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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112

아는 사람들 1. 오늘 이불집과 은행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에 알던 아주머니 한 분을 뵈었다. 한몇 년 간 나는 일하는 여성이었는데 그때 알게 된 아주머니이다. 멜빵으로 받쳐서 손자를 안고 가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그냥 지나쳐 가려는 눈치인데-사실,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된 이를 아는 체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갈등이 이는 순간이 우리에게는 흔하게 있지 않은가 - 느닷없이 손자를 안고 가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를 다 지나쳐 가도록 고개를 꺾어가면서까지 오래도록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기분이 퍽 좋은 상태였다. 이불집에서 색색의 곱고 예쁜 이불을 보고 집으로 배달시킨 후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나의 눈길을 의식한 그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봤다. 웃는 얼굴이었다. 다가갔다. "어! 손자예요?" "응... 2007. 10. 26.
긁어 부스럼... 일 년 전, 이맘때 의사는 말했다.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 있지요? 긁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나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안 가려워야 안 긁지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6개월을 다녔지만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심지어 병원에 다녀오는 날엔 더 온몸에 열이 확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이 올라왔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일정하게 치료받던 의사가 아니고 다른 방의 의사가 진료를 하던 날, 이 병은 완치가 되지 않는다고 딱 부러지게 말해 내 가슴에 심한 충격을 안겨줬다. 완치가 되지 않는다니...... 그럼 여름에 샌들은 어찌 신고 다니노? 내가 받은 충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기에 덧붙여 말했다. 참을 만하면, 좀 가라앉았다 싶으면 병원에 오지 말고 심해졌다 싶으면 다시 병원.. 2007. 10. 24.
빗속에 떠오르는 얼굴 이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리면 잊고 있던 그날이 떠오른다. 오는 비를 다 맞고 비 맞은 생쥐꼴이 되어 찾아갔던 친구네 집. 어쩌면 그렇게 어수룩했는지. 잠깐 내리는 소나기였으니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피하다 그친 다음에 갔어도 될 것을. 그리 고지식하게 교복과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다 맞고 갔던가.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 주던 친구의 커다랗게 놀란 눈과 그 친구의 엄마와 할머니, 동생들의 한결같이 똑같은 표정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부리나케 건네주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그런 꼬락서니인 것이 창피해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차려주는 따스한 밥상 앞에서 어색하게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의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될 즈음 새로 전학 온 짝꿍과 더 .. 2007. 8. 8.
공들임 이 나무가 계수나무란다. 물론 내 솜씨는 아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스크랩을 허용해 놓았거나 오른쪽 마우스를 사용해도 되게끔 설정해 놓으면 가끔 하나씩 돔바 온다. 이 계수나무 단풍을 보고 순간적으로 놀랬다. 토끼가 달나라에서 방아 찧을 때 옆에 있었다던 그 나무라고? 야, 나무가 참 장난꾸러기 같이 생겼구나! 하트를 빵빵하게 부풀려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부채를 축소시켜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나뭇잎이 질 때쯤 머리에 떨어지면 내 머리에 떨어져 준 것이 황송스러울만치 어여쁜 빛깔과 사랑스러운 모양새다. 저 사진을 찍은 사람은 공들여 사진을 찍고, 그중에서 가장 나은 사진을 추려서 공들여 포토샾을 했을 것이다. 사진이 더욱더 돋보이게끔. 그렇게 해서 올린 사진이 나 같은 이가 구경하다가 문득 맘을.. 2007. 6. 1.
반전 행복만은 없는 거야. 오로지 아름다움만도. 찬란하게 아름답고 나면 꼭 그것이 뒤집어진다. 대가 없이 지나가는 일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순한 듯이 오로지 부드럽게만 감싸 안아 주는 게 있다면곧 꼭 그만큼 거칠음을 내보인다. 서로 거울처럼...... 중에서 - 신경숙 한때는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행복이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싹 안면을 바꾸고 후회와 실망과 낙담으로 둔갑할 때가 있다.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느낌일 때가. 예전의 기쁨과 즐거움, 행복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버둥거릴수록 더 엉클어져서 버려야 될 헝클어진 실뭉치를 보는 낭패감. 매번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고 남의 다리 긁는 식의 감정의 교류에 따라오는 피곤함.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일찍이 이렇게 .. 2006. 12. 29.
내가 좋아하는 꽃 < 요건 친구가 찍어 온 것 하나 가져오고...... > 내 생일은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서 나뭇잎을 모조리 떨구어 버린 쌀쌀한 늦가을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터워지기 시작하고, 따뜻한 것을 찾고 그리워하게 되는. 그맘때에 꽃집 앞을 지나가다 보면 색색의 소국이 양동이 가득 꽂혀 있는 걸 보게 .. 2006. 10. 20.
부전자전 남편을 처음 봤을 때 밝고 깨끗한 모습에 아주 점잖아 보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의 이상형이었다. 마지못해 나간 소개 자리였으나, 어, 여태껏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내가 원하는 남자가 나타났을까, 하는 흐뭇한 생각이 마음속에 밀물처럼 고여 들었다. 그 인상은 연애하는 3년내내 불변의 진리처럼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언제나 비누 냄새가 퐁퐁 풍길 듯한 깔끔한 차림새와 까무잡잡한 피부의 나와는 대조적으로 뽀얀 살결이어서 더욱더 깔끔해 보이는데, 식당조차도 깔끔하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가질 않으니 요모로 보나 조모로 보나 '깔끔함'의 극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는 꼭 목욕(^^)을 하고 왔다니 깔끔해 보이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뽀얀 살결은 유전이어서 시누이들의 살결은 그야말.. 2006. 7. 28.
여름날의 추억 그리운 내 님 꿈에서나 뵈올 뿐 님 찾아 나설 때 님도 나서면 어쩌나 다른 밤 꿈에 님 찾아 나설 때는 같은 시간 같은 길에서 만났으면 - 꿈길 -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더냐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베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날 밤에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 하면 명월이, 명월이, 하면 황진이가 떠오를 것이다. 외모로 보나, 풍류의 멋으로 보나 황진이의 발끝도 건드릴 수 없는 나이지만 내게도 '명월아!'하고 부르던 분이 계셨다. 그래서 그 부름이 황송스러웠냐 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누누이 정정해서 부를 것을 말씀드렸.. 2006. 7. 22.
따라 해보는 것들 愛야 님의 블로그에 갔더니 세세하게 이렇게 조목조목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이 올라왔길래 가져와봤다. 따라 해볼려고... 나는 산보다 바다를 사랑한다. 아주 많이 사랑하여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산이나 바다나 다 사랑한다.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대로, 그 속에 잠기면 잠기는 대로. 이 나.. 2006.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