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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26

보약 모처럼 월곶에 갔다.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코에 바람 좀 집어넣자고, 하다 못해 엎어지면 코 닿는 월곶에라도 가서 답답한 코에 바닷바람을 쐬주자고 말만 무성하게 하다가 지난주엔 피곤해서, 지지난주엔 또 기타 사러 돌아다니느라고 가지 못했다. 남편은 요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지난해 들어 부쩍 잦아진 출장이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져 객지 잠을 많이 자기 때문이다. 조금 예민하고 결벽증 비슷한 구석도 있는 성격이고 보면 객지 잠을 달게 잘 사람이 절대로 못 된다. 늘 출장 끝에 집에 오면 지난밤에 깊은 잠을 못 잤다며 객지에서 잘려면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고, 술자리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술이 머리끝까지 취한 날 밤이나 세상모.. 2007. 2. 5.
번데기 우리 집 식구들이 먹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번데기다. 다른 나라, 특히 프랑스에서 극도로 혐오한다는 개고기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면서 번데기라면 아주 혐오스럽다는 눈빛을 하고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쳐다본다. 유원지나 관광지에 가면 컵으로 파는 번데기를 이따금 사 먹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한 컵을 혼자서 다 먹기는 무리여서 한 컵 사서 나눠먹자고 하면 아무도 호응을 하지 않아 번번이 관두곤 한다. 도대체 왜? 왜? 먹지 않는 것이냐고,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더니 남편은 어릴 적에 집에서 누에를 쳤는데, 그 방에서 잠 잘 적에 누에를 깔고 자서 뭉개기도 한 기억과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것을 본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먹거리도 많은데 굳이 그 벌레 같은 것까지 먹어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너.. 2007. 1. 23.
눈 온 날 눈이 왔다. 하얀 눈이 밤새도록 소복소복 내려서 걷는 발 밑에서 사박사박 소리를 냈다. 하얗게 눈이 쌓인 길을 걷다가 바라본 벚나무 터널이 눈꽃 터널이 되었다. 봄이면 하얗게 벚꽃이 피었다가 하르르하르르 떨어져 내리던 길, 여름이면 푸르게푸르게 녹음으로 보는 이의 눈을 싱그럽게 하던 길, 가을이면 벚나무의 단풍도 참 곱고 이쁘다는 생각을 새삼 갖게 만들던 길, 어느 하루 벚꽃이 눈처럼 나리고, 또 어느 가을 하루 비처럼 나뭇잎이 나리던 길에 어제는 바람이 한번씩 불 때마다 눈가루가 떡가루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 하고 탄성이 올라왔다. 눈이 와서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날.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뜨거운 것을 하하, 거리며 배불리 먹고 난 두 녀석들은 무장을 하고 눈싸움을 하러 나갔다. 몇 시간 지난 .. 2006. 12. 18.
누굴 닮아서... 엉뚱하고도 기발한 생각의 대가인 작은아들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해마다 학기초면 화분을 하나씩 가지고 가서 반에다 두고 기르다가 학기말이면 다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겨울방학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있는 그제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녀석이 낑낑거리며 저 화분을 들고 왔다. 4학년 때 사서 학교에 가져갔다가 올해처럼 방학할 때면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기르고 개학하면 다시 학교로 가져가기를 반복하던 화분이다. 맨 처음 살 때는 아주 작은 화분에 담겨 있던 2 천 원짜리 조그만 화초였다. 그러던 것이 2년 만에 저리 무성하게 컸다. 물론 집에 있을 때는 화분이 작을 만큼 커진 것을 분갈이도 내가 해주며 돌 본 화초이다. 여름 방학 때에 밖에다 내놓았더니 햇빛과 바람에게 많은 영양분을 얻었던지 쑥쑥 자라서 학교.. 2006. 12. 16.
김장 2 하루 날 잡아 시골집에 모여 김장을 해다가 먹는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 파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길을 떠나곤 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깝다고 해서 가는 길에 김밥 몇 줄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가곤 했는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많이 바쁜 남편의 피로가 누적돼서 조금 늦게 출발했다. 격주제로 쉬는 남편이 쉬는 토요일인데도 밀린 업무가 있다면서 회사에 잠깐 다녀오고, 엇비슷한 시간에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당부에 충실하게 다른 토요일보다 빨리 집으로 들어섰다. 점심에는 고등어 한 마리 굽고, 다른 밑반찬에다가 간단히 밥을 먹었다. 밥 먹자마자 출발할 줄 알았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서 드러눕는다. 한숨 자야 가지 이 상태로는 도저히 가지 못하겠다면서. 아이들과 나는 하릴없.. 2006. 12. 4.
겨울 나무를 보며 자동차로 길을 달릴 때면 이따금 남편에게 말했다. "담양에 가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 이래." 11월이 깊을 대로 깊은 어느 저녁, 퇴근해서 들어서는 남편이 부엌에 있는 나를 숨 가쁘게 불렀다. "이리 와 봐. 얼른 와 봐. 내 좋은 것 보여줄게." 컴퓨터를 켜고서 디카 연결하더니 이 사진을 보여줬다. 전라도 쪽으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온 길이었다. "내 당신을 위해서 찍어왔지. 멋있지?" 감탄했다. 아니, 감탄해줬나? 영암에 있나? 월출산도 먼발치에서 찍어 왔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란다. 역시나 손뼉을 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약간 벌려 그 사이로 감탄사를 연방 내놓으며 감격해줬다.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힘을 .. 2006. 11. 28.
가을에 올가을엔 시월 하순에 한 건, 십일월 중순에 한 건, 십이월 초순에 한 건, 모두 세 건의 결혼식이 있다. 그중 가장 먼저인 작은 고모님 댁의 작은 도련님의 결혼식에 참석 차 서울의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갔다. 서울에서 있는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한번도 제시간에 대어 가지 못한 것을 떠올려 차를 놔두고 전철로 가기로 했다. 아침에 작은 시누이가 묻어갈 수 없느냐고 전화로 물어와 차 막혀서 전철로 간다는데요, 했다. 나중에 보니 작은 시누이도 차를 놔두고 전철로 왔다. 작은아들과 둘이서만 오기도 했지만. 온수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약 한 시간 가량을 타고 갔나보다. 차로 갈 때는 밖의 풍경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조잘거리니까 별로 지루한 줄 모르는데, 지하철이란 것은 말 그대로 땅속으로만 다녀서 보이는 창.. 2006. 10. 30.
백년해로 무심코 큰 녀석의 휴대폰 배경을 보니 우리 부부가 나란히 손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찍혀 있고 그 위에 라고 글자를 넣어 놓았다. 백년해로라는 말에 가슴이 찌릿해왔다. 녀석, 그래도 엄마 아빠의 다정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늘 그리 살기를 소망했던가 보구나. 남편이 1박2일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어제 저녁. 출장 끝에는 늘 운동가는 것을 빼먹고 집으로 곧장 퇴근해 들어오길래 그리할 줄 알고서 또 출장지에서는 술을 마셨을 게 뻔해서 속도 풀릴 겸 얼큰한 부대찌개를 끓였다. 7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이렇단 저렇단 전화가 없길래 큰 녀석더러 아빠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더니 운동 갔다가 올 거라고 했단다. 쳇, 이제는 이 마누라보다 운동이 더 좋단 말이지. 집으로 곧장 안 오고 운동을 가게...... 다른 때 운.. 2006. 10. 14.
요즘... 네이버에서 가끔씩 사진 구경을 하는데, 푸른 하늘과 붉은 황톳길과 자전거 타는 소녀의 모습이 싱그럽고 조화로워서 한 장 가져왔다. 연일 이렇게 푸르고 높은 뭉게구름, 양떼구름, 새털구름으로 번갈아 옷을 갈아입는 가을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길을 걷다 하늘 한번 올려다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나날들... 그러나 일교차가 심한 날들이기도 해서 아이들은 어젯밤부터 훌쩍훌쩍 연신 코를 훌쩍거리다가 핑핑 풀어대고, 머리가 아프다느니 미열이 난다느니 몸의 이상 상태를 알려 온다. 상비약으로 사다 놓은 콧물. 재채기 약 먹으라고 엉터리 약사 노릇을 한다. 아이들이 시험 결과로 자꾸 협상을 걸어온다. 큰 녀석은 전교 석차를 30등 올리면 전자기타를 사달라고 하고, 작은 녀석은 이번 시험에서 세 문제만 틀리면 PSP를.. 2006.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