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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26

다시 가보는 순천 송광사 조계산 자락에 세워진 송광사와 선암사 두 사찰 중에서 송광사를 택했다. 여행 일정을 남편이 짰는데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단 걸음이 느렸고, 인물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엄마까지 여자 넷이 모이니 새로운 풍경을 대할 때마다 그것에 대한 수다가 늘어져서 진행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여행 일정을 짤 때부터 이리 되리라 예견하기도 했다. 여자들을 너무 몰라~~ ^^ 이 길쭉한 나무들은 편백나무 숲이라고 지난 여행에 기록해 놓았던데 나는 이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삼나무야? 전나무야? 했다. 아이고~! 나무들은 더러 너무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 옆에서 보는 단청도 엄청 화려하고 지붕의 모양도 매우 아름답다. 물론 앞에서 볼 때도 참 아름답다. 송광사는 6.25 사변으로 많은 건물이 화재를 입.. 2022. 10. 5.
세미원에서 세미원에 갔다. 처음부터 세미원에 가려고 나섰던 길은 아니다. 샤부샤부 뷔페에서 또 탈이 날까 봐 먹는 것을 조심하는 엄마를 보고 기분 전환 겸 드라이브 가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보니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눈과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옛날 양평의 용문산에 갈 때도 이 길로 달려갔을까? 억새가 멋지던 천마산에 갈 때도, 대성리에 갈 때도, 강촌에 갈 때도, 춘천에 갈 때도, 춘천에 가서 배를 타고 다시 청평사가 있는 산으로 놀러 갔을 때도...... 그중의 몇 번은 기차를 타고 갔으니 용문산 갈 때 이 길로 달려갔을까?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날이 흐리다 개다를 반복하니 산마다 하얀 구름 모자를 쓰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이 검단산이라고 한다. 길가로.. 2007. 8. 6.
궁남지와 능산리고분군에서 우리 때문에 시골집에 모이게 된 둘째 형님네와 막내 동서네와 저녁엔 고기를 구워 먹고, 동서네는 바빠서 가고 둘째 형님네와 우리 가족은 남아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아버님이 연로하셔서 미처 하지 못한 밀린 일을 거들러 아주버님과 남편과 우리 아들 둘과 형님네 아들, 그러니까 장정 둘과 장정 비슷한 남자 애 셋, 모두 다섯이서 딸기밭으로 나갔다. 더운 여름에 비닐하우스 속에서 힘쓰는 일을 하고 온 다섯 남자와 늦둥이 꼬맹이의 모습이 후줄근하다. 모두 차례대로 씻은 다음 부여에 가자고 하시는 아버님과 다른 집에 품앗이 갔다가 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시내에 나가 칡냉면을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시장기부터 면한 후 갈 요량이었다. 한동안은 칼국수만 잡수시던 아버님이 요즘은 냉면만 입에 맞아한다고 하.. 2007. 7. 16.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밀밭이란다. 보리밭에 대한 기억은 많지만 밀밭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언젠가 이렇게 말했더니 보리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묘한 뉘앙스를 띤 질문을 하던데 그 사람이 넘겨짚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에 관한 기억이니 숨바꼭질할 때 밭고랑에 누워 숨었을 뿐이다. 개미란 놈이 목덜미를 따끔하게 물어서 아얏!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어서서 들키기도 했지만. 보리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보리밭에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갈대밭이라면 또 몰라도,였다. 강화도 초지진에는 갈대밭이 없다고 어느 블로거가 답해 주시던데, 내 기억 속에는 왜 강화도 초지진의 갈대밭으로 입력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남편과 강화도를 드라이브하다가 초지진 근처를 지나가면서 .. 2007. 6. 24.
카레라이스 어제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남편은 군대에서 질리게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해 남편이 출장 간 날 저녁의 주메뉴이다. 카레라이스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 출장 갔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어제 오후에 카레라이스 재료를 사 오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녀석이 그 끝에 물어봤다. "아빠 출장 갔어요?" 이어 재료 속에 섞여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보고서는 "어, 내일은 골뱅이 요리할 거예요?" "응." "앗싸!"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환하게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해 시험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어릴 적에는 그저 노느라고 바빴는데 초등학생이 시험공부를 한다며 여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웃기는 녀석, 제 용돈.. 2007. 6. 13.
초여름의 나들이 유월이 오면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그땐 종일토록 향긋한 건초 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으리. 그리곤 미풍 나부끼는 하늘에 흰구름이 세우는 태양 향해 높이 솟은 궁전을 바라보리. 그가 노래 부르면 난 그의 노래 지어주고 감미로운 시 읽으리. 종일토록...... 아무도 모르게 우리 초가에 누워 있노라면,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저런 시나 읊조리며 망상에 빠지면 딱일 것 같은 6월, 초여름의 날씨에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동반이었는데, 어느새 머리가 굵어졌다고 요 핑계 조 핑계 대면서 따라나서지 않는 녀석들에게 부모 없는 사이에 알아서 끼니 해결하라며 천 원짜리 두 장 찔러주고 집을 나섰다. 더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안 따라다닐 것.. 2007. 6. 2.
청계산에 오르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자 했다. 도봉산은 집에서 너무 멀고 사람에 치이고, 관악산은 지난번에도 다녀왔고 벌써 몇 번째 올랐으니 이번엔 청계산에 한번 가보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매사에 정확하고 꼼꼼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남편은 인터넷 검색으로 등산 안내도 뽑고 계획을 잡았다. 이리 가서 요리로 갔다가 저리 가서 이리로 오면 몇 시간 소요되고 코스가 어떻고 저떻고......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남편, 정작 가는 날 아침에는 뽑은 안내도는 집에다 두고 가더라. 차속에서 안내도는? 하고 물어보는 내게 아이고! 하더니 내 머릿속에 다 들었어, 하고 어깨만 으쓱거리더라. 아침잠이 많고 저녁잠이 없는 올빼미형인 내가 쉬는 날 아침 7시에 일어나려니 눈이 떠지지 않아서 밍기적거리다가 그냥 가지 말까? .. 2007. 3. 2.
설 즈음 설 쇠러 시골 가는 길가의 풍경이다. 파란 하늘 밑에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은 잠잠하다. 차창을 통해 뺨에 어깨에 와닿는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햇빛이 따가워서 잠을 자기 힘들다고 작은녀석이 투덜거렸다. 가까이 혹은 멀리 아직 새 잎이 돋아나지 않은 동화책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지들만 그려 놓은 빈 가지 뿐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중에는 파란색 지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예전 시골집도 다시 짓기 전에는 파란색 지붕을 하고 있었다. 생활하기 불편하다고, 특히 겨울에 너무 추운 집 구조라고 새로 집을 지은 후에 어른들, 그중에서도 며느리들이 많이 좋아하는 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집 특유의 운치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햇.. 2007. 2. 21.
썰물이 빠져나가듯... 이틀 전, 월요일에 작은녀석의 학교가 개학하고, 오늘은 큰녀석의 학교가 개학했다. 남들은 아이들이 개학하는 날, 홀가분한 마음이 하늘을 날 듯 한다는데, 나는 쓸쓸함이 가만가만 스멀스멀 모락모락 피어 올라온다. 그 기분이 갑자기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올라오자 문득 엄마도 이런 마음일까, 그래서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친정에 들렀다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쓸쓸하고도 쓸쓸한 얼굴로 동생네 가족이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동생네 네 식구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엄마 곁에 오롯이 남는데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뭐가 그렇게나 섭섭하냐고. 키울 때 살갑게 키우지도.. 2007.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