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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김장 2

by 눈부신햇살* 2006. 12. 4.

 

 

하루 날 잡아 시골집에 모여 김장을 해다가 먹는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 파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길을 떠나곤 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깝다고 해서 가는 길에 김밥 몇 줄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가곤 했는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많이 바쁜 남편의 피로가 누적돼서 조금 늦게 출발했다. 격주제로 쉬는 남편이 쉬는 토요일인데도 밀린 업무가 있다면서 회사에 잠깐 다녀오고, 엇비슷한 시간에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당부에 충실하게 다른 토요일보다 빨리 집으로 들어섰다.

 

점심에는 고등어 한 마리 굽고, 다른 밑반찬에다가 간단히 밥을 먹었다. 밥 먹자마자 출발할 줄 알았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서 드러눕는다. 한숨 자야 가지 이 상태로는 도저히 가지 못하겠다면서.

아이들과 나는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남편이 일어나길 기다려야 했다. 2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골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둘째형님네는 벌써 와서 한창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얼른 가야 하지 않냐는 말에 2시 반까지만 자겠단다.

 

2시 반에 일어난 남편은 깎아 논 감 한 조각과 사과 한 조각을 먹더니 커피까지 끓여 달래서 먹고 그제야 길을 나섰다. 다행스럽게 도로는 붐비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논스톱으로 시골집으로 곧장 가는 줄 알았더니 중간에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웬일로?"

눈을 동그렇게 뜨고 물었더니

"이래야, 시골 가서 힘차게 일을 하지."

라며 웃는다. 아무튼 신이 나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 주문대로 토스트 두 개 사고, 내 몫으로 쥐포 하나 사서 차에 오른다.

 

쥐포를 한 입에 먹기 좋게 잘게 찢어서 남편의 오물거리는 입 동작이 끝나면 하나씩 건네준다. 날름날름 잘 받아먹으면서도 "나는 이 냄새가 젤 싫어." 하며 쥐포의 지린내  비슷한 냄새를 타박한다.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다. "맛만 좋구먼!" 하고 받아친다.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눈발이 희끗희끗 날린다. 그때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쏟아지는 피로감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야, 눈이다!"

하는 굵은 외침에

"깜짝이야!"

하면서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새가 여덟 팔 자 모양으로 한 무리 날아가고 있었다. 졸린 눈을 반쯤 떴다가 다시 감으며 말했다

"벌써 노안 왔수?"

다시 눈을 감긴 했는데, 그새 잠이 달아나서 눈을 뜨고 밖을 내다봤다. 어, 면박 준 게 민망하게 정말 하얀 점 같은 것들이 희끗희끗 날리고 있었다.

"어, 정말 눈이 오네!"

희한하게도 눈이 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지역에서부터 어느 지역까지는 저렇게 구름 뒤에 해가 숨어서 빛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하얗게 겨울산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갑자기 영하권으로 내려간 기온 때문에 날짜 한번 기가 막히게 잡았다며 시골집에 들어섰더니 돼지 막 옆에서 벌써 절궈진 배추를 씻고 있었다. 둘째 형님과 아주버님과 동서, 셋이서. 인사만 하고 옷 갈아입고 나오겠다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주방에서 어머님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신다. 옷 갈아입고 나오자

"널랑은 밖에 나가지 말고 저녁 먹게끔 해라."

하신다. 어머니를 도와서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데, 오지 않는 줄 알았던 큰형님네 가족이 들어선다. 분명 큰 형님께 전화했을 때 바빠서 못 온다고 했다는데, 아주버님이 나서서 모두 데리고 오셨나 보다.

 

큰 상 두 개 펼치고, 작은 상 한 개 펼치고 대식구가 저녁을 먹는다. 후딱 설거지를 한 다음에 씻다가 만 배추를 씻으러 나갔다. 어머님과 내가 초벌로 씻어서 다음 대야로 옮기면 동서와 남편이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헹구고 둘째 아주버님은 씻어 논 배추를 마당의 평상으로 옮겨 엎어 물기를 빼고, 큰 아주버님은 씻어야 될 배추를 옮겨 왔다. 큰 형님과 둘째 형님은 집안에서 김치 소로 넣을 갓과 파를 썰고, 무채를 채칼로 밀었다.

이따금 아이들도 나와서 배추 나르는 걸 거들기도 했다.

그 밤에 돼지고기를 조금 삶아서 술안주 삼아 형제들끼리 술을 마신다.

 

 

 

 

다음 날 아침, 일찌거니 서둘러서 김장을 시작한다. 김칫소를 뒤섞는 것은 힘을 요하는 일인지라 남편이 뒤섞고나서, 버무릴 배추를 나르고, 다 넣은 통을 옮기는 일을 하고, 어머니와 큰형님, 둘째형님, 나는 김치소를 켜켜이 넣는 일을 하고, 동서는 보조원을 하고, 서방님은 망가진 닭장을 고치고, 둘째 아주버님은 밭에 남은 무를 뽑으러 아이들과 함께 밭에 가고, 큰 아주버님은 아버님을 모시고 예식장에 가셨다.

 

고춧가루가 어찌나 매운지 청양 고춧가루를 먹는 기분이다. 한 입 먹고 나면 모두 입을 벌리고 하, 하, 거리고 앉아 있다. 점심에 수육 삶은 것을 절인 배추에 소와 함께 싸 먹고 나서 나는 단단히 탈이 났다.

 

큰 형님이 오셔서 다른 해보다 몇 시간 빨리 마무리를 하고 4시 반쯤에 시골집을 나섰다.

달리는 우리 차를 따라서 휘영청 밝은 달이 따라온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나 크고 환한 달이 카메라로 당겨서 잡았는데도 저렇게 손톱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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