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모임에서 한 친구가 그랬다.
" 나는 공부만 하는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답답하고 숨막히더라.
나는 잘놀 줄 아는 애가 젤 이쁘고 좋더라. 공부만 하는 애들 융통성 없고 사회성 없어 보여......"
꼭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말해 나는 말문이 탁 막혔다.
왜냐하면
"우리 작은녀석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데, 정말 공부만 하는데,
틈틈이 책을 읽고, 게임도 하긴 하지만 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그렇게 알아서 공부만 하는 아이를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다.
그런데 걱정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비해서 성적이 안 오른다.
울아들이 그렇게 공부하는 데도 성적이 안 오르면 그 결과물에 지레 아, 나는 안 되는구나,하고
좌절할까봐 자신감을 잃을까봐, 걱정이다."
대충 이런 뜻으로 내가 말하고 난 직후였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걱정돼서(아니 사실 내 아들이 이렇게 성실하다,라는 마음도 조금 들어갔을까) 하는 말에
친구가 냉큼 그런 식으로 말을 받으니 무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우리 큰애가 여자가 좀 따르는데 요즘 여자애들이 용감하더라.
전화번호를 막 받아가고 그래. 그러면 우리 아들은 웬만하면 다 사귀는 것 같아서 내가 그랬다.....
너는 여자애들이 사귀자고만 하면 다 사귀냐?"
라는 말에는
"야, 너 아들 관리 잘해야 한다. 그러다 한 여자만 진득하니 못 만나는 바람둥이 된다.
그거 습관돼."
오 마이 갓!
많지도 않은 아들 둘이서 어찌나 개성이 강한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행히 큰아들은 얼마 전 사귀었던
여자애를 끝으로 지금은 기타에 전념하고 있다. 사실, 나도 은근히 걱정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교육시켰으니까, 그런 일은 없겠지만 사람 일이란 게
자기 뜻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경우도 더러 있잖은가.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른 나이에 아이 아빠라도 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얼마 전 대놓고 그 얘기를 했더니 녀석이 그랬다.
"아들을 그렇게 모르세요?"
이번 달이 시험이 들어있는 기간이였는데 큰녀석은 예체능계라 여지껏 시험공부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도 고3 수험생이 있다고 집안에서 조용히 하고, 어디 가지 못하고, 하는 것 없다.
(요즘 한창 수시 보느라 바쁘긴 하지만 공부가 아니고 기타라서......)
그와 달리 작은녀석은 벌써 한달 전부터 책상머리에 딱 들러붙어 앉아 공부를 했다. 하긴 작은녀석은 시험기간이
아니라도 책상머리에 들러붙어 하염없이 수학문제를 풀고 있기도 하다.
보습학원은 아이가 싫어해서 고1이 된 지금까지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
저번 시험 보기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었다.
<**이가 야자를 안하고 집에 갔어요 집에서라도 열심히 하게 해주세요>
그날 아이에게 물어보니 좀 피곤해서 일찍 왔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답문을 보냈다.
<**이는 공부를 너무너무 열심히 해요 근데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나올까봐 걱정이에요
좌절할까봐서요>
결과는 반에서 4등에 전교 40등이어서 아이 모르게 우리는 한숨을 쉬었고 남편은 나에게 슬쩍 말했다.
"저 애가 공부한다고 방에 틀어박혀서 딴 짓 하는 거 아녀?"
하긴, 작은녀석은 게임도 친구들 중에서 잘하기로 소문났다. 친척들 중에서도 제일 잘할 거다.
아무튼 노력해도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지, 혼자 인터넷 강의 들으면서 공부하다보니
공부 방법이 잘못 됐던지 하나보다,라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그냥 차근차근 모자라는 부분을 다지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그래도 신기하다. 내 주변에서 너만큼 공부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너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넌 참 대단해."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올 때 나온 성적보다 더 못 나왔다고 걱정이 많으셨다.
어쩌면 공부를 등한시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가정통신문에 그 비슷하게 써왔다.
중학교 들어갈 땐 전교 4등으로 들어가서 교장선생님께서 호명해 앞에 세워 놓고
<우리 학교를 빛낼 인물>이라는 소개도 하셨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주시는 문화상품권을 몇 번 받아온 적이 있다. 그때 다니던 교회에 학부모활동을 열심히 하던 한반
아이 엄마가 있었는데 시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알고 나를 붙들고
어떡하면 아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느냐고 묻곤 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성적이 떨어져 고등학교 입학할 때는
전교 19등의 실력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그렇게 입학하자마자 등수가 나온다는 것도 작은녀석 때문에 알게 됐다.
나는 이날 평생을 모르고 산 사실이다.
중학교 때도 곧잘 반에서 1등을 하곤 해서 전교 등수가 그리 나올 줄 몰랐다.
이번 시험 보기 전에도 참 열심히 공부했다. 단 것이 두뇌활동에 좋다고 초콜릿도 몇 개 사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먹어가면서 새벽 한두 시까지 공부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평상시엔 열심히 해도 12시에는 꼭 잠자리에 드는 형이다.
아침엔 7시 기상이니까 하루 7시간은 자는 편이고, 토요일 오후엔 오후대로 늘어지게 한숨 잔다.
시험 첫날부터 저번과 다르게 얼굴이 환했다.
둘쨋날인가 돌아와서 이번 영어시험을 너무 잘봤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다녔다.
셋쨋날인가 수학 한 문제 틀렸다고 콧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날 사회는 공부 안해도 된다고 만화책 보고 놀았다.
마지막날 시험 끝나고 돌아와서 사회 공부 안했는 데도 결과가 너무 좋다고, 아무래도 이번 시험을 너무 잘 본 것 같다고
우쭐우쭐거리며 돌아다녀서 그런가보다 했다.
이틀전인가.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신발 후닥닥 벗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들이 <짠>하고 나타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하하하하하.......덩실덩실........우하하하하.....덩실덩실.......
이리 가서 덩실덩실 저리 가서 덩실덩실.......
"저 1등 했어요. 반에서 1등, 전교 7등."
특별용돈 나간다.
다행이다. 이젠 자기가 노력한 만큼 성취감도 느꼈을 테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될 테니.
공부 잘하는 사람 답답하고 숨막히고 융통성 없고 사회성 없다고 해도
제 적성에 맞는 연구직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되고 아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남에게 피해 안 가게 저 좋은대로 살면 되지. 그래서 행복하면 되지.
아들은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예매해뒀던 홍대 근처 락카페로 뒤풀이를 가서 저녁 12시 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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