였다.

 

 

 한동안 공사 중이던 아파트들은 그새 건축 완료.
 

 무지하게 춥던 어느 날엔 엄마와 함께 신발 사러 나섰다가 내 생각과 다르게
너무나 추워하는 엄마를 보자니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후회했지만
동생들과 엄마가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그 강추위에 만보를 걸은 날이었다.
 
친정 동네를 걷다 보면 이렇게 옹기에 관한 조형물들을 이따금 발견하게 되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평일 한낮에 세 자매가 엄마 모시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고 오는 것은
소소한 듯 하지만 커다란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아흐레는 참 긴 듯한 날짜였지만 지나고 보니 잠깐처럼 느껴져
집으로 돌아온 내게 엄마는 너는 니 집에 가니까 좋으냐고 물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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