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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들려오는 이야기

by 눈부신햇살* 2007. 2. 13.

 

 

 

 

오전에 친구랑 통화하는데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리더니 급기야 콧물까지 줄줄 흘러서 수화기를 잠시 놓고 코까지 풀어 재꼈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다. 내게 위안을 받고자 내게 전화를 한 것인데, 도리어 내가 더 슬프게 울고 만다. 내게 위안을 받고자 전화했던 사람이 더 밝은 목소리로 힘을 내야 할 정도로.

 

오래전 그날도 그랬다. 친구가 막 출발하는 버스에 함께 가던 다른 친구가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무리하게 뛰어내리다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 대수술을 받았던 그날도 나는 병문안을 가서 친구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주변에서 니가 그러면 아픈 사람은 어떡해,라고 말리는 소리에 민망해서라도 눈물을 그쳐야 하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애를 먹었다.

 

어디에 그렇게 눈물이 들어있다가 솟구치는지. 요즘은 거의 울지 않는데, 예전 아가씨 적에도 엄마에게 억울하게 지나친 야단을 맞노라면 울고 또 우느라고 퉁퉁 부은 눈 때문에 출근하지 못한 날도 있었고, 혹여 출근한 날에는 "쌍거풀 수술하고 왔어?"라는 농담이나 "밤에 라면 먹고 잤구나?"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신혼 시절엔 부부싸움 끝에 멈추지 않고 울고 있는 바람에 더 크게 싸웠던 적도 있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울 정도로 자기가 잘못을 심하게 한 거냐고. 너무한다고, 달래고 달래도 울고 있으면 나중엔 모른 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무뎌졌는지 남성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는지 부부 싸움 끝에 우는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 남편이야말로 여성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는지 버럭 내지는 발칵 부리던 성질을 거의 부리지 않게 되었다. 그때는 내게 어떻게 저렇게 발칵 발칵 불같이 화를 낼 수 있다지 하는 섭섭함 때문에 울고 또 울지 않았던가 싶다. 요즘은 내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지만......

 

그렇게 눈물이 흔한 나이기에 나를 아주 여린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몇 명 있는데, 오늘 통화한 친구도 그 중 한 명이다. 자신의 병실에 와서 섧디 섧게 울던 나이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보기보단 냉정하고 야멸스러운 구석도 많은데 아직 친구는 그 부분은 보지 못했나 보다.

 

요즈음, 친구와의 통화 내용은 거의 친구의 둘째 형부에 대한 안부였다. 제법 큰 회사의 이사급이었던 그네 형부가 2년 전 회사에서 축구를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너무나 건강해서 자신에게 병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말기는 아니어서 일정하게 서울의 큰 병원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교회의 장로이기도 했던 형부와 언니는 의외로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서 신앙의 힘이 위대하긴 위대하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한 달 전쯤 재발했다. 많은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항암치료제의 독한 기운에 따라오는 통증이 싫어서 약 한 달 정도 약을 끊고 어떤 종교 단체에서 판매하는 만병통치약과 같다는 소금을 먹은 결과였다고 한다. 얼마 전에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전화 오고, 이어 응급실에서 일반실로 옮겼다고 해서 잘 되었다고 했더니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포기한 거야......

 

오늘 아침 전화는 형부의 장례식이 어제 있었다는 얘기였다. 내게 부담 주는 것이 싫어서 장례를 치르고 전화했나 보다. 늦은 결혼으로 이제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을 남겨두고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딸들이 한 번씩 불러댈 때마다 눈을 떠서 응답하듯이 눈을 맞추더란 말이 왜 그리 슬프게 들리는지. 병원에 있는 동안 계속 언니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했다는 것, 언니가 너무나 울어대서 언니 앞에서는 아픈 척을 안 해 암환자의 고통이 그리 심한 줄 언니는 잘 몰랐었다는 말들이......

 

형부는 비록 짧은 생이어서 안타깝기는 해도 틀림없이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형부만 바라보고 살던 언니와 아이들은 남은 자의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또 친구는 옆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막막하고 아픈 마음에 한숨 소리가 길게 늘어진다. 그래도 또 어떻게 어떻게 견뎌내고 살아지겠지. 지금 당장은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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