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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세미원에서

by 눈부신햇살* 2007. 8. 6.

 

세미원에 갔다. 처음부터 세미원에 가려고 나섰던 길은 아니다. 샤부샤부 뷔페에서 또 탈이 날까 봐 먹는 것을 조심하는 엄마를 보고

기분 전환 겸 드라이브 가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보니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눈과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옛날 양평의 용문산에 갈 때도 이 길로 달려갔을까? 억새가 멋지던 천마산에 갈 때도, 대성리에 갈 때도, 강촌에 갈 때도, 춘천에 갈 때도, 춘천에 가서 배를 타고 다시 청평사가 있는 산으로 놀러 갔을 때도......

 

그중의 몇 번은 기차를 타고 갔으니 용문산 갈 때 이 길로 달려갔을까?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날이 흐리다 개다를 반복하니 산마다 하얀 구름 모자를 쓰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이 검단산이라고 한다.

 

길가로는 회화나무 꽃이 눈에 잘 띄지 않게 하얗게 피어 있고, 그것을 회화나무라고 하니 꼭 아까시나무처럼 생겼다고 한다. 맞다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맞장구를 친다. 가죽나무는 연둣빛의 열매를 소담스럽게 주렁주렁 달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꼭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엄마가 가죽나무의 잎은 먹는다고 한다. 그것은 참죽나무겠지요, 가죽나무는 먹지 못 합니다. 얼마 전에 뒷산에서 남편이 저것은 개가죽나무라고 해서 당신처럼 충청도 사람들은 가죽나무더러 개가죽나무라고 부르고, 참죽나무더러 가죽나무라고 하면서 잎을 먹는대,라고 설명했는데. 가짜 죽나무라고 가죽나무라고 한대, 라며.

 

들판에는 달맞이꽃이 꽃봉오리를 오므리고 지천으로 자라고 있고, 밭에 들면 농사를 망치게 한다는 개망초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군데군데 붉은토끼풀도 보이고, 어쩌다 깨순이 참나리꽃도 보이고, 쇠뜨기도 보인다.

스쳐 지나가는 산 밑의 나무들마다 칡이 칭칭 휘어 감고 자줏빛의 이쁜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내 눈에는 그것이 잘 보이는데 엄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단다. 저 칡이 감은 나무는 다 죽어야. 맞아요, 악연이에요.

 

차 창가로 펼쳐지는 강물을 보며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기분 좋아한다.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좋다.

 

목적지가 양수리라고 하니 엄마에게 관심 있어하는 쌀장사 아저씨가 양수리에 산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단지 내에 장이 설 때면 그 아저씨가 오곤 하나보다. 관심 없다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양수리에 간다고 하니 그것부터 떠올리고 양수리가 어딘가 궁금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 양수리, 두물머리에 간다고 차에서 내려서 어느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뜻밖에도 연꽃 사진을 많이들 찍어오던 세미원으로 연결됐다. 누군가가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구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내가 알고 있는 그 사실을 한번 확인시킨 후에 입장시켜줬다. 그렇게 잘 꾸며 놓았으면서 고맙게도 무료였다. 청양의 고운 식물원은 입장료를 일인당 8 천 원씩이나 받던 걸.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서 안내해 준대로 굽 있는 샌들을 벗어서 맡기고 파란 고무신으로 갈아 신었다. 엄마가 고무신 신은 발이 더 쪼깐해 보이고 이쁘단다. 시골집에 가면 이런 고무신을 가끔 신어서 나는 전혀 신기하지 않다.

 

온실로 만들어 놓은 수생식물원으로 들어갔다. 질경이택사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또 꽃은 벗풀이나 보풀 모양인데 잎이 눈에 띄지 않아서 한참을 찾았다. 그런 꽃 모양의 다른 식물이 또 있나 보다.

 

그곳을 나와서 야외 연꽃밭을 구경했다. 백련 밭, 홍련 밭, 수련 밭이 있고, 붉은인동을 담장에 둘러서 심어 놓았고, 천일홍과 백일홍, 습지를 좋아한다는 부처꽃도 심어 놓았고, 보랏빛의 벌개미취도 많이 심어 놓았다. 주홍빛 자잘한 꽃송이가 땅을 바라보고 있는 애기범부채, 노란 금불초, 잎의 흰 무늬가 마치 꽃잎처럼 보이는 설악초, 분홍 꽃잎에 노란 수술의 늘씬한 다리를 가진 미인을 떠올리게 하는 금꿩의다리. 누군가가 노랑원추리를 보고 <백합>이라고 한다. 엄마 역시 백합인 줄 아는지 '불란서의 꽃'이란다. 아니네요, 이 꽃은 원추리네요. 백합이라고 말하던 누군가가 슬몃 웃으며 가고, 엄마는 그래야? 하고 반문한다. 백합과 친척이긴 해요.

 

사람 하나 들어가서 숨어도 끄떡없을 법한 큰 항아리들이 이곳저곳 무더기로 놓여 있다. 엄마는 옛 생각이 나는지 가까이 가서 독 안을 들여다본다. 어른 셋은 마냥 신기해하는데 아이들은 시큰둥한 얼굴 표정으로 힘없는 발걸음이다.

하긴 세미원으로 막 들어서는데 큰녀석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좋겠네요."

그래, 좋다. 신난다.

 

얼마 전에 갔던 부여의 궁남지 연꽃보다 더 실하게 잘 자랐다. 순위를 매긴다면 이곳 세미원이 강가에 자리 잡아서인지 더 운치가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또 괜한 걱정을 한다. 저 많은 연근은 누가 캐며 물이 깊은 곳은 어찌 캐는가, 하고. 이곳은 강가라서 물을 퍼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강가에 자라고 있는 연꽃들의 뿌리는 무슨 방법으로 캐는가...... 저도 몰라요.

 

그 해답은 모르면서 엉뚱한 정보를 준다. 연꽃으로 유명한 곳이 경주의 안압지라는 곳도 있고, 부여의 궁남지, 전주의 덕진공원, 우리 고향 무안의 회산백련지가 있다고.

 

돌아 나오는 길에는 수세미오이로 둘러놓은 터널을 지나고, 풍선덩굴과 조롱박을 둘러 놓은 터널을 지난다. 남편과 엄마, 또 다른 사람들이 풍선덩굴더러 꽈리란다. 또 아는 척을 한다. 그것은 풍선덩굴입니다. 꽈리를 닮긴 닮았지요.

풍선덩굴은 도감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처음 봤는데 연둣빛의 열매들이 올망졸망 참 이뻤다. 집에서도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오는 길에 한 그루의 능소화를 봤는데 얼마 전에 어느 분이 미국능소화는 꽃이 더 작고 색이 진하다더니 아마도 미국능소화인지 주홍빛으로 꽃색이 진하고 덜 이뻤다. 그래도 이쁘지요? 하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엉뚱하게도 자줏빛의 천일홍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너무너무 이쁘다고 키우고 싶다고 한다. 나는 박태기나무 꽃이나 모란꽃이나 천일홍처럼 꽃색이 너무 진한 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조금 놀란다.

 

디카를 가져가지 않은 게 조금 서운했다. 나오면서 보니 우리가 들어올 때와는 달리 길게 줄이 늘어서있다. 앞서 나가시던 어느 분이 출입구 관리하시는 분께 잘 봤다고 수고하시라고 정중히 인사를 한다. 나도 뒤따라 나오다 얼떨결에 그분께 고개를 까딱한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탈이 나도 단단히 났다. 큰일 났다. 당뇨 때문에 저렇게 자꾸 시름시름 아픈 것은 아닌지 엄마를 친정집에 내려 드리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영 언짢다. 그만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생각한다. 내게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분을 참지 못하고 펑펑 눈물을 쏟아내면서 이런 때는 또 눈물이 참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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