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
어린 날에 어른들은 들로 나가고
혼자서 빈 집을 지키노라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스멀스멀 덮쳐 왔다
텅 빈 마당,
텅 빈 동네에
뜨겁게 햇볕이 부서지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여름 한낮
지나친 무료함에
어린 계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장독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었다
항아리에 가득 찬 간장에 얼굴을 비춰보고
그 속에 담긴 파란 하늘을 들여다보고
뒷뜰을 어슬렁거리다
무심한 풀을 짓뜯어 씹어보다
마당 한켠에 높게 쌓인 보릿대 낟가리 위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다
아무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방문을 확 열어 젖혀보면
서늘한 어둠만 존재했다
모두다 어디 갔는가
어디 숨었는가
무료함이 빚어내는 외로움에
눈물 한방울 흘러내리던 날도 있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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