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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고구마

by 눈부신햇살* 2006. 10. 11.



< 사진은 다음 검색해서 한 장 퍼왔음>

 

 

 

고구마는 열대성 식물이라서 아주 덥지 않고서야 좀처럼 꽃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고구마로 유명한 고장에서 살았어도 고구마꽃을 한번도 보지 못했었다. 고구마꽃이 피면 고구마의 작황은 좋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뿌리로 가야할 영양분이 꽃에게로 나뉘어 가서 그러리라 짐작해본다.

 

보기 힘들다는 고구마꽃을 어느 해, 몹시 무더운 여름 끝의 추석 성묘길에 보았었다. 고구마꽃을 처음 보는지라 처음엔 설마, 설마 하다가 줄기를 만져보고 꽃을 만져보고 심지어 꺾어서 냄새(꽃에게 냄새라고 하는 것은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지만 정말로 향기가 아닌 냄새를 맡아 보았다.)를 맡아보고 요모조모 살펴 본 뒤에야 이 꽃이 정녕 고구마꽃이로구나,하며 신기하게 보고 또 봤었다.

 

올해도 어지간히 더운 여름이라고 덥다를 연발하며 살았고, 인터넷에도 고구마꽃의 사진이 많이 올라오길래 내심 이번 성묘길에도 고구마꽃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성묘를 갔다. 아뿔싸! 밭 주인의 마음이 변했는지 밭 가득 들깨를 심어 놓으셨다. 고구마보다 들깨가 더 필요했을까.

 

추석 며칠 전, 시댁 가는 길에 가져가라고 작은시누이가 선물로 들어온 것들 중의 일부를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강화도 다녀오는 길에 호박고구마를 사왔다고 먹어보라며 조금 주고 갔다. 어느 집에서 먹어보니 호박고구마도 단맛이 강하길래 "맛있던데요." 하면서 기쁘게 받았다.

 

추석을 보내고 올라오려니 어머님이 고구마를 사먹는다는 말에 얼마를 황급히 캐어 오셨다. 어찌나 급하게 서두르며 캐셨던지 반토막짜리도 부지기수였다. 어머님이 연세에 비해서 기운은 장정 못지 않게 좀 세도 꼼꼼함과 침착함과는 거리가 좀 멀다. 하긴 꼼꼼함과 침착함을 겸비한 사람은 일을 후딱후딱 해치우지 못하는 단점이 있든가.

 

명절 끝, 친정에 들러서 남편의 친구가 상품성이 떨어지는 걸로 한 박스 준 호박 중에서 몇 개, 시골에서 가지고 올라온 대추와 우린 감은 먹으라고 부려 놓으면서도 고구마는 가지고 왔다는 말도 꺼내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우리 아이들과 내가 고구마를 퍽 좋아하는 탓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아래층에도 몇 개 먹어보라고 호박을 건네주며, 우리는 고구마와 우리도 잔뜩 가지고 온 풋고추를 받았다. 고구마를 주면서 자랑스럽게 "이거, 해남 고구마예요. 아주 유명하잖아요." 한다. 그런가. 나는 고구마하면 무안 밤고구마만 알아주는 줄 알았다. "거기도 황토밭이에요?" 물었더니 그렇단다. "음, 그럼 맛있겠다!"하고 맞받았다.

 

어제 세 가지의 고구마를 조금씩 섞어서 쪘다.

결론은 충남에서 올라온 어머님표 고구마도 아니요,

강화도에서 온 호박고구마도 아니요,

찌는 중에 벌써 금이 쩍쩍 가면서 껍질이 벌어지고 뽀얗게 분이 나오기 시작하는 해남고구마의 맛이 단연 으뜸이다. 단점이라면 너무 퍽퍽해서 목이 메인다. 꼭 김치와 함께 먹어야 식도를 내려가는데 무리가 없다.

 

입맛은 귀신들 같아서 그 고구마만 찾아서 먹는 우리집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고향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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