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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가을에

by 눈부신햇살* 2006. 10. 30.

 

 

 

 

 

 

 

올가을엔 시월 하순에 한 건, 십일월 중순에 한 건, 십이월 초순에 한 건, 모두 세 건의 결혼식이 있다. 그중 가장 먼저인 작은 고모님 댁의 작은 도련님의 결혼식에 참석 차 서울의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갔다.

서울에서 있는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한번도 제시간에 대어 가지 못한 것을 떠올려 차를 놔두고 전철로 가기로 했다. 아침에 작은 시누이가 묻어갈 수 없느냐고 전화로 물어와 차 막혀서 전철로 간다는데요, 했다. 나중에 보니 작은 시누이도 차를 놔두고 전철로 왔다. 작은아들과 둘이서만 오기도 했지만.

 

 

온수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약 한 시간 가량을 타고 갔나보다. 차로 갈 때는 밖의 풍경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조잘거리니까 별로 지루한 줄 모르는데, 지하철이란 것은 말 그대로 땅속으로만 다녀서 보이는 창밖 풍경이라곤 시컴함 일색이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다. 몸도 살짝 뒤틀려서 이렇게 저렇게 고쳐 앉아 보다가 아이들을 툭툭 건드려보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한다.

 

 

어린이대공원역에 내려서 남편이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왔다.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당최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당신 몰라? 여기가 우리가 한창 데이트하던 곳이잖아. 저 밑으로 내려가면 화양리."

그래도 곧바로 인식이 되질 않아서 몇 차례 눈을 깜박이며 생각을 굴린 후에야 비로소 이곳이 어디라는 것이 기억속에서 되살아난다. 아이들은 옆에서 놀릴 건 수 하나 잡았다는 듯이 길치,라고 놀리며 야단법석이다.

"맞다 맞아! 저 곳이 화양리네! 야, 엄마 아빠가 젊은 날에 무진장 걸어 다니던 길이다."

 

 

아, 지나가버린 젊은 날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저만치서 뚜벅뚜벅 기억속으로 걸어온다. *대 캠퍼스에 들어갔다. 옛날을 떠올리며...... 캠퍼스의 나뭇잎들이 '가을이잖아요' 또는 '가을이니까요'라고 말하듯이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다. 마로니에 잎도, 은행나무 잎도, 버즘나무 잎도 가을이 한창이다. 학교에서는 무슨 경시대회를 치르고 있는지 휴일인데도 제법 복작거린다.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아빠 중에 아무도 이 대학교 안나왔는데, 왜 여기서 데이트를 해요? 아빠는 지방에서 대학교 다녔잖아요?"

말문이 막히며 웃음만 나온다. 좀 뜸을 들이다 말한다.

"그게 말이야. 엄마 아빠는 가난한 연인이었거든. 저렴하게 데이트하기 딱이었거든. 공원처럼 잘 가꿔져 있지. 자판기 커피 값싸. 게다가 아빠가 잘 다니던 직장 관두고 공무원 되겠다고 저기 도서관에서 공부했거든."

그러면서 이 건물이 도서관 건물이고, 저 건물에 학교 식당이 있고, 기숙사는 어디에 있고를 말하다가 문득 하는 말.

"아, 근데 마치 내가 여기 학교 나온 사람 같다. 그치? 너무 잘 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그래도 여기 학교는 가지 말아라. *대 *대 정도는 가줘야지. 그래야 니 인생이 풀릴 확률이 높아지지. 몸으로 때워서 버는 돈은 고달픔에 비해 보수가 너무 약해. 머리를 써야 돈 버는 액수가 커지거든. 아무리 평등사회라지만 눈에 안 보이는 계급이란 게 있는 게 현실이거든. 알았지? 지금은 니 인생의 밭을 가꾸는 시기여서 잘 가꿔야지만 나중에 수확할 것이 많을 거야. 그때 가서 땅을 치고 뉘우치지 않으려면 지금 열심히 가꿔야 해.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야. 그때를 놓치고 나면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해. 이 경험자가 말한다. 나처럼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엄마는 인생 실패자지......"

남편의 손을 잡고 한들한들 그 길들을 걸으며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그러다 남편이 축의금 접수를 보기로 해서 일찍 가자고 해 캠퍼스를 빠져나온다.

"공부 열심히 해라. 어설프게 했다가는 이 대학은커녕 지방대도 못 가는 것 알지?"

따끔하게 한마디 못을 박는다.

 

 

예식장은 그 옛날,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변두리였던, 논과 밭 사이에 있던 자동차학원이 격세지감을 느끼는 세월 속에서도 그대로 버티고 있는 옆에 자리했다. 자동차학원 주인이 예식장 주인도 되나 보다. 자동차 운전 연습 도로가 예식장과 이어져 있다. 그새 세상은 많이 변해서 지금은 노른자위 땅이 되었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약 천 억대의 부자일 것 같다.

 

 

시골 부모님과 친척들과 인사 나누다, 멀뚱멀뚱 서 있다가, 아는 얼굴 나타나면 다시 인사하고 얘기 몇 마디 나누다가 예식을 봤다. 친척 사진 촬영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아이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뷔페다. 두 군데로 나뉘어 앉았다. 큰형님네 가족과 우리 가족, 시동생, 둘째 아주버님. 다른 테이블에는 시부모님, 두 시누이가 앉았다.

 

 

중간에 다시 음식 가지러 가는 작은 시누이와 마주쳤다. 너무 말랐다. 조금만 살이 오르면 좀 더 넉넉하고 여유로워 보일 텐데. 시누이도 그 점을 알고 살 좀 찌려고 해도 어쩐 일인지 살이 오르지 않는단다. 살을 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살찌는 것인가 보다. 하긴 나도 예전 미혼일 때 너무 말라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좀 쪄야 된다는 하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다. 정말 어찌 된 일인지 밤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자도 살이 오르지를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살을 빼려고 아둥바둥이다. 시누이가 기분 좋게 한마디 한다.

"언니는 아직도 치마 맵시가 나네. 응?"

입이 함지박만 해져서 시누이의 어깨를 툭 친다.

우리 집 녀석들과 큰 조카는 물 만난 고기들처럼 먹고 또 먹는다.

 

 

식사 후에 발코니로 나왔더니 전망이 그만이다. 멀리 어린이회관의 기와지붕도 보이고, *대 캠퍼스의 운동장도 보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대공원이 가까우니 나무가 많다. 멀리 보이는 산이 아차산인지 아닌지, 또 왼편으로 보이는 산이 도봉산인지 아닌지 아리송 송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산이라고만 하자......

그 풍경들을 배경으로 모처럼 육 남매가 모였다고 육 남매끼리만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눈치 없이 그 옆에 서 있다가 쫓겨났다. 두 며느리와 두 시누이, 넷이서도 한 장 찍는다. 어머님은 마냥 기분이 좋으시다.

 

 

예식장에서 서로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져 돌아서는데, 멋 내느라고 신은 내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파서 역까지 걷는 동안 절뚝거린다. 발이 불편하면 온 몸이 불편하다. 온 신경이 곤두서고 머리가 쭈뼛거린다. 발은 욱신거리고. 뒤에서 지켜보던 녀석들 드디어 한마디 한다.

"엄마, 어차피 작은 키, 그냥 편하게 굽 낮은 구두 신고 다녀요. 낮은 것 신으나, 높은 것 신으나 어차피 나보다 작으면서......."

"요놈아, 그걸 누가 모르냐. 하이힐을 신어야 맵시가 난단 말이다. 이 엄마는 아직도 이뻐 보이고 싶다는 말이다. 요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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