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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270

카레라이스 어제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남편은 군대에서 질리게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해 남편이 출장 간 날 저녁의 주메뉴이다. 카레라이스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 출장 갔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어제 오후에 카레라이스 재료를 사 오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녀석이 그 끝에 물어봤다. "아빠 출장 갔어요?" 이어 재료 속에 섞여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보고서는 "어, 내일은 골뱅이 요리할 거예요?" "응." "앗싸!"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환하게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해 시험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어릴 적에는 그저 노느라고 바빴는데 초등학생이 시험공부를 한다며 여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웃기는 녀석, 제 용돈.. 2007. 6. 13.
초여름의 나들이 유월이 오면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그땐 종일토록 향긋한 건초 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으리. 그리곤 미풍 나부끼는 하늘에 흰구름이 세우는 태양 향해 높이 솟은 궁전을 바라보리. 그가 노래 부르면 난 그의 노래 지어주고 감미로운 시 읽으리. 종일토록...... 아무도 모르게 우리 초가에 누워 있노라면,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저런 시나 읊조리며 망상에 빠지면 딱일 것 같은 6월, 초여름의 날씨에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동반이었는데, 어느새 머리가 굵어졌다고 요 핑계 조 핑계 대면서 따라나서지 않는 녀석들에게 부모 없는 사이에 알아서 끼니 해결하라며 천 원짜리 두 장 찔러주고 집을 나섰다. 더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안 따라다닐 것.. 2007. 6. 2.
엄마 노릇하기 어제도 오전에 학교에 가고, 오늘도 오전에 학교에 갔다. 녀석이 초등학생일 때도 안 해 본 노릇이다. 어제는 공개 수업 시간에 쓸려고 촬영해서 학교 홈피에 올렸던 것이 학교 컴퓨터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최대한 빨리 학교로 디카 좀 갖다 달라고 해서 "별걸 다 시키네." 투덜거리며 그제야 부리나케 머리 감고 트윈 케이크 바르고 섀도 바르고 립스틱 바르고 머리는 항상 자연 건조시키고 손가락으로 몇 번 빗는 걸 원체 늦게 마르는 머리인지라 드라이기 김 몇 번 쐬고 나갔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도로가에서 발이 삐끗하며 넘어지려다가 중심을 잡고 서서 막 다가오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를 타며 행선지를 말하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앉아 있으려니 운전사가 말을 건넨다. "아까 넘어질 뻔 했죠?" "예? 아,.. 2007. 5. 23.
뜻밖이네! 작년, 5학년 내내 반에서 2등만 하던 녀석, 설마, 하는 마음에 "올해 너 1등 하면 내가 중학생 되어야 사주는 휴대전화를 사준다." 물론, 이 말은 그럴 리가 없다는 가정 하에 한 말이었다. 그 혹하는 말을 들은 녀석,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무서워?" "응." 시험 보던 날, 풀 죽은 시무룩한 모습으로 뭔 시험이 그리 어렵냐고 투덜거렸다. "야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이틀만에 안도의 한숨은 걱정의 한숨으로 뒤바뀌었다. 세상에, 세상에 1등이란다. 초등학교 다닌 지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외출했다가 들어서는 내게 녀석이 그런다. "엄마, 안 되셨어요. 저, 1등이에요." "정말? 그럴 리가?.. 2007. 4. 25.
이렇게 황당할 수가! 어제가 큰형님 생일이었다. 나하고는 네 살 차이가 난다.안 챙기고 그냥 지나가면 명절에 시골집에서 만나면 꼭 한 마디씩 하더라."니만 전화 안했다. 왜 그냐?"그렇다고 형님이 내 생일을 챙겨준 적은 한 번도 없는데...그뿐인가, 한 살 많은 바로 손아래 시누이도 나를 보면 한 마디씩 한다."전화 좀 해라. 내 생일에 전화 안 한 사람은 언니뿐이다."지지 않고 나도 한마디 한다."아이고, 그러는 사람은? 그런 사람도 내 생일에 전화 안 했는데?""아이고, 먼저 챙겨야지. 내 생일이 먼저 있잖아."어쩌고 저쩌고 옥신각신......아무튼 말을 별로 살갑게 하지 않는 큰 형님의 생일이라 조금 거북해서 문자를 날렸다.한두 시간쯤 지났나. 문자의 답이 왔다.순간, 아니 이 형님이 셋째 동서의 전화번호는 입력도 안 .. 2007. 4. 5.
아들의 수학여행 어제 큰녀석이 2박 3일의 강원도 쪽으로의 수학여행에서 돌아왔다. 가던 날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그다음 날도 오전에는 반짝 해가 비추다가 점점 흐려져서 쌀쌀한 날씨가 되더니 저녁 무렵에는 다시 비가 내렸다. 돌아오는 어제만 모처럼 햇볕이 따뜻해서 봄날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엄마가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되니까 틈틈이 연락을 취하라고 일렀다. 녀석 첫날 저녁에 요렇게 짤막하게 문자가 왔다. 나는 비가 와서 염려도 되었고 구경은 잘했는지 걱정이 되어서 좀 길게 답장을 보냈다. 띄어쓰기 철자법 완전 무시한 답장이 왔다. 생각해보니 우비랑 우산이랑 다 알뜰하게 챙겨가지고 갔다. 칭찬을 했다. 보내기가 바쁘게 문자의 답이 왔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 수학여행 간 지 이틀째인 그제는 친구들과 만나서 점.. 2007. 3. 31.
가끔은 아들이 별나 보여! 가끔 아들을 보고 놀랄 때가 있어. 바로 어제 같은 경우인데, 녀석이 반장이 되어 왔더라고. 중학교는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한 학기만 반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 년 내내 반장을 한대. 우리 때는 중학교 때에도 한 학기만 반장을 했던 것 같은데...... 내신에도 반영돼 1점이 가산된다고 하더군. 기분이 한껏 상승되어 있는 아들녀석에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는 학교 활동 안한다. 반장이면 네가 반장이지 내가 반장이냐......" 조금 있으면 수학여행을 간다더군. 아직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녀석은 한창 꿈에 부풀어 있지. 아이들 앞에 나서서 무얼 할까 궁리하느라고. 맨 처음에는 저는 기타를 치고 한 녀석을 물색해서 드럼을 치라고 하여 둘이 나가서 노래를(내가 보기엔 음치를 조금 벗어난 수준인데... 2007. 3. 13.
천사는 여기 머문다? 어제, 예비소집일이라 학교에 갔다가 친구들과 농구하다 친구의 발을 밟으면서 발을 접질렸다. 절뚝거리며 집에 들어서서 갖은 엄살을 늘어놓다가 트라스트 하나 붙이고 피곤하다며 잠이 들었다. 저 조그만 분홍 담요는 녀석이 애인처럼 아끼는 물건이다. 작은녀석은 커다란 쿠션 하나를 잘 때면 늘 끼고 자고, 큰녀석은 잠잘 때 외에도 허구한 날 저 담요를 끼고 있다. 상의를 걸치지 않고 몸에 둘렀다가 소파에서 뒹굴 때면 저렇게 덮고 있다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엎드려서 책을 보다가 거의 담요와 한 몸이다시피 한다. 지난번에는 무릎이 자꾸 시큰거리다고 해서 관절에 이상이 왔나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다. 의사는 엑스레이 필름(필름이라고 하는지 사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꼭 필름처럼 보인다.)을 보면서 다른 .. 2007. 2. 27.
설 즈음 설 쇠러 시골 가는 길가의 풍경이다. 파란 하늘 밑에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은 잠잠하다. 차창을 통해 뺨에 어깨에 와닿는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햇빛이 따가워서 잠을 자기 힘들다고 작은녀석이 투덜거렸다. 가까이 혹은 멀리 아직 새 잎이 돋아나지 않은 동화책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지들만 그려 놓은 빈 가지 뿐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중에는 파란색 지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예전 시골집도 다시 짓기 전에는 파란색 지붕을 하고 있었다. 생활하기 불편하다고, 특히 겨울에 너무 추운 집 구조라고 새로 집을 지은 후에 어른들, 그중에서도 며느리들이 많이 좋아하는 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집 특유의 운치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햇.. 2007.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