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268 계양산에 오르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 속에 만약을 대비해서 우산 하나 챙겨 들고 가까운 곳의 계양산에 올랐다.고려산에 갈까 말까 하다가 혹시라도 비가 많이 내린다면 거리가 먼 고려산이 훨씬 많은 불편함을 줄 것 같아서거리가 만만한 계양산을 택했다. 벌써 몇 번이나 올랐으니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가지 않는 것보다는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지하철을 타고 갈까 어쩔까 망설이다 결국엔 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산 밑 동네에 차를 주차시키고 산을향해 가는 길, 벌써 올라갔다가 하산해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산이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갈 때마다사람들로 붐비는 산이다. 줄 서서 차례를 한참씩 기다려 올라가는 북한산과 관악산에 비하면 덜하긴 하지만. 많이 걸을 요량으로 곧바로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놔두고 .. 2007. 10. 4. 헛바람 빼기 아들의 마음에 든 바람에 풀무질이라도 하듯이 얼마 전 모 기획사 매니저가 아들에게 명함을 한 장 주고 갔다. 하굣길에 우르르 나오는 아이들 중에서 녀석에게만 한 장 건네주고 갔으니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부풀어 올랐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들뜬 목소리로 집에 와서 내게 명함을 건네주며 엄마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줬으니 조만간 전화가 올 거라고 했다. 그러곤 녀석은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앉아 기획사를 검색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염장 지르듯이 한마디 툭 던졌다. "니가 학교 밴드 한답시고 기타를 둘러메고 다니니까 니가 헛바람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네게만 준 거 아냐?" 녀석이 버럭 화를 내며 대꾸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순한 말씨로 가만히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금방 달려들 거라고 생각하.. 2007. 9. 18. 아무리 제멋이라지만... 화장하는 여인 - 서정 육심원 오늘도 감자를 쪘다. 시골의 시어머님은 옥수수나 감자를 찔 때 '뉴 슈가'라는 이름의 당원과 소금을 넣고 찌던데 나는 그냥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찐다. 작은녀석은 이따금 임신 오륙개월에 접어든 임산부처럼 먹을 것 타령을 한다. 오징어 썰어 넣은 김치부침개가 .. 2007. 9. 5. 소소한 생각들... 한 달 전 일산에 갔을 때 호수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공원 주변으로는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곳은 전망이 좋아서 집값도 꽤 비싸겠다. 배롱나무들이 줄지어 선 곳을 지나는데 우습게도 배롱나무인 줄 몰라봤다. 아직 꽃을 달고 있지 않아서이고, 꽃을 달고 있지 않은 배롱나무를 눈여겨본 적이 없어서 매끄러운 수피가 낯익다는 생각을 무심히 하다가 가만 이 수피는 배롱나무, 간지럼나무,목백일홍의 수피가 아닌가, 하며 들여다보는데 마침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어서 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모습을 다 봐야 그 나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이 호수에서 진흙에 빠진 발을 씻었다. 어떻게 씻어?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했더니 남편이 함께 가준다고 해서 호수에 발.. 2007. 8. 27. 폭염 연일 덥다. 슈퍼에 가려고 밖을 내다보니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무섭기조차 하다. 컴퓨터 앞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는 작은 아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야, 햇빛 봐라. 무섭다. 그야말로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다." 가? 말아? 망설이다 양산을 펼쳐 들고 시장바구니를 챙기고 지갑을 찾아들고 집을 나섰다. 학교 담장 밑으로는 키 큰 은행나무와 벌레가 알뜰하게 잎을 먹어 치운 벚나무와 가죽나무 수 그루이었는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면서도 가죽나무라고 단정 짓는 나무와 메타세쿼이아 몇 그루 덕분에 그늘이 진다. 양산을 접는다. 그늘에 서면 그래도 바람이 조금 시원한 것도 같다. 옆 학교의 정문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터널을 지나고 종합병원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안경원을 지나 분식집을 지나 정육점을 지나려는.. 2007. 8. 20.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밀밭이란다. 보리밭에 대한 기억은 많지만 밀밭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언젠가 이렇게 말했더니 보리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묘한 뉘앙스를 띤 질문을 하던데 그 사람이 넘겨짚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에 관한 기억이니 숨바꼭질할 때 밭고랑에 누워 숨었을 뿐이다. 개미란 놈이 목덜미를 따끔하게 물어서 아얏!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어서서 들키기도 했지만. 보리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보리밭에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갈대밭이라면 또 몰라도,였다. 강화도 초지진에는 갈대밭이 없다고 어느 블로거가 답해 주시던데, 내 기억 속에는 왜 강화도 초지진의 갈대밭으로 입력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남편과 강화도를 드라이브하다가 초지진 근처를 지나가면서 .. 2007. 6. 24. 내게 반하셨나?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는 내게 반하신 게 분명하다. 일전에도 내게 그리 말씀하셨다. 오늘도 시내에 나가려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내게 맞은편에서 오시던 할머니께서 엇갈려 갈 때쯤 발걸음을 멈추고 굽은 허리를 살짝 펴시더니 감탄한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참 이삐다. 그렇게 입으니까 참 이뻐! 아이고, 참, 너무 이삐다!" 순간, 내 입이 귀에 가 걸리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유쾌한 기분이 순식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호호호........." 할머니도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마주 웃으셨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어서. 웃음으로만 답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송구스러워서 한마디 덧붙였다. 고개를 꾸벅하면서.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그냥 가시지 않고 기쁘게 답.. 2007. 6. 18. 카레라이스 어제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남편은 군대에서 질리게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해 남편이 출장 간 날 저녁의 주메뉴이다. 카레라이스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 출장 갔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어제 오후에 카레라이스 재료를 사 오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녀석이 그 끝에 물어봤다. "아빠 출장 갔어요?" 이어 재료 속에 섞여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보고서는 "어, 내일은 골뱅이 요리할 거예요?" "응." "앗싸!"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환하게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해 시험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어릴 적에는 그저 노느라고 바빴는데 초등학생이 시험공부를 한다며 여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웃기는 녀석, 제 용돈.. 2007. 6. 13. 초여름의 나들이 유월이 오면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그땐 종일토록 향긋한 건초 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으리. 그리곤 미풍 나부끼는 하늘에 흰구름이 세우는 태양 향해 높이 솟은 궁전을 바라보리. 그가 노래 부르면 난 그의 노래 지어주고 감미로운 시 읽으리. 종일토록...... 아무도 모르게 우리 초가에 누워 있노라면,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저런 시나 읊조리며 망상에 빠지면 딱일 것 같은 6월, 초여름의 날씨에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동반이었는데, 어느새 머리가 굵어졌다고 요 핑계 조 핑계 대면서 따라나서지 않는 녀석들에게 부모 없는 사이에 알아서 끼니 해결하라며 천 원짜리 두 장 찔러주고 집을 나섰다. 더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안 따라다닐 것.. 2007. 6. 2.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