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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안면도에서

by 눈부신햇살* 2006. 9. 11.

 

 

 

안면도에 갔다. 해마다 여름이면 남편의 고향 친구들과 동네 뒷내에서나, 그 동네의 유명한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던가 하는 저수지 근처에서 놀다가 이제는 동네를 좀 벗어나서 다른 곳엘 가보자고 의견을 모은 다음 첫 번째로 움직인 곳이다.

 

안면도는 남편이 자주 출장을 가는 곳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쪽의 업무를 맡고 있는 남편은 어쩔 땐 내 고향 근처의 해남이니 광주니 영암, 영광을 다녀오기도 한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가끔씩 부럽다. 가장 부러웠던 것이 몇 년 전에 독일에 다녀온 것이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어서 독일 구경은 별로 하지도 못 했다고 하는데도 다녀와서는 그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몇 년 살다가 온 사람처럼 우려먹곤 했다. 

 

남편이 자주 가는 안면도이니 만큼 남편이 안내를 했다. 안면도는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환하다고 하던 말은 정말이였다. 백사장 해수욕장 근처에 어시장이 있고, 자연산 대하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출발한 친구들의 왜 이렇게 늦냐는 빗발치는 독촉 전화를 받으면서 급하게 급하게 달려갔다. 사실은 우리는 약속 시간에 딱 대어서 간 것인데, 그 친구분들이 30분 먼저 와서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 마냥 얼른얼른 오라고 성화였다. 게다가 위쪽은 비가 오락가락해서 차가 밀리는데, 아래쪽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드디어, 홍성 IC를 지나 방조제를 지나 서해안 휴게소에 도착했다. 다른 집들은 착실하게 아이들이 다 따라왔다. 한 집은 아이 넷이 모조리 다 따라왔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광경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큰 녀석은 낙원 상가에 전자 기타 알아보러 가기로 일찌감치 친구와 약속이 잡혀 있었다며 따라나서지 않았고, 작은 녀석은 큰 녀석이 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덩달아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튼 두 부부만 차에서 내려서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둘이서 신혼여행 가느냐, 오붓하니 오늘 따로 둘이만 방을 하나 잡아줘야 될꺼나, 둘이만 즐기려고 아이들은 데려오지 않았구나......"

 

해변가에 운동회 때에나 씀직한 큰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산물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남편에게 사오라고 해서 남편이 나서니 마누라인 나도 따라나서고, 회장 겸 총무를 맡고 있는 친구분의 부인도 함께 따라나섰다.

 

한 친구 부인의 남편은 얼마나 짓궂은지 한동안 나는 애를 먹었다. 슬쩍 발을 밟고서 아야! 하면서 쳐다보면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 뭐 먹을 때면 어김없이 부인을 제쳐 두고 내게 먹여준다고 달려들고(이번에도 어김없이 회를 한 점 받아먹어야 했다. 우리 남편은 사람 많은 곳에서는 절대로, 집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이 하는 서비스를 매번 엉뚱한 사람이 원하지도 않는 서비스를 하겠다며 난처하게 만든다.), 설거지를 하러 가면 도와준다고 따라오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따라서 흉내 내고, 배를 타고 놀 때면 내게만 배 태워준다며 얼른 타라고 쫓아다니고 등등등......

 

한동안 저 부인의 따가운 눈초리와 마음을 느껴야 했다. 그러던 것이 나이 탓인지 지난해부터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제일 친밀감이 드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저 집은 부부 금실도 좋고, 가정도 아주 화목하다. 단지 그놈의 장난기가 도져서 그리 하는 것이다. ) 그 집도 아들만 둘, 우리 집도 아들만 둘이어서 엄마 곁에 아이들이 잘 붙어 있질 않으니 저렇게 모이면 말벗이 없다.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되곤 하는 우리 둘이는 자연스레 함께 움직이고 말을 많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딸이 있는 집들은 딸이 말벗이 되고, 친구처럼 함께 움직이곤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딸이 꼭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그곳 백사장 어시장에서 자연산 대하 3 Kg에 7만 5천 원, 광어 두 마리와 노래미 한 마리에 7 만원, 대하와 마찬가지로 지금이 딱 제철인 전어 3Kg에 7만 5천 원에 샀다. 매운탕 거리는 친구 부인은 안 가져간다고 해서 내가 가져오겠다며 그 가게에다 보관을 부탁했다.

 

마침 시장했던 터라 회 뜨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도 왜 이렇게 안 오냐는 친구의 전화가 온다. 충청도 사람 성질 느긋하다는 말은 다 거짓말인가 보다. 저렇게 참지를 못하는 것을 보면......

그 가게에서 휴대용 가스 레인지와 프라이팬도 은박지를 깔고 그 위에 소금까지 깔아서 한 개 빌려줬다. 미리 준비해 온 후라이팬까지 세 개의 후라이팬 위에서 대하가 지글지글 불그스름하게 맛나게 익어간다.

 

 

 

배가 부른 포만감을 느끼며 물이 들어오고 있는 바다로 하나씩 둘씩 나간다. 몇몇은 바다를 구경하고, 몇몇은 물을 튕기며 놀고, 몇몇은 낚시를 한다. 밀물 때라 들어오던 눈먼 광어 새끼 한 마리가 미끼를 물었고, 망둥어 몇 마리가 걸려들었다. 어렸을 적 먹던 그 맛일까, 하는 호기심에 여자들은 아무도 먹지 않겠다던 망둥어를 내가 덥석 먹겠다고 나서니 모두들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다. 거, 무지하게 잘 먹네, 하는 생각들이 읽힌다.

 

우리 고향에서는 망둥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다진 다음 무채와 버무려 새콤 매콤하게 먹거나, 햇빛에 꼬들꼬들하게 말렸다가 간장에 조려 먹었다는 얘기를 그 친구분이 공감한다. 참 맛있다고,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고. 그 생각이 참 반갑다.

 

우리 일행이 백사장 깊숙이 차를 대고 있는 것을 본 차들이 깊숙이 들어오다 바퀴가 모래에 빠져서 버둥버둥거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모두 걱정 반, 놀라움 반으로 어, 어, 소리를 지르면서 구경한다. 그중 가장 깊숙이 들어갔던 차는 견인차를 불러도 되질 않아서 포클레인까지 동원해서 차를 뺐다. 트럭에 실려온 포클레인이 어떻게 땅으로 내려오고 올라가는지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남편 친구 중의 하나가 저 젊은 친구는 젊어서 세상살이를 잘 모른다고, 우리 일행에게 밀어달라고 했으면 밀어줬을 텐데, 하고 그 청년에게 말을 건넨다. 청년은 쑥스럽게 웃으며 피해 줄까 봐서 그랬다고 한다. 모처럼 기분 내러 데이트하러 나왔다가 엉뚱한 곳에다 거금을 쓰고 돌아간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라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한 잔 두 잔 걸친 술들이 거나해지자 애초의 약속과는 다르게 하룻밤 묵어서 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덕분에 안면도의 지리에 밝은 남편과 회장님이 묵을 곳을 알아보러 갔다.

 

이곳 펜션은 22평형이 하룻밤 묵는데 30만 원을 달라고 해서 그냥 이른 아침에 와서 놀다가 저녁때쯤 가자고 했던 것이었는데, 가정집 같은 방 네 개짜리, 거실까지 합하면 다섯 개의 취침 공간이 있는 민박을 15만 원에 구했다.

 

짐을 부리고 나와서 밥을 사 먹고 들어가서 남자들끼리 화투 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민박 주인에게 음식 맛있는 식당 좀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 군데를 소개해줬다. 엊저녁에 먹은 집은 너무 형편없었다며 불만들이 많았다. 소개받은 집은 간장게장 맛도 끝내주고 다슬기 해장국 맛도 그만이었다. 회장님은 간장게장을 팔기도 하느냐고 물어서 집집마다 한 통씩 안겨줬다.

집으로 가져갈 대하도 몇 키로 씩 사던데, 우리는 예전에 몇 번 선물 들어왔던 대하를 버겁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사지 않았다.

 

며칠 새로 기온이 뚝 떨어지고 건조해졌는데, 습기가 없는 날의 하늘은 말 그대로 '청명' 그 자체다.

 

 

 

 

 

맨 밑의 사진은 줌으로 당겨서 찍었는데, 배 위에서 세 분의 아저씨들이 아침 식사 중이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오늘은 배가 뜨지 못한단다.

 

일찌감치 시작한 하루는 길기도 하다. 9시쯤에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11시쯤이다. 뭘 했다고 피곤한 건지 피곤해, 하며 둘이서 퍼지게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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