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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작은녀석의 별명

by 눈부신햇살* 2005. 6. 18.


 

 

 

무대포, 납작수, 포동이, 준칠이, 찰고무, 닥종이인형. 이상은 작은녀석의 별명이다.

 

납작수는 돌 되기 전까지 어찌나 순한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심지어는 목욕물 속에 넣어 놓아도, 목욕을 시키고 있어도 자고 있어서 순하다고 늘 눕혀만 놓았더니 뒷통수가 깎은 듯이 납작해서 붙은 별명이다.

 

포동이는 그야말로 포동포동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엉덩이도 볼도 토실해서 붙은 별명이다.

 

준칠이는 내가 놀리고 싶을 때, 큰녀석은 재팔이, 작은녀석은 준칠이, 이렇게 부른다. 한꺼번에 부를 때는 재팔이 준칠이, 붙여서 부른다. 이름 끝의 팔 자와 칠 자가 왠지 좀 덜 떨어진 뉘앙스를 풍기므로 놀려 먹을 때는 딱이다.

 

찰고무. 볼이 찰고무처럼 탄력이 있고, 쭉쭉 잘 늘어난다. 찰지고, 말랑말랑하고 어찌나 감촉이 좋은지 한반의 여자아이들도 더러 만져 본단다.

 

닥종이인형은 근래에 내가 붙인 별명인데, 굳이 설명 안해도 얼굴만 보면 단번에 이해가 팍 간다. 눈은 실처럼 가늘고, 볼은 오동통하고, 입술은 쫑긋한 닥종이인형이 떠오른다. 전형적인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또 녀석도 이 별명은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제 눈에도 닥종이인형이 과히 밉지 않고, 싫지 않은 모양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대포,란 별명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별명이다. 녀석이 꽤 싫어하는 별명이다. 돌 막 지나고부터 얻은 별명이다.

큰녀석은 조심성이 많고, 침착해서 어렸을 적부터 말썽을 일으킨 적이 별로 없었다. 세 살, 어릴 적부터 컵에다 물을 떠서 뚜껑 닫아서 문갑 위나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면 물을 마시고 꼭 뚜껑까지 닫아 놓는 아이였다. 그런데 작은녀석은 정반대였다. 침대 위에서 내려올 때, 우리 큰녀석만 그러는지 대부분의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는지 뒤로 돌아서 엎드린 다음, 한발을 밑으로 내려 바닥에 닿으면 나머지 한발도 또 내려 놓게, 그렇게 조심스럽게 몸을 사리며 내려오기 마련인데, 작은녀석은 그냥 마구 걸어와서 밑으로 톡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내려와야 하는지 설명하고, 큰녀석더러 시범을 보이라고 해서 알려줘도 막무가내였다. 그냥 걸어와서 툭 떨어진 다음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거였다. 서럽게, 서럽게.

또 사람이 누워 있으면 사람을 피해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를 밟고 넘어가는 거였다. 그애 사전에는 돌아서 간다,라는 말은 없는지 어쩐지 무조건 전진 또 전진이였다.

 

말문이 트일 세 살 무렵,무엇을 할 때, 올바르지 않은 일이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면 말도 잘 하지 못하는 녀석이 억울하다는 듯이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제 뜻대로 하면서 야단을 치면 "메롱! 메롱!"하며 방바닥을 치면서 울었다. 아니 저 나이에도 반항을 하는가 싶어서 기가 막혔다.

나중엔 그 화살이 엉뚱하게도 내게로 왔다. 어떻게 태교를 했길래, 저런 성품의 아이가 태어나느냐고. 뭐, 나는 그 작품으로 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으나 수상하지는 않은 러시아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가 지은 일곱권짜리의 '고요한 돈강'과 '태백산맥'을 다시 읽었을 뿐이다.

어느 토크쇼에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가 나와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고요한 돈강'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맥'이 그러하듯이 '고요한 돈강'도 전쟁소설이다. 새삼스럽게 그 전쟁소설들이 왜 그렇게 재밌던지 코를 박고 읽었었다.

 

큰녀석 때는 냉장고나 장식장에 예쁜아이 사진을 붙여 놓고, 좋은 생각, 예쁜 생각만 할려고 노력했고, 글도 예쁘고 고운 글만 읽었다. 과일도 가장 예쁜 걸로, 그릇도 가장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었다. 그 결과, 아이를 어디 데리고 가면 참 잘 생겼다,라는 말은 으례히 듣는 말이었고, 순하기도 했다. 작은녀석도 돌까지는 순했다.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녀석이 돌변(?)을 했다.

막무가내, 떼쟁이에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무대포가 된 거였다.

주위의 아이들과 조카들과 놀 때에도 성품은 그대로 반영이 됐다. 큰녀석은 너무 순해서 이 엄마 속이 터질 정도로 맞기만 했다. 아이들 싸움에 엄마가 끼어들 수도 없는 터여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만 끓였는데, 작은녀석은 그와는 반대로 때리는 아이들의 엄마 심정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게 만들었다. 어찌나 사납고, 잘 때려대는지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른이 뭐라고 나무래도 절대로 기가 안 죽었다. 내가 뭘 잘못 했냐는 식이였다.

 

시댁은 가을 김장철이면 여러집이 모여서 한꺼번에 김장을 하는 풍습이 있다.

아이가 네 살때였든가, 그때도 바쁘게 김장을 하느라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고, 어른들은 김칫속을 버무리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일을 대충 끝내고 저녁을 먹을려고 둘러 앉았는데, 녀석이 자꾸만 코가 아프다고 했다.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만지면 아프다고 했다. 처음엔 어디에 살짝 부딪쳤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급기야 코가 아프다며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눈물 콧물 마구 흐르는데, 하얀색의 콧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검은색의 두 줄기 콧물이 흐른다. 먼지가 많았나,하고 생각하다가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너, 설마, 설마 그건 아니겠지?"하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 뭔데?"하고 물었다. "아니야, 아닐거야."하면서 코를 살살 만져보다가 점점 더 심하게 울어대는 녀석이 이상해서 확인차 밑에서 아이의 콧속을 들여다보니 맙소사, 세상에나, 내 짐작이 그대로 들어 맞았다. 아까 얼핏보니 아이들이 종자로 남겨 둔 콩을 가지고 놀더니 내년 봄 밭에 뿌려져야 할 콩이 그녀석 콧 속에 떡하니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이를 어째,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코에 힘줘서 힝하니 코를 풀어보라고도 시켜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고 아이는 계속 더 심하게 울어댔다. 남편은 아직 시골집에 도착하기 전인 토요일 저녁이였다.

먼저 도착하신 아주버님과 서방님과 나와 녀석은 먹던 밥을 팽개치고, 차를 타고 근처의 큰 종합병원으로 갔다. 이건 또 뭐람. 그 병원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으니 가장 가까운 곳의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보란다. 그 시간에 다른 개인병원들은 다 문을 닫았을 시간이다. 부랴부랴 가장 가까운 다른 도의 대학병원으로 갔다. 충청남도에서 전라북도로 간 것이다.

응급실로 갔다. 이제 한창 배우는 중인 것 같은 젊은 의사가 콧속을 비춰보더니 핀셋으로 어찌 어찌 해보더니 콩껍질만 살짝 까고 더 깊숙히 밀어 넣은 꼴이 돼버렸다. 당연히 아이는 더 죽겠다고 새파래져서 울어댔다. 미안해 하면서 자기가 어찌해 볼려고 했는데 안 된다면서 이비인후과로 안내해줬다. 엄마는 나가 있으랬다. 아이가 더 어리광을 피우며 엄살을 떤다고. 아주버님이 꽉 붙들고 의사선생님께서 콧물 흡입기로 수차례 빨아냈는데, 그래도 안 나온다. 더 강력한 흡입기로 바꿔서 세번인가 하니까 비로소 나왔다. 뜨뜻한 콧속에서 불을 대로 불은 검정콩 하나가.

그저 웃을 수 밖에. 도대체 그것을 왜 콧속에 넣는단 말인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사고란다. 귀에다가도 넣고, 코에 콩을 넣어서 싹이 틀 때까지 모르고 있어서 콧속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그때서야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다고. 알약을 코에다 집어 넣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그 경우엔 콧물에 약이 녹아서 흘러 내리므로 그리 큰 문제는 안 된다고. 아이들은 늘 잘 지켜봐야 된다고.

 

아이들이 건강해서 병원은 예방접종 할 때나 가는 걸로 알고 있던 나는 녀석 때문에 벌써 두 번째의 종합병원 행이었다. 지난해에 어머니 회갑잔치 때에는 유리문 사이에 손을 집어 넣어서 왼손 검지 손톱을 건드려 손톱이 빠지고 살이 찢기워서 손톱을 손에 얹고 여섯바늘을 꿰맨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어찌나 놀라고 가슴을 졸였든지. 그래도 그놈의 무대포 정신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전신마취하고 꿰매야 하는 것을 녀석은 부분마취만 하고 꿰맸다. 의사가 감탄했다. 겁이 없다고......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녀석이 이제 열한 살이 되었다.

어제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었다. 그 녀석의 특징은 엄마가 학교에 가면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 엄마 가도 아는 척 안하니까 안가도 돼지?" 했더니 정말로 안 올거냐고 수차례 묻길래 그래도 요녀석이 엄마가 오기를 은근히 바라나보다,하는 생각에 갔다.

 

젊은 총각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이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고, 조심스러워하고, 쭈뼛거리자 평소대로 하란 말을 몇번이나 하셨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발표할 때가 되면 손을 번쩍번쩍 들던데,

녀석 손을 한번도 안 들었다. 그러다 중간에 슬쩍 뒤를 돌아보길래, 나 찾는가 싶어서 "준원아, 엄마 여깄다." 했더니 그래도 슬핏 웃는다.

 

수업시간 40여분이 끝나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준원아, 엄마는 다 봤다."

"뭘요?"

"우리 준원이 손 한번도 안 드는 거. 엄마가 보고 있는데 손 한번도 안 들더라."

녀석 쑥쓰럽다는 듯이 웃기만 하더니 집에서 부리던 그 아양, 어리광은 다 어디로 갔는지 친구들과 휑하니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다음 시간이 체육시간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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