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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어줍은 기타리스트

by 눈부신햇살* 2007. 1. 4.

 

 

 

 

오늘 앰프가 도착했다. 며칠 전 시내에 있는 피아노 파는 가게에 가서 혹시 앰프도 팔아요? 하고 물었더니 주인 여자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또 다른 한 곳의 악기점, 제 아버지가 통기타를 사 준 곳에 가보자고 했다. 피아노만 파는 것이 아니고 클라리넷이나 바이올린, 기타 등등을 팔고 있으니 팔 것 같다며 큰 녀석이 연방 징징거리며 졸랐다. 그러나 작은 녀석의 농구화를 산다고 이미 많이 걸어 다닌 후여서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다녀오는데 40여분은 걸릴 테고, 또 집에까지 가는데 20여분, 그럼 약 1 시간여를 걸어야 된다. 혼자서 다녀오라고 했더니 심심하게 거기까지 언제 다녀오냐고 성을 냈다.

 

 

옥신각신거린 끝에 인터넷으로 간단히 주문을 하자고 했다. 그곳에 갔는데 앰프를  팔지 않을 수도 있고, 무거워서 들고 오기 힘들 수도 있으니. 그런데 녀석은 조급증이 치미는지 얼굴이 구겨진 종이 같았다. 여지껏 참았으면서 단 사나흘도 못 참느냐고,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성격이 급했냐고, 정작 해야 될 다른 많은 일에는 느긋하기 짝이 없어서 복장 터지게 하더니 오늘은 조급증으로 사람을 볶냐고 했더니 아들이 마지못해 그렇게 하자며 터덜터덜 뒤따라 왔다.

집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인터넷에 연결하더니 나를 부른다. 주문을 하라고. 그러더니 그 순간부터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린 앰프였다. 주문한 지 이틀만에 왔으니 무척 빠른 배송 이건만 녀석에게는 하루가 일 년 같았나 보다.

 

 

하긴 언제 적부터 노래를 부른 앰프인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늦은 봄, 부평풍물축제에서 언더그라운드 그룹의 베이시스트의 독주를 듣고서 반해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학교 담임선생님과 사바사바 해서 기타 칠 줄 아는 선생님께 여름방학 동안 한 달여 배운 것이 기타 수업에 대한 전부이다. 근래엔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얼마간을 뚱땅거리더니 자기는 전자 기타음이 맞는다며 전자기타를 사겠다고 친구와 둘이서 낙원상가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기타를 사주고 성적이 떨어지기도 했고, 또 통기타를 열심히 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기분 내키면 한 번씩 튕기길래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는 식으로 입을 막았다.

 

 

그래도 생각나면 한번씩 조르는 통에 성적으로 내기를 걸었다. 반에서 5등 안에 들고, 전교 석차를 20 등 올리면 사주겠다고. 그 달에 반에서는 5 등을 했으나 전교 석차는 19 등을 올렸다. 당연히 사주지 않았다. 녀석은 무척 억울해했으나 세상살이란 것이 다 그런 거다며 억울하면 이번에는 제대로 성적을 올려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반에서는 6 등을 전교에서는 37 등을 했다.

아이 아빠는 반에서는 3 등 안에 들어야 하고, 전교 석차는 30 등 안에 들어야 서울에 있는 4년제의 대학교에 갈 수 있다, 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한다. 공부란 차근차근 기초실력을 다져 놓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맘먹었을 때는 늦은 것이다. 이제 중 2 가 되는데 너처럼 베짱이 같이 살다가는 성적이 팍팍 떨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우리는 대학 등록금을 아낄 수 있어서 참 고마운 일이라며 아이의 약을 바짝 올렸다.

 

 

녀석은 안 되겠던지 자신의 용돈으로 전자 기타를 하나 사들고 왔다. 중고 악기점에서 3 만원 짜리를 2 만원에 샀다며 신나 했다. 그러나 전자 기타는 앰프가 있어야 제대로 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그것이 또 숙제였다. 아빠보다는 좀 더 말랑한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만큼 전교 석차를 올렸는데, 더군다나 보습학원이나 다른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순전히 제 실력으로 향상했는데 너무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너무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대하면 아이의 사기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뭔가 얻는 것이 있어야 더욱더 힘이 나서 열심히 해보지 않을까......

그러나 나의 생각은 기우인가 보다. 오늘 내내 기타만 뚱땅거리고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슬그머니 염려가 올라온다. 저것이 보아하니 무엇이 되려고 저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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