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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뒤 저 길에 벚꽃 보러 다녀왔던 날짜가 벌써 재작년 4월이다. 남편이 출장 갈 때 너무 아름다운 길이 한없이 펼쳐진다며 4월 어느 봄날의 휴일에 꽃구경 가자고 해서 갔던 길.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 길게 이어졌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이 벚꽃길이 이어졌지만, 이 길이 2차선 도로가 아님을, 그래서 벚꽃터널을 이루지 못함을 아쉬워하기도 했었다. 그 길을 지난 눈 내리던 날에 달리던 남편이 하얀 눈길이 아름답다며 한 장 찍고 또 다른 어떤 날엔 잎새 다 떨구고 빈가지만 남은 나목들이 끝이 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풍경이 아름답다며 찍어왔다. 그것도 우리가 벚꽃 구경 갔을 때 찍은 딱 그 자리다. 그 자리에 서면 풍경에 감탄하는 자리인가. 요즘 싱어게인 열심히 보고 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노래는 .. 2024. 1. 5.
묵은 해를 보내는 방법 연말을 보름쯤 앞두고 안부 전화를 걸어온 작은아이가 연말인데 가족끼리 모여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전에 일산집에 생긴 어떤 일로 통화를 하게 된 남편과 큰아이의 대화 내용을 들으니 설에나 보자며 서로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데 그걸로 미루어 보아 우리도 설날에나 보게 되지 않을까 답했다. 작은아이가 설은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다며 깜짝 놀란다. 가족이 자주 얼굴을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리하여 연말엔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아산 집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보내게 되었다. 서울에 아홉 날이나 머물다가 온 나는 내려오자마자 연말모임 음식 준비로 부산을 떨어야 했다. 마트에도 농산물 가짓수가 많은 하나로마트와 육류가 풍부하게 구비되어 있는 이마트를 번갈아 다녀왔으며 생선회는 횟집에 따로 다녀올 .. 2024. 1. 4.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내리는 눈 속에 집을 나서는 나를 엄마는 신기해하였지만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 기대를 잔뜩 안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혹시 모를 추위에 대비해 내 숏패딩 대신에 엄마의 롱패딩을 빌려 입고. 하지만 결코 장갑은 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경을 담아야 하므로. 하! 내가 서울에 와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다니. 축복처럼 하얀 눈이 온 세상에 내리는 날이라니. 사박사박 눈 밟고 오르는 기분이란. 이런 풍경을 보자니 벌써 30여 년이 지난 결혼 전 친구들과 함께 올랐던 유명산의 설경이 떠오른다. 그 시절 패딩 점퍼 같은 것은 없었다. 얇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위에 청카바를 걸쳤다. 그날 함박눈이 펑펑 하염없이 내려 잎새 떨군 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었고, 때론 그 가지들이 하얀 터널을.. 2024. 1. 2.
서울에서의 아홉 날 올해는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든 애동지라 팥시루떡을 해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며칠 일찍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팥죽을 끓였다. 하지만 아무리 팥죽을 좋아하는 나여도 팥죽으로 대여섯 끼를 먹으면 이제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새알도 너무 많다. 나는 팥국물이 좋은데 새알 가득히 떠줘서 먹느라 고생했다.ㅠㅠ 해줘도 말 많고 탈 많은 딸 같으니라고...... 그래도 함께 새알 만들어 팥죽 끓이는 시간이 재미있고 좋았다. 흰 눈이 살짝 내렸던 날에는 행여 엄마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혼자서 산에 올랐다. 나이 드시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이 가장 큰 불상사라고 하니까. 친정에 머무는 아홉 날을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산에 올랐다. 도심에,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야산이 있는 것은,.. 2024. 1. 2.
설경을 보며 호수 한 바퀴 눈이 내렸다.함박눈이 펑펑 고요하게 내린다면 집안에 들어앉은 나는 편안하고 아늑한 감성을 느꼈을 텐데아주 오래전 유행가 가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를 한 번씩 떠올리게끔이따금 천둥도 쿠쿠쿠쿵 배탈 난 뱃속처럼 울려대 신경 쓰이게 했고,세찬 바람은 눈을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휘몰고 다니고 있어서창밖을 내다볼 때면 내리는 눈들이 마치 갈피를 못 잡고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며 심란스럽게 했다.  바람을 동반하고 내리는 눈은 나뭇가지에 쌓이지 못했다.쌓일라치면 바람이 톡 건들어 털어내는 꼴이었다. 그래도 베란다 난간엔 눈이 조금 쌓이고 신기하게도 고드름이 달렸다. 눈 온 다음날 설경을 보러 가자고 긴 다운 외투에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어머나! 보도블록은 이렇게 예.. 2023. 12. 18.
보통의 날들 어느 날은 길 위에서 서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보게 되었다. 넘어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네. 또 다른 어떤 날은 서쪽으로 난 창을 열다가 아직 아침 하늘에 머물고 있는 달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엔 헬리콥터가 무언가를 나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고 향 노 천 명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늘타리 따는 길 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등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집중화 상아 뻐국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채 기룩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 2023. 12. 12.
호기심이 발동하여 지난여름 7월, 한창 더울 때 다녀왔던 신정호 주변에 있는 카페 웜사이트 온양에 다시 가보게 되었다. 더가까이 님께서 `크렘 뷔렐레'를 올리셨길래 먹어보지 않아 맛을 모른다고 하였더니 내 사는 곳 주변에서 팔고 있는 곳을 검색하여 알려 주셨다. 미국에 거주하고 계시면서 말이다. 모두들 햇살을 피해 내부 안쪽으로 앉아 있길래, 예전처럼 다시 창가에 앉았다. 그리하여 지난번과 똑같지만 계절에 따라 달라진 풍경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마늘바게트와 크림 뷔렐레, 저 쪼그만 크림 뷔렐레 한 개에 5,800원. 을매나 맛있길래? 하긴 엄청 맛있다는 평을 남기게 된 저 마늘바게트도 6천 얼마였다. 그새 가격 까먹음. 크림 뷔렐레에 대한 소감 한 마디. 나는 미맹인가 봐. 에그타르트 비슷한 맛이 나. 크기도 딱 에그타.. 2023. 12. 9.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라는 생소한 나라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건 2008년도에 친구의 출판사에서 펴냈다 하여 구매했던 신미식 사진작가의 책에서였다. `어린 왕자'에서 읽으며 낯설었던 이름의 꺽다리 바오밥나무가 늘어서 있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붉디붉은 황톳빛 흙길이 있고,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는 별이 반짝이는 듯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마다가스카르에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팀이 간다고 하여 무척 반가웠다. 저번에 동생과 얘기를 나누다 무슨 말끝엔가 "언니는 그냥 기안84를 좋아하는 것이네."라고 했고, 나는 아무 거부감 없이 "맞아. 기안84를 좋아하는 편이야."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그런 기안이가 나오는 프로이고, 게다가 촬영지가 마다가스카르라고 해서 그렇잖아도 좋아하는 프로인데 .. 2023. 12. 5.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중의 하루 한 끼는 외식을 하게 되는 날이 많은데 그때는 주로 점심으로 먹게 된다. 신정호 주변의 카페와 식당을 모두 가보자는 계획에 따라 이번엔 황산 앞으로 새로 지은 쌍둥이 건물 중의 하나에 들어선 중식당으로 가보자고 했다. 건물 외관을 찍으려다가 별 걸 다 찍는다는 핀잔에 움찔해서 사진이 엉망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찍으면서 멋쩍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왜 찍는 걸까? 중식당 안에서 바라보는 겨울 빈 논 너머의 신정호수공원. 모내기 끝난 5월 말 초록논부터 추수하기 전 11월 초 황금논까지 논뷰가 참 멋질 것 같다고 했더니 빈논이 주는 운치도 참 좋다고 해서 겨울에 흰 눈이 하얗게 쌓일 때도 멋지겠다고 생각 들었다. 쌍둥이 같은 옆 건물은 이름이 .. 2023.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