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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썰물이 빠져나가듯...

by 눈부신햇살* 2007. 2. 7.

 

< 별밤 - 이수동 >

 

 

 

이틀 전, 월요일에 작은녀석의 학교가 개학하고, 오늘은 큰녀석의 학교가 개학했다.

남들은 아이들이 개학하는 날, 홀가분한 마음이 하늘을 날 듯 한다는데, 나는 쓸쓸함이 가만가만 스멀스멀 모락모락 피어 올라온다. 그 기분이 갑자기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올라오자 문득 엄마도 이런 마음일까, 그래서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친정에 들렀다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쓸쓸하고도 쓸쓸한 얼굴로 동생네 가족이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동생네 네 식구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엄마 곁에 오롯이 남는데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뭐가 그렇게나 섭섭하냐고. 키울 때 살갑게 키우지도 않았고, 그렇게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막내동생은 유일한 아들이니까 아들이어서 좋고, 나는 큰딸이어서 좋은가. 모든 부모는 맏이에게 약간의 감정이 더 기운다고 내 말을 전해 듣는 친구가 말한다. 함께 사는 동생으로부터 늘 딸 중에서 큰딸이 제일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내가 왜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얘기를 잘 들어줘서일까, 엄마 앞에서 늘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그럴까, 그냥 친구의 말처럼 맏딸이니까 이유 없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막상 내 앞에서 내가 좋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신다. 대신 언제나 내 옆에서 살고 싶다고,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살아서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에 헤어져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한 아파트단지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홀로 집안에 남겨진 이 아침,

아침 여섯 시부터 큰녀석, 남편, 작은녀석 순으로(함께 먹으면 좀 좋으련만, 나가는 시간이 다 다르다고 각자 혼자서 아침을 먹는다.) 7시까지 밥을 차려주고 배웅하고 나서 나 역시 아침밥을 먹고 아침드라마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 몹시 서럽게 운다. 나는 마음이 슬프면 꼭 꿈에서 운다. 꿈 내용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전화벨 소리에 깨어보니 한 시간쯤 잤나보다. 꿈에서 울어서인가 아직도 슬픔이 남아 있다.

 

매일 시끄럽게 귓가에서 잉잉대던 큰녀석의 기타 소리, 부전자전으로 이어지던 어쩔 땐 사람 염장 지르는 것 같아 팩 소리를 지르게 만들거나 입을 다물게 만들던 작은녀석의 썰렁한 농담 소리, 그 와중에도 게임 삼매경에 빠져 손가락이 핑핑 바쁘게 움직이던 컴퓨터 자판기 두들기던 소리, 보나 안보나 습관처럼 틀어져 있던 텔레비전 소리...... 불과 어제 아침까지 근 한 달간 이어지던 소린데, 먼 일같이 까마득하게 여겨진다.

 

농담 끝에 씨익 웃던 큰녀석의 이쁜 미소, 엄~마~아~! 하고 길게 늘여 부르던 애교스러운 부름, 눈만 마주치면 기이한 표정으로 풋!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던 작은녀석의 개구진 모습, 입버릇처럼 달고 있던 아침 먹으면서 "점심에는 뭐 먹을 거예요?",  점심 먹으면서 "오늘 저녁 반찬은 뭐예요?" 라는 매 끼니마다 다음번 식사 메뉴에 대한 물음. 자신이 바라던 대답에는 "앗싸!"라는 외침과 함께 함빡 웃으며 흥겹게 몸을 흔들고 "소박한 밥상."이라는 대답에는 "에게!" 하면서 고개와 어깨를 늘어뜨리던 모습.

 

이다음에 군대 가면 길게 길게 얼굴 보지 못하는 시간들이 올 텐데, 그때는 또 어찌 견디나 하는 때 이른 걱정도 올라오는 아침이다. 며칠 지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이 되겠지만, 아니 어쩌면 더 홀가분함을 만끽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 아침엔 이러한 감상들이 가만가만 스멀스멀 모락모락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피어오른다. 그리하여 엄마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는 마음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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