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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함 무료함 어린 날에 어른들은 들로 나가고 혼자서 빈 집을 지키노라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스멀스멀 덮쳐 왔다 텅 빈 마당, 텅 빈 동네에 뜨겁게 햇볕이 부서지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여름 한낮 지나친 무료함에 어린 계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장독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었다 항아리에 가득 찬 간장에 얼굴을 비춰보고 그 속에 담긴 파란 하늘을 들여다보고 뒷뜰을 어슬렁거리다 무심한 풀을 짓뜯어 씹어보다 마당 한켠에 높게 쌓인 보릿대 낟가리 위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다 아무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방문을 확 열어 젖혀보면 서늘한 어둠만 존재했다 모두다 어디 갔는가 어디 숨었는가 무료함이 빚어내는 외로움에 눈물 한방울 흘러내리던 날도 있었어라. 2005. 6. 22.
작은녀석의 별명 무대포, 납작수, 포동이, 준칠이, 찰고무, 닥종이인형. 이상은 작은녀석의 별명이다. 납작수는 돌 되기 전까지 어찌나 순한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심지어는 목욕물 속에 넣어 놓아도, 목욕을 시키고 있어도 자고 있어서 순하다고 늘 눕혀만 놓았더니 뒷통수가 깎은 듯이 납작해서 붙은 별명이다. 포.. 2005. 6. 1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 희 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 2005. 6. 13.
비 오는 날의 단상 이렇게 비가 내리면 경사진 언덕 끄트머리의 작은 초가집 마루에 앉아 앞 솔숲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듣던 내 유년이 떠오른다. 내 생각은 언제나 유년과 맞닿아 있다.꽃 한송이를 봐도, 풀 한포기를 봐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아름다움은 쓸쓸함과 연결이 되어 있을까.내 유년은 언제나 쓸쓸함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른다. 쓸쓸함을 안고 바라보는 풍경들은 언제나 가슴 속에 사무치는 그 무엇인가를 남겼다. 봄이면 밭 가득, 동네 가득 피어나는 노란 물감을 들이 부어 놓은 듯이, 자신의 가장 예쁜 색으로 환장할 듯이 유채꽃이 피어나고, 봄 햇살이 여름 햇살 못지 않게 강렬하게 내리쬐고 그 밭에서 벌이라도 윙윙거리면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가목울대를 꼴깍거리며 내려 갔다.. 2005. 6. 10.
선택의 기준 어제 켜놓은 라디오에서 남자들이 자주하는 3대 거짓말과 여자들이 자주하는 3대 거짓말에 대해서 나왔다. 남자들이 자주하는 3대 거짓말 1. 상가집에 가야 돼. 2. 보너스는 절대로 안 건드리고 다 가져온 거야. 3. 내일부터 운동할 거야. 여자들이 자주하는 3대 거짓말 1. 내일부터 다이어트 할 거야. 2. .. 2005. 6. 9.
기쁨 요며칠 아침 출근길에 연보랏빛으로 예쁘게 피어난 자주달개비를 보았다. 노란 수술이 앙증맞은 꽃, 자주달개비. 꽃의 여왕답게 화사한 아름다움의 넝쿨장미.이 장미의 조상인 야생 장미는 '찔레꽃'이라고 하던가. 그 화사함과 향기에 절로 눈길이 머물고, 코를 흠흠 벌름거리게 된다. 오래전, 아주아주 오래전 유년기에 읽었던 '비밀의 화원'이라는 동화가 떠오른다. 내용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제목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저 꽃그늘 아래 내 좋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소곤거리고 싶다. 꽃향기에 취해, 화사함에 취해, 좋은 사람에 취해......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어디서 날려오는 꽃향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쥐똥나무 꽃의 향기였다. 언제나 꽃의 생김새에 비해 그 향기로운 향기에 .. 2005. 5. 31.
부평 풍물 대축제 올해도 어김없이 '부평풍물축제'를 했다.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신포동으로 유명했다는데, 요새는 부평이 더 번화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린단다.그래도 신포동에 가면 옷차림이 더 번듯하고, 세련되고, 부티가 난다든가. 들은 풍얼에 의하면. 이 길은 내가 가장 애용하는 길이기도 하다.서점과 시장에 갈 때와 출퇴근하는 길이다. '문화의 거리'에 면한 대로를 토요일에서부터 일요일까지 이틀간 차량 통제를 하고 행사를 했다. 축제는 25일부터 5일간이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이 가장 하이라이트이다. 어느 해인가는 '회심가'로 유명한 김영임 씨도 왔었다. 조금 높은 곳에서는 망원렌즈가 달린 커다란 카메라로 사진 찍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내 카메라로는 겨우 이 정도 크기로 밖에 사람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아쉽게.. 2005. 5. 30.
친구 [ 그림 - 서정 육심원 ] 몇 살적부터 친구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 들였을까? 초등학교 시절에 삼총사를 본떠서 이름 붙인 '사총사'라는 친구들이 있었다. J, N, M, 그리고 나. 졸업 사진 찍을 때, 넷이서 사총사 기념으로 찍은 사진도 오래토록 지니고 있다가 엄마와 동생들 의 "너무 못 생겼어! 그때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었어? 크느라고 그랬나? 시골 바닷바람에 망 가졌나?......" 하는 놀림에, 그 놀림의 거슬림이 최고조로 달하는 날 그냥 북북 찢어 버렸다. 이제사 아쉬움이 크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이십대 때에 잠깐 얼굴 보고, 그후로 십오여년만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된 우리. J는 그때나 지금이나 명랑하고, 인정 많고, 마음씨 좋은 넉넉한 전형적인 아줌마 타입이다. 살림 도 잘할 .. 2005. 5. 29.
소래 포구 소래에 갔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해질녘에 비가 개이는 것 같아서...... 흐린 하늘 아래 멀리 논현지구로 개발되는 아파트 단지도 보이고...... 구멍이 숭숭 뚫려서 밑이 훤히 보이는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소래 포구.썰물 때라 배가 정박해 있다. 그 옆에서 신문지나 박스 따위를 펼쳐 놓고 앉아서 멍게나 생선회를 먹는 사람들 소시민의 자잘한 행복이 보인다.어떤 이는 커다란 카메라로 회접시를 찍고 있다. 저 사람도 블로그에 올리려고 사진을 찍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모두 자기창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든가. 벌써 얼굴이 불콰해진 사람을 보면 웃음도 나온다. 우리 아이들은 소래의 술빵을 엄청 좋아한다. 하나 사서 뜯어 먹으며한바퀴 돌아본다. 이런저런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 하면서...... 2005.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