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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겨울 나무를 보며

by 눈부신햇살* 2006. 11. 28.

 

 

 

 

 

 

 

 

 

자동차로 길을 달릴 때면 이따금 남편에게 말했다.

"담양에 가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 이래."

11월이 깊을 대로 깊은 어느 저녁, 퇴근해서 들어서는 남편이 부엌에 있는 나를 숨 가쁘게 불렀다.

"이리 와 봐. 얼른 와 봐. 내 좋은 것 보여줄게."

컴퓨터를 켜고서 디카 연결하더니 이 사진을 보여줬다. 전라도 쪽으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온 길이었다.

"내 당신을 위해서 찍어왔지. 멋있지?"

감탄했다. 아니, 감탄해줬나?

영암에 있나? 월출산도 먼발치에서 찍어 왔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란다. 역시나 손뼉을 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약간 벌려 그 사이로 감탄사를 연방 내놓으며 감격해줬다.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힘을 줬다.

 

 

 

겨울나무를 보며

 

                                                               박 재 삼

 

 

 

스물 안팎 때는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 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 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써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조동진이 부르는 <제비꽃>에는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라고 말하는 작은 소녀가 나온다.

예전 마흔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세상 모든 일에 능숙하며, 사리분별력이 정확하고, 아주아주 어른스러울 줄 알았다. 그러나 마흔을 이태나 넘긴 나는 여전히 제비꽃의 작은 소녀처럼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며, 어리석고, 모르는 것 투성이며, 사리분별력이 없다. 나이 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세상 모든 일에 능숙하며, 사리분별력이 정확하고, 아주아주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주책이 곱빼기로 느는 것인가 보다.

"당신 갱년기야?"

하고 남편은 물었고

"조금 우는 것이 어때서요?"

하고 큰 녀석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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