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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이제부터 시작인 거야?

by 눈부신햇살* 2007. 1. 31.

 

 

 

큰녀석의 새로운 기타다. <가와사미>라는 상표를 달고 있다. 아들 녀석 덕분에 아는 것이 날로 늘어간다. 기타만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 중에 <가와사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방학 동안에 임시로 기타를 배우고 있는 새로 부임한 젊은 부목사님께서는 3백만 원 상당의 기타를 가지고 계시는데, 아들 녀석의 기타를 만진 첫마디가 기타의 넥 부분이 비틀어져서 제대로 된 음이 나오지 않는다고 조율해도 곧 이상한 음이 나와서 많이 불편할 거라며 웬만하면 하나 새로 사라고 하셨단다. 그때부터 또다시 녀석의 주특기인 조르기가 시작됐다.

 

그럼 그렇지, 2만 원짜리 중고 기타가 제대로일리가 없지.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예상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얼마 전에는 기타 케이스와 동그랗게 생긴 파이프 조율기보다 전자 조율기가 더 정확하고 쉽게 음을 조율할 수 있다고 해서 지난달의 용돈 남은 거와 이번 달 용돈을 다 쏟아부어 두 가지를 사 왔다. 그때 함께 갔었는데 아들 녀석의 얼굴과 신체가 또래보다 많이 성숙한 것은 사실이지만(담임 선생님께서는 정신 연령도 조숙하다고 하셨단다.) 그 악기점의 여자가 아들 녀석을 대하는 태도가 대학생 대하듯이 반 어른 취급을 해서 깜짝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그것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는데, 녀석은 처음엔 자신도 어색하고 이상했으나 요즘은 하도 그런 대접을 받으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됐단다.

 

덕분에 어디 가면 맡아 놓고 엄마가 참 젊다는 소리를 빠뜨리지 않고 듣게 된다. 얼마전에 작은녀석 농구화를 사러 갔을 때도 엄마가 참 젊다며 녀석을 중 2 정도로 봤다. 신발 사러 오신 노부부와 그 가게의 점원인 것 같은 여자가. 그 녀석보다 더 큰 아들도 있고, 이제 초등 5년이라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나중엔 은근히 기분이 상할 지경이었는데, 혹시 새엄마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겨져서다. 작은녀석과 나는 얼굴이 별로 닮지 않았다. 시아버님께서 당신 슬하의 12명의 손주 중에 가장 친탁을 많이 해서 가장 많이 이뻐하는 손자이기도 하다. 손을 꼭 붙들고

"우리 준원이는 너무 잘 생겼어. 이담에 여자들이 줄을 서게 생겼어. 참말 잘 생겼어."

연신 감탄사를 퍼붓는 손자는 딱 우리 작은녀석 하나이다. 그럼 장난스레

"아버님, 그럼 우리 재원이는요? 재원이는 잘 생기지 않았어요?"

하고 물으면

"잘 생겼지. 우리 재원이도 참 잘 생겼어."

라고 대답은 하시지만 손을 끌어다 꼭 붙들고 쓰다듬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감탄사를 연발하지는 않으신다. 대신 친정에 가면 큰녀석이 훨씬 잘 생겼다고 한다. 물론 얼굴 생김새가 외탁이다. 키나 몸집은 친탁이지만.

 

남편에게 엄마가 참 젊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시시콜콜 전하는 내게 또 역시, 혹시라도 그것으로 인해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이 염려됐던지 기를 깎아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기분이 으쓱했지? 좋아서 마구 웃었지? 그런 말 들으면 날아갈 것 같지? 하는 식의 질문으로. 그런 말만 들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참 우습다는 듯이......

 

조르기 시작한 다음 날인 지난 일요일, 칼국수로 점심을 때운 우리는 곧장 통기타를 샀던 삼익악기점으로 달려갔다. 3십만 원대의 일렉기타를 보는데 녀석이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악기점을 좀 더 둘러보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또 차를 끌고 악기점이라는 간판만 찾아다녔다. 멀리서 현악기점이라는 간판을 보고 찾아 들어갔다. 우리가 구매할 의사가 있는 3십만 원대의 기타 세 개를 창고에서 꺼내온다. 곱고 우아하게 나이 든 주인 여자가. 모르면 몰라도 아마도 음대를 나왔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말도 얼마나 곱고 우아하게 하는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통기타가 가게에 수두룩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유독 전자기타만 창고에서 꺼내온다. 이유가 뭘까?

 

하나는 흰색이고, 또 하나는 주황빛의 원목과 흰색이 배색된 것이고, 나머지 하나가 이 검정색의 기타였다. 이것으로 구매하기로 하고 값을 지불하는 순간, 아들 입에서 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으흐흐흐......"

그 대단히 만족스런, 오장육부까지 만족스럽다는 듯한 웃음소리는 나머지 세 식구와 주인 여자까지 함께 웃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인가, 그 전날이였던가,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프로에서 재즈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듣게 됐다. 한국, 중국, 일본의 세 명의 기타리스트들의 흥겨운 몸짓의 연주에 우리는 꼭 대중적인 기타리스트가 아닌 저런 전문인의 길도 참 좋겠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식도 높고 연주도 잘하고 작곡도 잘하고 그리하여 인생이 풍요로워졌으면 참 좋겠다,라고 말했다. 세 나라 사람이 모인 만큼 그들은 영어로 소통했는데 네가 다른 나라 언어 하나쯤 저렇게 자유롭게 구사하고 저렇게 즐기며 기타를 칠 수 있다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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