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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청계산에 오르다

by 눈부신햇살* 2007. 3. 2.

오랜만에 산에 오르자 했다. 도봉산은 집에서 너무 멀고 사람에 치이고, 관악산은 지난번에도 다녀왔고 벌써 몇 번째 올랐으니 이번엔 청계산에 한번 가보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매사에 정확하고 꼼꼼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남편은 인터넷 검색으로 등산 안내도 뽑고 계획을 잡았다. 이리 가서 요리로 갔다가 저리 가서 이리로 오면 몇 시간 소요되고 코스가 어떻고 저떻고......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남편, 정작 가는 날 아침에는 뽑은 안내도는 집에다 두고 가더라. 차속에서 안내도는? 하고 물어보는 내게 아이고! 하더니 내 머릿속에 다 들었어, 하고 어깨만 으쓱거리더라.

 

아침잠이 많고 저녁잠이 없는 올빼미형인 내가 쉬는 날 아침 7시에 일어나려니 눈이 떠지지 않아서 밍기적거리다가 그냥 가지 말까? 피곤하지? 했더니 그럼 그러잔다. 이 남자는 요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점점 줏대 없는 인간형이 되어간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으로 아침을 차리다 보니 정신이 조금 났다. 그래서 가기로 결심을 보았다. 가기로 하고서 아니 가면 하루 종일 찜찜한 마음이 들 것 같아서.

 

의왕시 쪽의 산 입구에 들어서니 말 그대로 한산 그 자체였다. 아니, 관악산과 이리 다를 수가. 사람에 떠밀려 올라갔다 떠밀려 내려오는데.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너른 휑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보온병에 담아 온 것은 이따가 산 위에서 마실 요량으로 아꼈다.

 

천천히 걸어서 산속으로 들어가며 한적한 것이 정말 우리 맘에 쏙 든다고 연신 감탄하며 이렇게 좋은 산에 왜 사람들이 별로 없지, 이상해 하며 길을 걸었다. 이상하게도 주차장은 저 밑에 있는데 차들이 이따금 우리 옆을 획획 지나가서 이상하네, 주차장이 위에 또 있나? 하니까 남편이 그런다. 산에 왔으면 산길을 걸어야지 그것 조금 덜 걷겠다고 저리 차를 끌고 깊숙히 들어가나......

아니나 다를까, 청계산 청계사 밑에 주차장이 또 있었다. 그러나 길가에는 차로 진입금지라고 푯말이 붙었던데, 신도들은 괜찮은 건지 차들이 잔뜩 주차돼 있었다.

 

75도쯤 되어보이는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섰더니 청계사라는 절이 있었다.

 

 

 

 향내음이 코를 찌르는 사찰을 벗어나 산에 오르는 입구이다. 계단 역시 가파르게 놓여 있다. 산은 별로 높지 않음에도 계속 가파른 코스로만 되어 있어서 한여름 땡볕 밑의 견공 버금가게 헉헉거려야 했다.

 

 

 

 

 심폐기능이 남다른 것 같은 남편은 내 눈에는 전혀 숨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나만 헉헉,헥헥. 조금 가고 쉬고 조금 가고 쉬고. 그러면서 산에는 왜 가냐고 한다면 바로 그 맛에 간다고. 헥헥거리는 맛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숨이 차 오면 가슴이 펌프질 하듯이 쿵쾅거리고 바쁘다 바빠, 하면서 몸의 비상사태를 알리듯이 돌아가는 내 몸의 상태가 좋다고. 별난가.

 

"가슴이 마구 쿵쾅거려. 비상사태라고 알리나봐."

"그래? 삐요삐요~ 사이렌도 울려?"

 

산에 오르며 혹여 이른 봄꽃을 구경하게 되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직도 나무들은 마른 가지인 채로였다. 발밑을 내려다보아도 푸석한 먼지만 폴폴 날렸다. 햇볕은 따뜻하게 내리쬐는데 바람은 얼음골에서 불어오는 바람 마냥 차갑기 짝이 없다.

 

"4월에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4월에 또 오자."

 

망경대에 오르니 시산제 하는 팀이 있어서 확성기에 대고 떠드는 소리, 음악 소리로 온산이 떠나갈 듯했다. 산 정상 헬기장에 서 있는 흑인 병사와 백인 여군을 보니 갑자기 현실감이 팍 사라지고 무슨 화보집에서 막 튀어나온 듯해 보여서 보고 또 봤다.

 

그 언저리 양지바른 곳에 사람들이 한 무더기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어서 우리도 그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역시나 볕은 봄볕인데,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한 번씩 부는 차가운 바람이 아직 겨울이 온전히 물러가지 않았음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오늘은 능선 타지 말고 그냥 이쯤에서 하산하자, 고 해서 부창부수라고 남편이 하자는 대로 그냥 내려왔다. 올라가는 시간의 3분의 1도 되지 않아서 청계사까지 내려왔다. 남편이 다리가 후들거린단다. 후후, 고로 하산은 내가 더 소질 있다.

 

올라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길, 그제야 올라오는 많은 사람들. 시계를 보니 1시쯤이다. 너른 주차장은 그새 빼곡히 들어찼다. 우리의 어이없었던 생각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 부지런한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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