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가득 하얗게 눈 쌓인 풍경이 보기 좋아서 다음날엔 낮에 신정호에 가보았다.
하루 사이에 풍경이 변했으면 얼마나 변했으리라고
나는 또 마치 새로운 풍경을 접하듯이 어제 보았던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넓게 펼쳐지는 신정호의 하얀 겨울 속으로 빠져 들었다.
뽀드득뽀드득, 사각사각, 사박사박 흰 눈 밟고 걸어가요.
눈이 아무리 좋아도 눈길에 미끄러지는 것은 무서워 등산화 신고 걸어가요.
멀리 보이던 갱티고개 옆 황산이
가까운 곳의 안산 끝자락 뒤로 숨고, 갱티고개 옆 오른편으로 금암산이 보인다.
금암산 옆으로는 보갑산에 이어 덕암산이 순천향대까지 이어지나 보다.
지리가 궁금해서 검색했더니 한 덩어리 같아도 길게 이어지는 산 봉우리마다 다 따로 이름이 있어서 신기하다.
외암마을 맞은편 평촌리 서남대학교 뒷산은 승주골산,
그 옆의 산은 월라산,
경찰교육원 뒷편의 산은 황산,
황산자락 뒤로 갱티고개 옆에 있는 산은 도망산(이름도 희한하고 재미나다. 도망 다니던 산인가,
길을 잃고 헤매던 산인가...^^) 등등......
저 산의 이름은 안산, 왼쪽 남산터널 옆으로는 남산.
하얀 눈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
바둑이가 지나갔을 리도 없는데......
호수를 돌다가 눈 쌓인 호수에 비치는 햇빛이 좋아서
해가 뜬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해 모양이 뭉그러져 사진에 담긴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사진을 배우러 다니고 전국 곳곳으로 사진 찍으러 다니며
이따금 전시회도 하신다던 큰아주버님이 알려주신 대로
스마트폰 화면 속의 해를 한 번 콕 눌러주면 해가 얼추 동그란 모양이 되어 담긴다.
해를 마주 보고 찍으면 깨알 모양의 동그란 빛이 사진 어딘가에 꼭 생기곤 하는데
그건 어떻게 없애는지 모르겠으며 사진을 찍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도 못한다.
하얀 눈을 찍으면 회색으로 담기는데 하얗게 찍으려면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셨는데
그 내용도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난다.
저 멀리 오른편으로 다솜교 보이고, 왼편으로 옥련암이 보인다.
나목들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 자태로 차가운 물속에 발 담그고 꿋꿋이 서 있는지...
잎새 훌훌 털어낸 나목들이 빚어내는 겨울의 아름다움.
나목들 사이로 보이는 그린타워.
바람은 점양동에서 방축동 쪽으로 부는지 헝클어진 머릿결 같은
베이지색 갈대들이 일제히 방축동으로 향하고 있다.
연밥은 푹 고꾸라져 있고,
겨울해는 노루꼬리처럼 짧아서 분명 낮이라고 생각하며 호수에 갔지만
온갖 해찰을 하며 도는 중에 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면 어느덧 석양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4시 30분 즈음.
<아침과 늦은 오후의 햇살은 사진의 색감을 풍부하게 하고 그림자를 드리워 물체의 입체감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준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자리를 비울 시골집 큰아주버님의 책꽂이에서
많은 사진 관련 책들 중에 뽑아 든 한 권의 책,
윤광준의 <잘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이 문구를 발견하고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늦은 시간에 호수 산책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것들이
우연의 일치로 사진 잘 찍히는 시간을 맞추었던 것이구나!
'신정호의 사계(四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개 자욱하던 날 (24) | 2023.01.30 |
---|---|
모여라 눈사람! (28) | 2023.01.02 |
겨울 이야기 1 (20) | 2022.12.27 |
무르익은 가을 (34) | 2022.11.14 |
비 오고 바람 불고 난 뒤 (0) | 2022.1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