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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15

선물 며칠 전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택배가 하나 왔다. 된장, 삼치 토막, 식초와 간장이다. 저 간장은 아주 오래 묵은 씨간장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다 직접 담그고 만진 것들이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그 남자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친했냐고? 천만에! 시골의 작은 학교라 45명 정도가 내리 한 반에서 공부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3년을 다니는 동안 그 애와 말 나눈 기억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 보아도 짝꿍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왜 나에게 이런 선물을 보내는 걸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도회지로 나올 때 겨우 3년 함께 공부했던 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내게 연락해오는 고향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의 동창들을 만나본 후 어렴풋이 내게 실.. 2023. 1. 9.
별이 진다네 개구리울음소리가 와글와글 거리며 시작되는 여행스케치의 를 들으면 오래전 그날이 떠오른다. 풋풋하게 싱그럽던 스물두세 살 무렵의 어느 여름 저녁. 그날도 이렇게 개구리가 와글와글 마을 앞 논에서 귀가 따갑게 울어댔다. 나는 울적한 친구 옆에서 가만가만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불렀다는 것만 기억이 날뿐 무슨 노래를 불렀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원래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기도 했지만 내 딴엔 엄마에게 야단 맞고 울고 있는 친구를 달랠만한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위로의 말 대신 노래를 택한 것이었다. 저녁 바람은 제법 선들선들하게 머리카락을 해작이며 기분 좋게 불어왔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어대는 개구리울음소리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늘엔 주먹만 한 별이 총총했던가. 아니 그 밤엔 별이 보.. 2022. 7. 13.
빗속에 떠오르는 얼굴 이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리면 잊고 있던 그날이 떠오른다. 오는 비를 다 맞고 비 맞은 생쥐꼴이 되어 찾아갔던 친구네 집. 어쩌면 그렇게 어수룩했는지. 잠깐 내리는 소나기였으니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피하다 그친 다음에 갔어도 될 것을. 그리 고지식하게 교복과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다 맞고 갔던가.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 주던 친구의 커다랗게 놀란 눈과 그 친구의 엄마와 할머니, 동생들의 한결같이 똑같은 표정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부리나케 건네주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그런 꼬락서니인 것이 창피해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차려주는 따스한 밥상 앞에서 어색하게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의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될 즈음 새로 전학 온 짝꿍과 더 .. 2007. 8. 8.
들려오는 이야기 오전에 친구랑 통화하는데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리더니 급기야 콧물까지 줄줄 흘러서 수화기를 잠시 놓고 코까지 풀어 재꼈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다. 내게 위안을 받고자 내게 전화를 한 것인데, 도리어 내가 더 슬프게 울고 만다. 내게 위안을 받고자 전화했던 사람이 더 밝은 목소리로 힘을 내야 할 정도로. 오래전 그날도 그랬다. 친구가 막 출발하는 버스에 함께 가던 다른 친구가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무리하게 뛰어내리다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 대수술을 받았던 그날도 나는 병문안을 가서 친구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주변에서 니가 그러면 아픈 사람은 어떡해,라고 말리는 소리에 민망해서라도 눈물을 그쳐야 하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애를 먹었다. 어디에 그렇게 눈물이 들어있다가 .. 2007. 2. 13.
친구들 한 일주일 전 친구들과 우리의 아지트인 종로에서 만났다. 언제나처럼 종로에서 만나 동대문 쪽으로 마냥 걷는다. 더러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기도 하고, 밀려오는 인파 때문에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걸어가기도 한다. 걷는 중간중간 길가의 좌판에 진열해 놓은 화분들과 석류나 체리 같은 과일이나 나프탈렌 같은 요즘 보기 드문 소독약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순간순간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얘깃거리가 된다. 산세베리아에서는 음이온이 나와서 몸에 좋다고 많이들 사는데, 뿌리가 잘 뻗은 것으로 사야지 그렇지 않으면 며칠 못 가서 비실비실 말라죽는다라던가, 석류는 이란에서 많이 수입해 온다던데 감과 마찬가지로 단석류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며 여성호르몬에 좋은 영향을 미치므로 특히 여자들이 많이 먹어야 된다는 .. 2006. 12. 26.
낙지 열 마리 방금 낙지 열 마리가 들어왔다. 5시 반쯤 아이들은 농구 경기를 보러 간다고 부천 경기장에 갔다. 그 근처에서 퇴근 후 운동을 하던 남편이 경기가 끝나면 아이들을 태워서 집에 온다고 했다. 느긋하게 밥을 안치고 두부를 부치고 방을 닦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초등학교 동창인 고향 친구이다. "응." 하고 받았더니 "야, 너네 집이 부개역에서 머냐?" 하고 묻는다. "아니. 한 정거장 차인데." 자기가 지금 부개역에 와 있으니까 부평역으로 얼른 나오란다. 시골에서 낙지가 올라왔는데 혼자 먹기는 너무 많은 양이니까 나눠 먹잔다. "야, 그냥 니네 식구끼리 먹어." 말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다는데 박절하게 가라는 것도 그렇다. "알았어. 나갈게. 남부역 방향으로 나와라." 하루 종일 .. 2006. 11. 10.
내가 좋아하는 꽃 < 요건 친구가 찍어 온 것 하나 가져오고...... > 내 생일은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서 나뭇잎을 모조리 떨구어 버린 쌀쌀한 늦가을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터워지기 시작하고, 따뜻한 것을 찾고 그리워하게 되는. 그맘때에 꽃집 앞을 지나가다 보면 색색의 소국이 양동이 가득 꽂혀 있는 걸 보게 .. 2006. 10. 20.
안면도에서 안면도에 갔다. 해마다 여름이면 남편의 고향 친구들과 동네 뒷내에서나, 그 동네의 유명한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던가 하는 저수지 근처에서 놀다가 이제는 동네를 좀 벗어나서 다른 곳엘 가보자고 의견을 모은 다음 첫 번째로 움직인 곳이다. 안면도는 남편이 자주 출장을 가는 곳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쪽의 업무를 맡고 있는 남편은 어쩔 땐 내 고향 근처의 해남이니 광주니 영암, 영광을 다녀오기도 한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가끔씩 부럽다. 가장 부러웠던 것이 몇 년 전에 독일에 다녀온 것이다. 일 때문에 가는 것이어서 독일 구경은 별로 하지도 못 했다고 하는데도 다녀와서는 그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몇 년 살다가 온 사람처럼 우려먹곤 했다. 남편이 자주 가는 안면도이니 만큼 남편이 안내를.. 2006. 9. 11.
산다는 일 일찌감치 만나서 돌아다니다 조금 빨리 헤어져 들어가자고 해서 조금 이른 시간에 만났다. 신길역에서 9시에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10분 전쯤에 도착했다. 장이 시원찮은 체질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나는 어제도 뱃속이 편치 않았다. 배를 문지르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것에 영 소질이 없는 나, 그새 몇 분을 못 참고 친구에게 전화한다. 어디냐는 나의 물음에 오히려 벌써 왔냐고 반문한다. 다른 한 친구는 조금 늦을 거라고 했단다. 늦는 사람은 꼭 늦고, 빨리 오는 사람은 꼭 빨리 온다. 나는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나오는 사람에게 늘 후한 점수를 준다. 그것은 생활습관이기 때문에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한 친구가 오고, 많이 늦을 줄 알았던 친구가 생각 밖으로 오 분 늦게 도.. 2006.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