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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계양산에 오르다

by 눈부신햇살* 2007. 10. 4.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 속에 만약을 대비해서 우산 하나 챙겨 들고 가까운 곳의 계양산에 올랐다.

고려산에 갈까 말까 하다가 혹시라도 비가 많이 내린다면 거리가 먼 고려산이 훨씬 많은 불편함을 줄 것 같아서

거리가 만만한 계양산을 택했다. 벌써 몇 번이나 올랐으니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가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지하철을 타고 갈까 어쩔까 망설이다 결국엔 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산 밑 동네에 차를 주차시키고 산을

향해 가는 길, 벌써 올라갔다가 하산해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산이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갈 때마다

사람들로 붐비는 산이다. 줄 서서 차례를 한참씩 기다려 올라가는 북한산과 관악산에 비하면 덜하긴 하지만.

 

많이 걸을 요량으로 곧바로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놔두고 빙 에돌아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요즘은 부부끼리

산에 오는 경우가 참 많다. 아이들이 어린 집은 가족끼리 온 집도 많다. 우리 집처럼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 시기에 주장이 강해져서인지, 부모로부터 독립성이 키워지는 나이여서인지 언젠가부터 산에 간다고 하면

따라나서지 않는 것이 당연해졌다.

 

등산로에 밤나무가 많다 보니 알맹이가 빠진 밤송이가 수두룩하게 뒹굴고 있다. 지난번 추석에 방송을 들으니

산에서 밤 따가지 말라고 했다. 다 주인 있는 산인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밤을 다 따가버린다고.

지난주 속회 예배를 드리고 나서 권사님 한 분이 다른 나이 지긋하신 권사님께 다음날인 토요일에 밤 따러 가자고 했다.

나이 지긋하신 권사님이 그것도 남의 것을 훔쳐오는 것 같아서 싫다고 말씀하시길래 방송에서 들은 얘기를 했다. 그럼,

돈 내고라도 따오는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이런 계양산 같은 곳은 사유지는 아닐 테니 이런 산에서는 밤 따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발밑에 숱하게 나뒹구는 밤 껍데기를 보니 든다.

 

산은 낮지만 정상으로 올라가는 부분의 가파른 길에서 한창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휴대전화 벨이 <사랑의 인사> 멜로디

음을 냈다. 이 음은 친구들로부터 걸려오는 신호음인데...... 쉬는 날에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누구람? 하면서

받으니 내게 장난 삼아 고모라 고도 이따금 부르는 먼 친척뻘의 동창 녀석이었다.

새로 연락이 된 동창 하나가 여수에서 올라와 몇이 모이기로 했는데 나더러 오라는 거였다. 누구누구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꽤 많은 이름을 댔다.

"근데 어떡하냐? 네가 듣다시피 내가 지금 숨을 헐떡이고 있잖아. 나, 등산 왔는데. 그것도 이제 막 올라가는 중인데..."

"뭐할라고 그렇게 힘들게 산에 올라가냐? 대충 살지."

"야, 이래야 그나마 살 좀 빠지지. 날씬해지기 힘들다."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끊는다. 그새 뒤로 처진 나는 얼른 남편에게로 다가간다.

남편의 평에 의하면 나는 전형적인 중년 여자의 몸매라는데. 자신의 동창들 중에는 아직도 아가씨 같이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둘 있다고 해서 살짝 삐치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큰애 낳고는 감쪽같이 원상복구 되던 몸이

작은애 낳고부터 지금까지 원상복구가 안 된다. 어떡하면 그리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을까? 타고 난 골격과 체질상의 문제일까, 노력하고 안하고의 차이일까. 선천적으로 가는 골격의 남편이 7년 동안(정확하게 헤아려 보니 7년 씩이나 몸을 가꿨더랬다.)이나

헬스로 몸과 건강을 다졌음에도 요즘엔 아랫배가 봉곳해지던 걸. 그렇게 말했더니 자기가 좀 더 운동에 박차를 가하면 아직도

이십 대의 몸매로 만들 수 있다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이지. 그렇다면 이 전형적인 중년 여자의 몸매는 노력 부족이

정확한 원인인가 보다.

 

뒷산은 우습게 오르내렸지만 계양산은 뒷산인 만월산의 세 배쯤의 운동량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몸이 좀 노곤해지면서 다리도 살짝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구기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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