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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 5월 30일 - 모내기가 막 끝난 논 6월 11일 - 초록으로 짙어지며 잘 자라고 있는 귀여운 아가 모들 7월 26일 - 초록의 싱그러움이 한가득~ 8월 29일 - 벼이삭이 패고, 연밥들이 갈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9월 13일 - 그새 노래진 벼이삭들 벼이삭은 노래져도 논두렁의 달개비꽃은 여전히 초록색 잎과 푸른 꽃으로 한창이다. 나를 피하지 않는 고양이를 내가 피해 간다. `무서움이 아니라 배려심으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고양이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좁혀지면 나를 피하겠지? 9월 19일 - 벼이삭들이 더 노래졌다. 9월 22일 10월 7일 추석 쇠고 한참만에 신정호에 갔더니 어여쁜 노란색의 멋진 황금들판. 10월 12일 10월 15일 추수 끝난 빈논에 곤포 .. 2023. 10. 19.
2월, 해빙기 이곳 아산에 와서 생활하게 되면서 어느덧 신정호라는 둘레 4.8km짜리 호수의 사계를 세 해째(세월 참 빠르다) 지켜보게 된다. 크다면 크고 크지 않다면 크지 않은 이 호수는 사계절 내내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거의 매일 보는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듯하면서 미묘하게 조금씩 달라져 자연의 신비로움과 오묘함을 느끼게 해 준다고나 할까. 며칠 전 퇴근해 온 남편이 꽁꽁 얼어붙었던 호수가 다 녹았더라고, 서울에서 며칠 머물다 온 내게 말했다. 바로 그다음 날 나는 운동 끝나고 집으로 곧장 오지 않고 얼음 풀린 호수를 보러 갔다. 차로 신정호는 물론이고 멀리 송악저수지까지 한 바퀴 돌며 보는 얼음이 풀린 호수의 풍경이 반가움을 물씬 끌어올렸다. 봄이 성큼 다가섰구나! 아니, 벌써 봄인가. 이제 해가 길어져.. 2023. 2. 17.
참 빨랐지 그 양반 고향 친구들과 하는 단톡방에 어느 날 시 한 편이 올라왔다. 시나 한 편 읽어보드라고, 이었나, 이런 시도 있드라고, 하는 멘트였나...... 덧붙여서 올라온 시 한 편. 맨 처음엔 어머, 시가 야하네, 하는 생각이었고, 읽고 나니 찡한 내용이었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었다. 참 빨랐지 그 양반 이 정 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 2022. 9. 19.
살구꽃이 피었다 살구꽃이 필 때면 한 번쯤 떠올려 보게 되는 시. 그 여자네 집 김 용 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빡깜빡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 2021. 3. 27.
겨울 나무를 보며 자동차로 길을 달릴 때면 이따금 남편에게 말했다. "담양에 가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 이래." 11월이 깊을 대로 깊은 어느 저녁, 퇴근해서 들어서는 남편이 부엌에 있는 나를 숨 가쁘게 불렀다. "이리 와 봐. 얼른 와 봐. 내 좋은 것 보여줄게." 컴퓨터를 켜고서 디카 연결하더니 이 사진을 보여줬다. 전라도 쪽으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온 길이었다. "내 당신을 위해서 찍어왔지. 멋있지?" 감탄했다. 아니, 감탄해줬나? 영암에 있나? 월출산도 먼발치에서 찍어 왔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란다. 역시나 손뼉을 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약간 벌려 그 사이로 감탄사를 연방 내놓으며 감격해줬다.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힘을 .. 2006. 11. 28.
푸른 밤 푸 른 밤 나 희 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였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2005. 9. 10.
가을의 동화 가을의 동화 김 용 호 호수는 커다란 비취 물담은 하늘 산산한 바람은 호젖한 나뭇잎에 머물다 구름다리를 건너 이 호수로 불어온다 아른거리는 물무늬 나는 한마리의 잠자리가 된다 나래에 가을을 싣고 맴돌다 호숫가에 앉으면 문득 고향 고향은 가을의 동화를 가만가만 내게 들려준다 * 가을이 되면 한번쯤 떠올려 보게 되는 시. 배경음악을 삽입할 수도 있다고 해서 시험 삼아 한번 올려봄. 사진은 무명[無名] 님의 블로그에서 한 장 가져왔습니다. 아항,,,전체배경음악을 정지 시킨 후에 밑엣것을 재생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군요! 2005. 9. 8.
사람이 그리운 날 1 사람이 그리운 날 1 신 대 철 잎 지는 초저녁, 무덤들이 많은 산 속을 지나왔습니다. 어느 사이 나는 고개 숙여 걷고 있습니다. 흘러 들어온 하늘 일부는 맑아져 사람이 없는 산 속으로 빨려듭니 다. 사람이 없는 산 속으로 물은 흐르고 흘러 고요의 바닥에서 나와 합류합니다. 몸 이 훈훈해집니다. 아는 사람 하나 우연히 만나고 싶습니다.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그대...... ***** 김용택 시인도 자신의 시에서 말했다. '......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 고. 그대여,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고독과 친구해 보아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답니다. 때로는 자기자신이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2005. 8. 8.
무료함 무료함 어린 날에 어른들은 들로 나가고 혼자서 빈 집을 지키노라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스멀스멀 덮쳐 왔다 텅 빈 마당, 텅 빈 동네에 뜨겁게 햇볕이 부서지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여름 한낮 지나친 무료함에 어린 계집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장독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었다 항아리에 가득 찬 간장에 얼굴을 비춰보고 그 속에 담긴 파란 하늘을 들여다보고 뒷뜰을 어슬렁거리다 무심한 풀을 짓뜯어 씹어보다 마당 한켠에 높게 쌓인 보릿대 낟가리 위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다 아무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방문을 확 열어 젖혀보면 서늘한 어둠만 존재했다 모두다 어디 갔는가 어디 숨었는가 무료함이 빚어내는 외로움에 눈물 한방울 흘러내리던 날도 있었어라. 2005.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