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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백년해로

by 눈부신햇살* 2006. 10. 14.

 

 

 

 

 

 

 

무심코 큰 녀석의 휴대폰 배경을 보니 우리 부부가 나란히 손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찍혀 있고 그 위에 <백년해로>라고 글자를 넣어 놓았다. 백년해로라는 말에 가슴이 찌릿해왔다. 녀석, 그래도 엄마 아빠의 다정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늘 그리 살기를 소망했던가 보구나.

 

 

남편이 1박2일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어제 저녁. 출장 끝에는 늘 운동가는 것을 빼먹고 집으로 곧장 퇴근해 들어오길래 그리할 줄 알고서 또 출장지에서는 술을 마셨을 게 뻔해서 속도 풀릴 겸 얼큰한 부대찌개를 끓였다. 7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이렇단 저렇단 전화가 없길래 큰 녀석더러 아빠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더니 운동 갔다가 올 거라고 했단다. 쳇, 이제는 이 마누라보다 운동이 더 좋단 말이지. 집으로 곧장 안 오고 운동을 가게......

 

 

다른 때 운동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보다 30분 빠르게 집으로 들어서는 남편. 그런 남편을 맞이하는 나의 첫마디. "당신 미워!". 일어서 반길 생각도 안하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남편은 싱글벙글 웃더니 내게로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토닥거린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마주 끌어안고 "보고 싶었어." 했더니 남편이 활짝 웃는다.

 

 

저녁을 차려주고 마주 앉은 내게 남편이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 놓는다. 그중의 한 가지. 남편이 동창회를 하면서 갑자기 연락처를 알게 된 여자 친구 하나가 공교롭게도 우리 교회에 다녔다. 그것도 나 같은 날라리 신자가 아닌 열성 신자여서 교회 봉사활동도 열심이고 성가대에도 섰다. 어느 주일, 교회에 갔더니 여선교회 회장이 누가 나를 찾는다며 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남편의 여자 동창이었다. 얼굴이 맑고 조신한 몸가짐의 참한 인상이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사는 것에 대해 묻고, 마지막으로 왜 남편은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고 해서 "말씀 좀 잘해주세요."로 끝인사를 했다. 오늘 그 여자 동창과 통화를 했단다. 아직 동창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아서 서로 얼굴도 보지 않았다는데 그럼에도 하는 말이 "너네 부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나 봐?" 였단다. 그 부분에서 둘이는 서로 배를 잡고 웃는다. 요즘 들어 이따금씩 듣는 질문이다. 아래층의 여자도 막 인사를 틀 때 내게 물었었다. "아저씨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나 봐요?". 많기는요, 우리는 딱 세 살 차이라고 하면 놀래는 표정들을 짓는다. 남편이 농담 삼아 말한다. "나는 영계하고 산다니까.". 칭찬에 약하고 약한 나는 남편의 마음 상함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고 그저 기분이 좋다. 내가 그렇게나 젊어 보이다니. 음, 하루 40분씩 하던 스트레칭을 1시간으로 늘릴까? 오늘 신문에 보니 운동을 하고 안 하고에 따라 신체 연령이 최고 20년은 젊게 살 수 있다고 하던데. 열심히 운동하고 가꿔서 20년은 젊게 살아봐 봐? 풋! 신체 연령 젊기로 따지면 정말 열심히 운동하는 남편이 단연 앞서겠지만 머리숱이 얼마 없어서 초면에는 모두들 실제 나이보다 더 본다.

 

 

식사 후에 남편이 음악을 듣는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설거지를 마친 후에 나도 옆에 앉았다. 앉는 나를 잡아 당겨서 안길래 마주 앉고 한참 앉아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왜? 하며 쳐다보니 남편의 눈길이 작은 녀석에게로 향해 있다. 녀석이 흐뭇하게 웃고 있다. 좋아 보이나 보다. 엄마 아빠가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허 참! 자식들을 위해서 꼭 백년해로 해야 되려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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