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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

겨울 이야기 2 호수 가득 하얗게 눈 쌓인 풍경이 보기 좋아서 다음날엔 낮에 신정호에 가보았다. 하루 사이에 풍경이 변했으면 얼마나 변했으리라고 나는 또 마치 새로운 풍경을 접하듯이 어제 보았던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넓게 펼쳐지는 신정호의 하얀 겨울 속으로 빠져 들었다. 뽀드득뽀드득, 사각사각, 사박사박 흰 눈 밟고 걸어가요. 눈이 아무리 좋아도 눈길에 미끄러지는 것은 무서워 등산화 신고 걸어가요. 멀리 보이던 갱티고개 옆 황산이 가까운 곳의 안산 끝자락 뒤로 숨고, 갱티고개 옆 오른편으로 금암산이 보인다. 금암산 옆으로는 보갑산에 이어 덕암산이 순천향대까지 이어지나 보다. 지리가 궁금해서 검색했더니 한 덩어리 같아도 길게 이어지는 산 봉우리마다 다 따로 이름이 있어서 신기하다. 외암마을 맞은편 평촌리 서남대학교 뒷.. 2022. 12. 28.
궁남지와 능산리고분군에서 우리 때문에 시골집에 모이게 된 둘째 형님네와 막내 동서네와 저녁엔 고기를 구워 먹고, 동서네는 바빠서 가고 둘째 형님네와 우리 가족은 남아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아버님이 연로하셔서 미처 하지 못한 밀린 일을 거들러 아주버님과 남편과 우리 아들 둘과 형님네 아들, 그러니까 장정 둘과 장정 비슷한 남자 애 셋, 모두 다섯이서 딸기밭으로 나갔다. 더운 여름에 비닐하우스 속에서 힘쓰는 일을 하고 온 다섯 남자와 늦둥이 꼬맹이의 모습이 후줄근하다. 모두 차례대로 씻은 다음 부여에 가자고 하시는 아버님과 다른 집에 품앗이 갔다가 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시내에 나가 칡냉면을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시장기부터 면한 후 갈 요량이었다. 한동안은 칼국수만 잡수시던 아버님이 요즘은 냉면만 입에 맞아한다고 하.. 2007. 7. 16.
내게 반하셨나?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는 내게 반하신 게 분명하다. 일전에도 내게 그리 말씀하셨다. 오늘도 시내에 나가려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내게 맞은편에서 오시던 할머니께서 엇갈려 갈 때쯤 발걸음을 멈추고 굽은 허리를 살짝 펴시더니 감탄한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참 이삐다. 그렇게 입으니까 참 이뻐! 아이고, 참, 너무 이삐다!" 순간, 내 입이 귀에 가 걸리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유쾌한 기분이 순식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호호호........." 할머니도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마주 웃으셨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어서. 웃음으로만 답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송구스러워서 한마디 덧붙였다. 고개를 꾸벅하면서.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그냥 가시지 않고 기쁘게 답.. 2007. 6. 18.
엄마 노릇하기 어제도 오전에 학교에 가고, 오늘도 오전에 학교에 갔다. 녀석이 초등학생일 때도 안 해 본 노릇이다. 어제는 공개 수업 시간에 쓸려고 촬영해서 학교 홈피에 올렸던 것이 학교 컴퓨터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최대한 빨리 학교로 디카 좀 갖다 달라고 해서 "별걸 다 시키네." 투덜거리며 그제야 부리나케 머리 감고 트윈 케이크 바르고 섀도 바르고 립스틱 바르고 머리는 항상 자연 건조시키고 손가락으로 몇 번 빗는 걸 원체 늦게 마르는 머리인지라 드라이기 김 몇 번 쐬고 나갔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도로가에서 발이 삐끗하며 넘어지려다가 중심을 잡고 서서 막 다가오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를 타며 행선지를 말하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앉아 있으려니 운전사가 말을 건넨다. "아까 넘어질 뻔 했죠?" "예? 아,.. 2007. 5. 23.
뜻밖이네! 작년, 5학년 내내 반에서 2등만 하던 녀석, 설마, 하는 마음에 "올해 너 1등 하면 내가 중학생 되어야 사주는 휴대전화를 사준다." 물론, 이 말은 그럴 리가 없다는 가정 하에 한 말이었다. 그 혹하는 말을 들은 녀석,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무서워?" "응." 시험 보던 날, 풀 죽은 시무룩한 모습으로 뭔 시험이 그리 어렵냐고 투덜거렸다. "야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이틀만에 안도의 한숨은 걱정의 한숨으로 뒤바뀌었다. 세상에, 세상에 1등이란다. 초등학교 다닌 지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외출했다가 들어서는 내게 녀석이 그런다. "엄마, 안 되셨어요. 저, 1등이에요." "정말? 그럴 리가?.. 2007. 4. 25.
청계산에 오르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자 했다. 도봉산은 집에서 너무 멀고 사람에 치이고, 관악산은 지난번에도 다녀왔고 벌써 몇 번째 올랐으니 이번엔 청계산에 한번 가보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매사에 정확하고 꼼꼼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남편은 인터넷 검색으로 등산 안내도 뽑고 계획을 잡았다. 이리 가서 요리로 갔다가 저리 가서 이리로 오면 몇 시간 소요되고 코스가 어떻고 저떻고......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남편, 정작 가는 날 아침에는 뽑은 안내도는 집에다 두고 가더라. 차속에서 안내도는? 하고 물어보는 내게 아이고! 하더니 내 머릿속에 다 들었어, 하고 어깨만 으쓱거리더라. 아침잠이 많고 저녁잠이 없는 올빼미형인 내가 쉬는 날 아침 7시에 일어나려니 눈이 떠지지 않아서 밍기적거리다가 그냥 가지 말까? .. 2007. 3. 2.
설 즈음 설 쇠러 시골 가는 길가의 풍경이다. 파란 하늘 밑에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은 잠잠하다. 차창을 통해 뺨에 어깨에 와닿는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햇빛이 따가워서 잠을 자기 힘들다고 작은녀석이 투덜거렸다. 가까이 혹은 멀리 아직 새 잎이 돋아나지 않은 동화책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지들만 그려 놓은 빈 가지 뿐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중에는 파란색 지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예전 시골집도 다시 짓기 전에는 파란색 지붕을 하고 있었다. 생활하기 불편하다고, 특히 겨울에 너무 추운 집 구조라고 새로 집을 지은 후에 어른들, 그중에서도 며느리들이 많이 좋아하는 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집 특유의 운치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햇.. 2007. 2. 21.
보약 모처럼 월곶에 갔다.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코에 바람 좀 집어넣자고, 하다 못해 엎어지면 코 닿는 월곶에라도 가서 답답한 코에 바닷바람을 쐬주자고 말만 무성하게 하다가 지난주엔 피곤해서, 지지난주엔 또 기타 사러 돌아다니느라고 가지 못했다. 남편은 요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지난해 들어 부쩍 잦아진 출장이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져 객지 잠을 많이 자기 때문이다. 조금 예민하고 결벽증 비슷한 구석도 있는 성격이고 보면 객지 잠을 달게 잘 사람이 절대로 못 된다. 늘 출장 끝에 집에 오면 지난밤에 깊은 잠을 못 잤다며 객지에서 잘려면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고, 술자리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술이 머리끝까지 취한 날 밤이나 세상모.. 2007. 2. 5.
어줍은 기타리스트 오늘 앰프가 도착했다. 며칠 전 시내에 있는 피아노 파는 가게에 가서 혹시 앰프도 팔아요? 하고 물었더니 주인 여자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또 다른 한 곳의 악기점, 제 아버지가 통기타를 사 준 곳에 가보자고 했다. 피아노만 파는 것이 아니고 클라리넷이나 바이올린, 기타 등등을 팔고 있으니 팔 것 같다며 큰 녀석이 연방 징징거리며 졸랐다. 그러나 작은 녀석의 농구화를 산다고 이미 많이 걸어 다닌 후여서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다녀오는데 40여분은 걸릴 테고, 또 집에까지 가는데 20여분, 그럼 약 1 시간여를 걸어야 된다. 혼자서 다녀오라고 했더니 심심하게 거기까지 언제 다녀오냐고 성을 냈다. 옥신각신거린 끝에 인터넷으로 간단히 주문을 하자고 했다. 그곳에 갔는데 앰프를 팔지 않을 수도 .. 2007.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