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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112

이별 그림 - 이영철 남편의 근무지가 지방으로 바뀌었다. 결혼생활 이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떨어져 살게 되었다. 처음엔 주 5일 근무제라 금요일 저녁이면 돌아와서 월요일 아침 일찍 갈 건데, 그러면 떨어져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지 않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편은 아니었던가보다. 요며칠 계속 얼굴이 어두웠다.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하려니 걱정이 돼서 그런가 보다 했다. 어제 아침 짐보따리 싣고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뒤돌아서서 몇 발자국 걷는데 갑자기 울음이 확 솟구친다. 기어이 눈물 몇 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그러고도 하루 종일 불쑥불쑥 눈물이 올라와서 눈가가 빨개져 참느라고 혼났다. 며칠만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아지겠지...... 2013. 1. 31.
초승달 유난히 남편이 어여뻐 보이던 날. 남편과 둘이서 저녁밥을 먹는 내내 남편에게 살포시 미소를 짓고 무슨 말끝마다 유별난 호응을 한다. 응, 그랬어? 음, 그랬구나! 그래서? 과유불급이었던가. 남편의 눈이 동그래지고 자꾸만 나를 더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왜 그러는지 엔도르핀이 지나치게 솟는지 어쩌는지 기분은 계속 하늘을 날아다니고 남편은 연애할 때만큼이나 멋지고 날씬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식사가 끝나고 소파에 둘이 딱 붙어 앉아 티브이 드라마를 본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치매가 온 시어머니가 가엾고 안타깝고, 자기 친딸에게 냉정한 엄마가 의아하고, 박은혜의 적당히 통통 날씬한 몸이 삐쩍 마른 다른 여자 연예인들보다 더 보기 좋다고 얘기하며 그 사이사이 신전 기둥만큼이나 굵은 내 한쪽 다리를 남편.. 2012. 10. 18.
고향 들녘 나는 자주 가지 못하는 고향을 어쩐 일인지 남편이 자주 가게 된다. 내 고향에 가니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요모조모 사진을 찍어와 보여준다. 몇 년 전 친정엄마 모시고 가족끼리 둘러보러 갔을 때 이라고 했더니 폐허가 된 집도 찍어 왔다. 저 뒤로 지붕만 빼꼼히 보인다. 저 집에서의 옛일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과꽃 모종을 받아와 장독대 옆에 심어 두고 보던 일, 추석 전 날, 할머니와 정지 뒷문 쪽에서 송편 빚다가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한 반 아이의 부친상인지 모친상인지 문상을 갔던 일, 똥통에 빠졌던 일, 몇 년 만에 엄마가 내려와 방 벽에 붙은 상장들 보고 두 다리 쭉 뻗고 앉아 대성통곡하던 일, 함께 왔던 동생의 트렌치코트가 너무 멋져 보여서 은근히 기죽었던 일, 친구들 앞에.. 2012. 9. 14.
나는 참 행복해요 "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되는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사는 것이다. 더 나은 것을 이루며 살겠다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더 나아지게 만 든다." 헉슬리(Julian Huxley), . 1923년 음악을 하는 큰녀석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한다. 밤과 새벽에는 음악(기타, 작곡, 작사 등등)을 하고, 낮 11시나 12시까지 잠을 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생활 사나이인 남편과 작은녀석에게 성실 하다는 평을 받은 엄마는 제때에 자고 제때 일어나는 생활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학교 교수님도 음악은 밤에 하라고 하신단다. 밤에 소음이 적을 때 해야 한다고. 아.. 2012. 8. 12.
기쁨을 주는 것들 1. 불꽃놀이 무슨 행사가 끝나는 마지막 순서로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한 10여 분 가량을 이렇게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그것도 내 집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폭죽이 터질 때마다 와우! 환호성을 지르면서. 만날 공부한다고(틈틈이 게임을 즐기는 걸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가 주지만. 그나마 그것이 숨통을 트이게 하는 놀이일 거라 생각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는 작은녀석도 불러내어 모두 불꽃놀이 구경을 했다. 얼마전에 있었던 마지막 행사다. 저런 불꽃놀이를 보면 대여섯 살 적 아버지가 홍역을 앓느라 열에 들뜬 나를 안고 마당 한 켠 높게 자리한 장독대에 올라가 구경하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사랑받았던 기억은 늘 가슴을 따사롭고 촉촉하게 만들곤 한다. 누굴 닮아 그런지 달과 별.. 2012. 6. 9.
좀머 씨 이야기 1997년 1월 8일에 어느 문학상 수상작가가 추천하는 글을 보고 사게 된 책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그 사이사이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삽화가 마음을 잡아끌었다. 책 두께도 얇거니와 잘 읽히는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그리 아름다운 내용만은 아니었다. 아니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눈이 올 때나 폭우가 쏟아질 때나 땡볕이 내리쬘 때나 한결같이 열심히 걸어 다니던 좀머 씨가 마지막엔 온몸에 돌을 달고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던 버지니아 울프처럼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2차 대전을 겪은 후유증으로 폐쇄공포증이 생겨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저리 열심히 온종일 걸어 다녀야 했던 좀머 씨에 대한 슬픔, 안타까움, 연민...... 그런 좀머 씨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 동.. 2012. 2. 7.
나의 옛날 이야기 옛날, 옛날에요. 제가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국민학교 6학년이 되던 초봄이었을 거예요. 화창한 날이었어요. 사물과 풍경들이 햇빛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햇빛 좋은 마루에 엎드려 라디오 켜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박자에 맞춰 쳐든 다리를 흔들며 책을 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노래에 취해, 책에 취해 있는데 문득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거예요. 흥을 깨기 싫어 참다참다 안 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서 라~~~ 노래를 부르며 냅다 뛰어서 칙간으로 들어섰지요. 그때의 시골 칙간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했는지 항아리 하나 묻어 두고 그 위에 널판지 두 개 나란히 걸쳐 놓아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요. 아무튼 그 중의 하나에 다리를 척하니 걸쳤지요. 그 순간 지나친 내 흥에 다리에 힘이 엉뚱하게 실려서.. 2012. 1. 12.
나의 기도 < 이쁜이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서정 육심원의 이 그림처럼 탱탱하고 빵빵한 볼을 가지기는 이제 틀렸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향해 바짝 올라붙은 엉덩이를 가지기도 틀렸다. 옷 입은 맵시를 보느라 공주거울로 전신거울에 비친 뒷태를 볼 때마다 정말로 깊은 아주 깊은 .. 2011. 11. 18.
얼씨구절씨구! 일전의 모임에서 한 친구가 그랬다. " 나는 공부만 하는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답답하고 숨막히더라. 나는 잘놀 줄 아는 애가 젤 이쁘고 좋더라. 공부만 하는 애들 융통성 없고 사회성 없어 보여......" 꼭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말해 나는 말문이 탁 막혔다. 왜냐하면 "우리 작은.. 2011.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