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풀꽃나라 카페 행복한 그대 님의 솜씨입니다>
옛날, 옛날에요.
제가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국민학교 6학년이 되던 초봄이었을 거예요.
화창한 날이었어요. 사물과 풍경들이 햇빛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햇빛 좋은 마루에 엎드려 라디오 켜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박자에 맞춰 쳐든 다리를 흔들며 책을 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노래에 취해, 책에 취해 있는데
문득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거예요.
흥을 깨기 싫어 참다참다 안 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서 라~~~ 노래를 부르며
냅다 뛰어서 칙간으로 들어섰지요.
그때의 시골 칙간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했는지 항아리 하나 묻어 두고
그 위에 널판지 두 개 나란히 걸쳐 놓아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요.
아무튼 그 중의 하나에 다리를 척하니 걸쳤지요.
그 순간 지나친 내 흥에 다리에 힘이 엉뚱하게 실려서리
널판지가 옆으로 쫘악 밀리면서 내 한 다리는
"어, 어!"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만 항아리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답니다.
에고고고...... 얼마나 얼마나 황당하고 난감하던지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빠진 다리를 건져내었을 때는
뭐 눈 뜨고 코 안 막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어떡하나, 어떡해,하고 있는데 마침 할머니가 들어오시다 내 꼴을 보고 입을 못 다무시더군요.
그리곤 이내 터지는 지청구 소리...... 그걸 어떻게 말로 다 옮겨요.
그때는 또 펌프가 고장나서 물을 길어다 먹고 있었는데,
그 다리를 원래대로 깨끗하게 해놓으려면 그 많은 물을 어떻게 감당해요.
그래서 큰동네와 우리 동네 중간에 있던 우물에 가서 씻기로 했지요.
하지만 그 다리를 끌고 동네 앞을 지나쳐 갈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제발, 제발 아무도 보지 말아라, 빌고 또 빌며 갔지요.
그러나 기도발이 약했던지 가는 도중에 큰동네에 사는 설레발 잘 치는 개구쟁이 동창녀석의
놀란 토끼눈과 딱 마주쳤지 뭡니까. 난 얼른 모르는 척 얼굴을 탁 돌리고 갔더랍니다.
우물가에서 또 다시 이어지는 할머니의 타박소리......
"니가 미쳐부렀냐? 이것이 뭐시다냐? 오메, 오메 월척없는 거......시상에 별 일을 다 본다잉......"
나는 할머니 말씀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아까 보았던 그 녀석의 놀란 눈만
눈앞에서 오락가락 했지요.
설마, 설마 아무일 없겠지, 빌고 또 빌었답니다.
왜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있지요. 정말 설마가 사람 잡더라고요.
다음 날, 교실 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섰더니
"쩌그 온다. 똥통에 빠진 가시나. 아, 글씨, 쩌 가시나가 어저께 똥통에 빠져부렀당께!"
세상에, 세상에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로 온 교실이 떠나가라 떠들어대지 않겠어요.
그걸 들은 아그들이 어디 가만 있겠어요. 신이 나서 입 맞춰 이렇게 말하더군요.
"똥통에 빠졌다네. 똥통에 빠졌다네.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냐구요. 그저 입을 앙다물고 눈만 하얗게 흘기고 있었더랍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미쳐부렀지요. 어쩌다 그런 일이......
우연히 어디 들춰보다 옛글을 보고 옮겨 적다.
옛날의 그 개구쟁이 머스마는 지금 뱃살이 두둑한 고속버스 지방영업소장이 되었고,
나는 늘 뱃살이 염려스러운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풋, 웃음이 나오는 이 일을 그 머스마는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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