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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아무리 제멋이라지만...

by 눈부신햇살* 2007. 9. 5.

 

 화장하는 여인 - 서정 육심원

 

 

 

오늘도 감자를 쪘다. 시골의 시어머님은 옥수수나 감자를 찔 때 '뉴 슈가'라는 이름의 당원과 소금을 넣고

찌던데 나는 그냥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찐다.

작은녀석은 이따금 임신 오륙개월에 접어든 임산부처럼 먹을 것 타령을 한다.

오징어 썰어 넣은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다느니, 닭도리탕이 먹고 싶다느니, 쫄면이 먹고 싶다느니,

떡볶이가 먹고 싶다느니, 카레라이스가 먹고 싶다느니, 쇠고기 장조림이 먹고 싶다느니......

그제인가, 녀석이 그런다. 작년에는 감자를 한 박스 사다가 쪄주더니 올해는 감자를 한 번도 쪄주지 않는다고.

내가 그랬나?

어제 당장 감자를 사다가 쪘다. 제법 알이 실한 걸로 아홉 개를 쪘는데 앉은 자리에서 네 개를 먹는다.

한번 잘 먹으면 물리도록 해주는 것이 나의 특성. 오늘 또 감자를 사러 시장에 갔다.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시장에 가려면 상가가 밀집해 있는 번화가를 지나야 한다.

오늘은 아홉 개짜리 두 봉지를 사들고 다시 번화가를 지나오는데 시력이 고작 0.6, 0.8 밖에 안 되는

내 눈에도 한눈에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의 옷차림이 눈에 띄게 시선을 확 잡아끈다.

눈길을 떼지 못하고 계속 바라본다. 10대 후반이나 후하게 봐줘도 20대 후반까지나 예뻐 보일 옷차림이다.

몸에 딱 달라 붙고 길이도 짧은 흰색 쫄티에 밑단이 너덜너덜한 게 멋인 물바랜 짧은 청스커트를 입었다.

다행히 몸매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게 날씬하다. 본인도 날씬한 몸매라고 생각하고 그리 과감히 입었나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세월이 주는 훈장인 아랫배는 봉곳이 솟았지만.

고개를 꺾어가면서까지 뒤돌아보니 우와, 신발까지 굽 없는 조리 슬리퍼이다. 질질 끌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딸의 옷을 입고 나온 것 같다. 얼핏 본 얼굴은 자글자글 주름으로 뒤덮혀 있던데, 보는 사람의 눈도 좀 염두에 두실 일이지.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남에 대한 예의로 입는 것 아닌가.

저렇게 자기 만족만 생각한다면 좀 곤란한 일 아닌가. 

간혹,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긴 생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아주머니와

마주쳤을 때처럼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이상야릇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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