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7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 희 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 2005. 6. 13.
기다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김 재 진 설령 네가 오지 않는다 해도 기다림 하나로 만족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묵묵히 쳐다보며 마음속에 넣어둔 네 웃는 얼굴 거울처럼 한 번씩 비춰볼 수 있다 기다리는 동안 함께 있던 저무는 해를 눈속에 가득히 담아둘 수 있다 세상에 와서 우리가 사랑이라 불렀던 것 알고 보면 다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다 기다리는 동안 따뜻했던 내 마음을 너에게 주고 싶다 내 마음 가져가 네 마음을 눈 녹듯 따뜻하게 녹여주고 싶다 삶에 지친 네 시린 손 잡아 주고 싶다 쉬고 싶을 때 언제라도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기다림으로 네 곁에 오래도록 서 있고 싶다 2005. 5. 10.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이 규 보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은데 신부가 꺾어 들고 창가를 지나다 빙그레 웃으며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장난기 가득한 낭군이 답하기를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그 말을 듣고 토라져버린 신부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더 예.. 2005. 4. 26.
어떤 해후 어떤 해후 박 인 희 전화를 걸 수 있을 때보다 전화를 걸 수 없을 때가 더욱 간절한 그리움이다 편지를 띄울 수 있을 때보다 편지를 띄울 수 없을 때가 더욱 사무치는 보고픔이다 슬픔이 북받치면 눈물도 마르듯이 눈매 글썽이며 보고 싶던 사람도 잠잠히 견딜 수 있다 그러다가 정말 그러다가 너의 간.. 2005. 4. 21.
이름 이 름 박 인 희 죽을 때도 그 이름만은 가슴에 묻고 갈 거야 흰 무명 헝겊 속에 싸매어 두고 싶었던 이름 차마 바라볼 수조차 없어 돌아서서 울던 이름 물새 발자욱처럼 수없이 모랫벌에 써본 이름 기를 쓰며 파도가 휩쓸고 가던 이름 소중했으나 허망한 이름 진실한 이름 그 이름은 2005. 4. 20.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기 형 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착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들의 자손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인사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고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2005. 4. 18.
찬비 내리고 찬비 내리고 -편지1 나 희 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 2005. 4. 14.
목련꽃 피는 봄날에 목련꽃 피는 봄날에 용 혜 원 목련꽃 피는 봄날에 봄 햇살에 간지럼 타 웃음보가 터진 듯 피어나는 목련꽃 앞에 그대가 서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더 밝아질 것만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행복한 모습 그대로 피어나는 이 꽃을 그대에게는 한아름 선물할 수는 없지만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 2005. 4. 11.